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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마음, 음식선택  ③

기자명 고용석
  • 기고
  • 입력 2021.07.26 14:41
  • 호수 1595
  • 댓글 0

‘나도 틀릴 수 있다’가 민주주의 시작

감정으로 이뤄진 ‘바른마음’ 갇혀
타인·이웃종교 장점 놓치기 마련
‘독립선언문’ ‘헌법 1조’ 신화일 뿐
당위에 대한 의식 변화 수반돼야

하이트 교수에 따르면 좌파·우파의 도덕성 논쟁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좋고 싫음’을 먼저 따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른 마음은 개인보다 집단 차원에서 더 강력해진다. 내게 바른 마음이 있다면, 타인에게도 바른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직관이나 감정으로 이뤄진 각자의 도덕적 판단과 바른 마음들은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다. 

도덕은 사람들을 더 뭉치게 하거나 눈멀게 한다. 특히 인종·지역·종교·정치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도덕이 우리를 뭉치게 한다는 것은 결국 이데올로기를 내걸고 각자의 편에서 서로 싸우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편이 나뉘면 우린 운명이라도 걸린 듯 서로 이를 악물고 싸운다. 도덕은 우리를 눈멀게 한다. 각 편에는 저마다 좋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 가운데 귀담아들을 무엇인가가 있다는 엄연한 사실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다.

사실 좌파·우파의 바른 마음, 즉 정치적 협소함은 인간이나 종교 간의 관계에서도 쉽게 발견되어 진다. 깊이 바라보면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장단점이 있고, 종교도 저마다 깊거나 표면적인 가르침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장점을 타인의 단점과, 또 자신의 종교의 깊은 면을 이웃종교의 표면적 가르침과 비교하며 상대를 비난한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자신만이 옳다’는 신념을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우리 내부의 정치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들이 민주주의 기반인 시민공동체를 해체하지 않도록 끌어안는 것이 공공선이다. 

하이트 교수는 중국 선종 제3조 승찬 스님(僧璨大師, ?∼606)의 선시인 ‘신심명(信心銘)’을 언급하며 양자를 포용하면서 동시에 초월하는 중도(中道)의 입장을 소개한다. ‘남의 잘못은 바람에 곡식 키질하듯 드러내고, 자신의 잘못은 노련한 도박꾼이 패를 숨기듯 감춘다’는 부처님의 말씀도 인용한다. 결론적으로는 ‘왜 내 편 네 편으로 쉽게 갈려 으르렁대는지’ ‘왜 저마다 자신이 바르다고 확신하는지’ ‘왜 상대의 가치를 따르지 않더라도 그 가치를 이해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상대편과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가르침과 공감은 ‘내가 옳다’는 확신을 녹이고 스스로 의식도 변화하도록 하는 일종의 해독제이다. 그런 점에서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이며, 인간 그 자체의 생명의 핵이라 할 수 있다. 이 마음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도, 온전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1830년대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와 그 장단점에 대해 쓴 ‘미국의 민주주의’ 저자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도 “정치적 온전함을 지지하는 마음의 습관을 가꾸어가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어떤 민주주의든 그것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근간이 되는 마음의 습관을 키워야 한다. ‘창조적 끌어안기’라는 마음의 습관 말이다. 우리 안의 차이에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끌어안는 법을 배운다면 갈등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엔진으로, 보다 나은 사회적 가능성으로 계속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미국의 저명한 교육학자이자 수행자인 파커 파머(Parker J. Palmer, 1939~)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음의 작업은 신화를 명명하고 검토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예컨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생명·자유·행복의 추구 같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미국의 독립선언문이나 민주주의 헌법 제1조는 “한 국가의 신화”라 명명한다. 마음의 깊은 운동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신화 말이다. 

흔히 진보주의자는 헌법 제1조를 당위로 보고 이 당위를 존재가 되게 만드는 게 ‘진보’이며 ‘보수’는 어떤 체제이든 현재 존재 자체에 안주하려고만 한다고 비판한다. 신화를 검토하는 것은 당위의 존재화에 좌·우파 모두의 간단치 않은 의식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 안의 갇혀있는 이미지들에 따른 무의식적 한계, 즉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갖는 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통찰에서 시작된다. 

고용석  한국 채식문화원 공동대표

[1595호 / 2021년 7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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