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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제71칙 파초호오(芭蕉好惡)

생사와 열반에는 정해진 법칙이 없다

진실과 상징 터득하지 못하면
아예 선문답 할 자격조차 없어
좋고 싫음은 개인에게나 적용
보살행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승이 파초철 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한 사람은 생사도 버리지 않고 또 열반도 증득하지 않습니다. 화상께서는 그런 사람과 제휴할 수 있습니까.” 철화상이 말했다. “그런 사람하고는 제휴하지 않는다.” 승이 물었다. “어째서 제휴하지 않는 것입니까.” 철화상이 말했다. “노승은 좋고 싫음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파초철(芭蕉徹)은 파초산(芭蕉山) 계철선사(繼徹禪師)를 가리키는데, 파초혜청(芭蕉慧淸)의 제자로 위앙종 제5세이다. 본 문답은 선문답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선문답은 얼핏 들어보면 전혀 비상식적인 내용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그것은 직접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까닭이다. 정작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해주는 당사자의 경우라면 참으로 진지하게 건곤일척(乾坤一擲)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제아무리 하찮은 문답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두고 한바탕 내기를 걸듯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선문답은 항상 신선하고 진지하며 일말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용의주도하게 몸과 마음으로 덤벼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못하고 데면데면하게 무조건 들이민 경우에는 대번에 튕겨나가 굴러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선문답은 항상 상식적인 언설을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거기에는 진실한 태도와 상징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와 같은 진실과 상징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예 선문답의 자격이 없다. 그래서 선문답은 상식이면서도 상식에 떨어지지 않고 수수께끼 같으면서도 항상 거기에는 꼭 상응하는 질문과 답변이 존재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언제나 언설의 찌꺼기만 가지고 유희하다가 끝내 호한한 경전과 어록의 짐 속에서 헤매고 만다.

승이 제기한 질문은 ‘원각경’의 “생사와 열반은 지난밤의 꿈과 같다”는 말을 인용하고 그에 대하여 화상께서는 과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증득한다고 승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생사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번뇌의 측면이고, 열반은 불교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반드시 성취해야 할 명제이다. 일반의 경우라면 생사를 버리고 열반을 얻어야 하겠지만, 그와 같은 자세는 그대로 분별견해에 떨어진 모습이다. 그래서 계철화상은 그와 같은 경우라면 결코 제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선수행의 첫걸음이 분별을 벗어나고 집착을 초월하는 것에 있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승은 바로 그 점에 대하여 다시 ‘어째서 생사를 버리고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인 답변을 들어보고 싶었다.

계철화상은 참으로 자비가 넘치는 선지식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로 승을 내쳐버릴 수도 있었고, 침묵으로 대처할 수도 있었다. 그가 말해준 ‘노승은 좋고 싫음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는 것은 참으로 간곡한 답변이기도 하다. 무엇이 생사이고 무엇이 열반인가 하는 것은 정해진 법칙이 없다. 중생의 깜냥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일체가 생사의 번뇌일 뿐이다. 그러나 불보살의 마음에는 이미 평등심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중생이다 부처다 보살이다 하고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한 입장에서 계철화상에게는 승의 질문이 곧 승의 질문으로 끝나지 않고 일체중생의 질문으로 간절하게 다가와 있다. 이제 그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답변을 제시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에 굳이 어느 한쪽에 치우쳐 좋아한다느니 싫어한다느니 하는 말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 이미 확정된 언설로는 어떤 답변도 본질로부터 벗어나버리고 만다. 다만 낱낱의 모든 사람과 제휴하기 위해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마치 뼈를 깎아내는 진지한 보살행으로 임해야 한다. 계철화상은 이처럼 간절하고 독실한 답변으로 자신의 전력을 기울여 ‘노승은 좋고 싫음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고 말해주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특수한 개인적인 상황에만 적용될 뿐이다. 일체중생을 겨냥한 보살행에는 더 이상 좋고 나쁜 것조차 없기 때문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93호 / 2021년 7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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