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혜도량의 참종권 요구, 개혁종단서도 외면”

  • 교학
  • 입력 2021.07.16 20:20
  • 수정 2021.07.17 20:08
  • 호수 1594
  • 댓글 0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 정혜도량 출범 배경과 활동·성격 분석
“증언·회고 수집 역사 자료화 시급…당시 내부 사정도 연구돼야”

1994년 조계종 개혁은 현대 한국불교사와 조계종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건 가운데 하나다. 현재 조계종의 운영 근간인 종헌종법의 토대가 1994년 조계종 개혁을 통해 만들어졌고, 종단의 민주적 운영시스템이 도입된 것도 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런 점에서 종단 개혁은 조계종사의 큰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조계종 개혁이 성공하기까지는 비구니스님들의 역할도 컸다. 비구니스님들은 개혁운동이 촉발될 당시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범종추)’를 적극 지지했을 뿐 아니라 3월26~29일 구종법회와 4월10일 승려대회에도 앞장섰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비구니스님들은 승단 내에서의 비구니 위상 제고에 대한 자체적인 논의를 본격화했고, 그 결과 ‘비구니 정혜도량’을 출범시켰다.

1994년 조계종 개혁 당시 비구니 스님들이 승려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법보신문 자료사진
1994년 조계종 개혁 당시 비구니 스님들이 승려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법보신문 자료사진
1994년 종단개혁 당시 비구니들은 범종추를 적극 지지했으며 마스크를 착용하고 직접 물리적 투쟁대열에 앞장서기도 했다. 사진은 1994년 3월29일 구종법회에 참가한 비구니 스님들이 조계사 경내에 진입한 경찰들에게 연행당하고 있는 모습.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제공
1994년 종단개혁 당시 비구니들은 범종추를 적극 지지했으며 마스크를 착용하고 직접 물리적 투쟁대열에 앞장서기도 했다. 사진은 1994년 3월29일 구종법회에 참가한 비구니 스님들이 조계사 경내에 진입한 경찰들에게 연행당하고 있는 모습.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제공

최근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가 1994년 출범한 정혜도량의 출범배경과 역사적 의미를 조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대각사상’(제35집)에 ‘비구니 정혜도량의 역사와 성격’을 주제로 한 이 논문은 정혜도량의 출범 과정과 활동 등의 일련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논문에 따르면 정혜도량은 1994년 종단개혁에 나섰던 일부 비구니스님들에 의해 출범의 기틀을 마련했다. 범종추 소속회원으로 활동했던 비구니스님들은 전국 비구니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고 대변할 단일 창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4월26일 조계사 산중다원에서 ‘종단개혁에 뜻을 함께하는 비구니 1차 모임’을 갖고 비구니 위상제고 문제를 다뤘다. 이날 참석했던 13명의 스님(자민·선중·승헌·성덕·수경·지운·재범·혜성·명준·목산·성총·동조·혜조)과 조계종 개혁회의 의원이었던 9명의 스님(계수·육문·흥륜·일연·지형·효탄·수경·자민·혜조)은 이후 몇 차례 더 모임을 갖고 구니 단일창구로서 ‘정혜도량’의 출범을 구체화하고, 창립목적·회원자격·활동방향 등을 논의했다.

전국비구니회 임원진의 찬성과 지지도 이끌어냈다. 5월9일 정혜도량은 삼선포교원에 모인 비구니 500여명 앞에서 공식 단체로서 인정을 받고 비구니 위상제고를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김 교수는 출범식이 끝난 뒤 시작된 활동에 주목했다. 정혜도량은 5월29일 중앙승가대에서 ‘비구니 의식개혁과 교단내 위상정립’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종무행정에서 비구니가 배제된 불평등을 꼬집었다. 이어 위상제고를 위해선 ‘비구니 참종권’이 시급하다 입을 모았다.

그러자 비구스님들 반발이 거세졌다. 토론회에서 나왔던 핵심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법혜 스님은 기고를 통해 ‘비구니팔경계’를 언급하며 비구니스님들 입장에 반박했다. ‘여인오장설’(女人五障設, 여성은 범천·제석천·마왕·전륜성왕과 더불어 성불할 수 없다는 부파시대 논리)과 더불어 ‘비구니팔경계’는 부처님 가르침과 동떨어진 위경에 근거한 것이지만 비구스님들은 틈만 나면 이를 언급했다.

비구니 정혜도량이 주최한 '종단개혁 및 사회적 역할 모색을 위한 제2회 비구니 의식개혁 세미나', 이날 스님들은 "종단 운영에 있어 비구니 참여는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비구니 정혜도량이 주최한 '종단개혁 및 사회적 역할 모색을 위한 제2회 비구니 의식개혁 세미나', 이날 스님들은 "종단 운영에 있어 비구니 참여는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논쟁이 뜨거워지자 20여일 뒤 토론회을 재개했다. 정혜도량은 6월18일 불교방송 공개홀에서 ‘종단개혁 및 사회적 역할 모색을 위한 비구니 의식개혁’을 주제로 두 번째 세미나를 열고 각 분야에서 증대되고 있는 비구니스님의 사회적 역할을 심도있게 논의했다. 종단 운영에 있어 비구니 참여는 필수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정혜도량의 입장이 조계종 개혁회의에도 전달됐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비구스님들은 ‘비구니 참종권’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분석했다. 6월18일 조계사 정화회관에서 열린 ‘범종추 개혁성취결의 법회’ 자료집과 7월27일 개혁회의 6차 회의 내용을 언급하며 “비구니스님들의 주장에 대한 종단 내부에서의 개혁 작업은 지난했다”고 평가했다. 6차 회의의 주요 안건은 ‘총무원장을 직선제로 할 것인지, 간선제로 할 것인지’로 시작했으나 그 과정에서 일부 비구 스님의 차별적 발언을 했고, 이에 비구니 스님들이 거세게 항의하며 논란은 커져갔다.

그러나 비구니스님들의 종단 참여에 대한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각종 차별제도가 줄줄이 입법화됐다. 정혜도량은 개혁회의의 개혁입법 마련이 한창이던 8월16일 범종추에 “개혁의지가 미미하고 비구니 위상 정립을 위해 뜻을 같이할 수 없기에 탈퇴한다”는 공문을 발송하고, 9월28일 ‘전국비구니대표자회의’에서 이를 공식 선언했다.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

정혜도량의 급작스런 행보에 대해 김 교수는 내적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당시 조계종 포교국장 재범 스님과 범종추 공동의장 청화 스님의 인터뷰를 분석했다. 개혁운동 당시 비구니 스님들이 가졌던 바람과 한계에 부딪혔던 현실, 개혁회의에 대한 아쉬움 등이 해체의 주요 원인이 됐을 것으로 파악했다. 이어 10월19일 비구니 중앙종회의원 선거권에 대한 동국대, 중앙승가대 비구니 스님들의 잇따른 성명 발표를 소개하며 비구니 단일창구였던 정혜도량 역할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비록 정혜도량이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막을 내렸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계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추후 다양한 증언과 회고를 통해 정혜도량 역사가 자료화돼야 한다”며 “이외에도 당시 종단개혁 제일선에 참여했던 비구니스님들의 성향과 전국비구니회가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 정혜도량을 지지한 내부 사정이 상세히 연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594호 / 2021년 7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