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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불시대 숙종은 왜 미타사 불사에 참여했나

  • 성보
  • 입력 2021.07.30 23:17
  • 수정 2021.08.09 14:34
  • 호수 1596
  • 댓글 3

유근자 동국대 교수, 서울 옥수동 미타사 아미타삼존불좌상 분석
시대 다른 삼존불 한 자리 봉안돼 독특…미타사 역사 품은 문화재
왕실 인물이 조성 참여해 중수까지, 비구니 사찰과의 관계 보여줘

서울 미타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좌상. 주수완 우석대 교수 제공
서울 미타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좌상. 주수완 우석대 교수 제공

‘미타사 극락전 아미타불상’이 조선 숙종(1661~1720)의 후궁이었던 소의 유씨(?~1707)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자 왕실에서 조성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선시대 불상 전문가 유근자 동국대 미술학부 초빙교수가 최근 ‘불교문예연구’(17집)에 ‘서울 옥수동 아미타삼존불좌상의 복장 유물 분석과 양식 특징’을 통해 아미타삼존불좌상 연원을 상세히 소개했다.

유 교수는 지난해 8월 미타사 성보문화재 일제조사를 통해 아미타삼존불좌상에 봉안된 복장유물을 수습했다. ‘아미타불상’에서 조성발원문 1점(1707년), 중수발원문 2점(1744·1917년), 이외의 발원문 1점(1757년)과 ‘월인석보’ 권7·8·9·10, ‘법화경’ 권4~7, ‘부모은중경’ 1권이 발견됐고 ‘관세음보살상’에서 조성발원문 1점, 후령통 2점, 주서다라니 137매, 유리잔, 보석류 등을, ‘대세지보살상’에서 후령통 1점, 다라니 2점, ‘월인석보’ 권8·10권, ‘법화경’ 6점이 수습됐다.

이 가운데 1707년 작성된 아미타불상 조성발원문을 통해 해당 불상의 조성 목적과 조성자, 시주자 등을 확인했다. 발원문에 따르면 아미타불상은 1633년 상궁 김귀업이 남양주 흥국사 약사여래상을 개금했고 비구니 법찬이 새로 석가여래상을 조성해 경성 바깥의 봉래산 쌍계사에 봉안했다. 또 발원문 앞부분에 ‘숙종과 인원왕후 김씨, 세자, 세자빈 심씨, 아들 연잉군·연령군, 후궁 영빈 김씨와 숙빈 최씨’ 등 조성자 명단이 등장한다. 이 때문에 숙종의 후궁 소의 유씨의 명복을 빌고자 숙종과 왕실 인물이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유 교수는 분석했다.

소의 유씨의 사망·장례일과 미타사 극락전 아미타불상 조성일자가 겹치는 것도 분석을 뒷받침했다. 그는 “발원문을 살펴보면 남양주 흥국사 약사여래상 개금과 미타사 아미타불상은 1707년 5월10일 조성이 시작돼 6월20일 완성됐다”며 “이는 4월8일 사망해 6월10일 장사를 지낸 소의 유씨의 죽음과 시기가 겹친다”고 밝혔다.

숭유억불 시대에도 왕실과 관련된 인물이 죽음을 맞았을 때 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자 불상을 조성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미타사 극락전 아미타불상이 조성되기 4년 전, 1703년 숙종의 비 인현왕후 민씨(1667~1701)가 사망했을 때 숙종과 왕실 인물들은 화엄사 각황전의 3불상(석가여래·다보여래·아미타여래) 4보살상(문수보살·보현보살·관음보살·지적보살)을 조성해 왕비의 극락왕생을 빌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함께 복장물에서 ‘월인석보’가 발견됐다는 것은 미타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좌상이 왕실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준다는 게 유 교수의 분석이다. 1459년 간행된 ‘월인석보’는 조선 7대 임금 세조(1417~1468)가 적장자였던 의경세자(1438~1457)의 명복을 빌고자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증보·수정해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 교수는 “미타사 극락전 아미타불상에서 ‘월인석보’ 권7·8·9·10이, 대세지보살상에서 ‘월인석보’ 권8·10이 수습된 것은 이들 불상이 왕실발원으로 조성됐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종2품인 가선의 품계를 가진 수조각승 석밀·각섬 스님이 불상 조성에 참여했다는 점, 복장유물인 후령통이 두 겹의 황초폭자로 감싸져 있다는 점, 후령통의 오보병이 오보와 별도로 관음보살의 지물인 정병과 유사한 2cm가량의 금속제 병으로 납입된 점 등이 왕실 발원으로 조성된 불상이라는 구체적 근거로 제시됐다.

이번 복장유물을 통해 왕실 인물이 불상의 조성뿐 아니라 개금·중수까지 책임졌다는 점이 확인됐다. 아미타불상의 ‘중수발원문’(1744)에 따르면 황금을 시주한 한상빈 부부를 비롯해 상궁이 시주질에 기록돼 있다. 이때 개금·중수를 담당한 화원은 주로 왕실 원찰의 불상 조성·개금·중수를 담당했던 인성 스님(印性, 1660~1753)과 취겸, 낭함, 체의 스님이었다.

이들은 1744년 5월 미타사 극락전 아미타불상·대세지보살상을 조성한 후, 그해 10월7일 서울 사자암 아미타불상도 개금·중수했다. 유 교수는 “아미타불상은 1707년 조성된 후 1744년, 1768년 개금·중수를 할 때에도 왕실관련 인물이 지속적으로 시주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1769년 조성된 좌협시 ‘관세음보살상’의 대시주자도 영조의 아홉 번째 딸 화완옹주(1738~1808)와 낙천군 이온의 처 달성군부인 서씨다. 사도세자의 친동생이자 정조의 고모였던 화완옹주는 조선후기 옹주 중에서도 불사에 적극 나섰던 인물로 법주사 ‘괘불탱’(1766)과 불국사 ‘영산회상도’(1769) 조성에 시주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삼존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 조성된 불상은 우협시 ‘대세지보살상’으로 갸름한 상호에 긴 코, 입체적인 콧방울로 15~16세기 불교조각·불화에 나타나는 상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좁은 어깨와 긴 상체, 가슴 앞을 가린 일직선의 승각기, 오른쪽 어깨를 덮고 내려온 부견 자락이 대의 안으로 들어간 모습 등은 17세기 이전 표현 기법이다.

뿐만 아니라 청초폭자에 싸인 후령통은 오색실이 전체적으로 감싸고 있는데 이 표현법은 성종 21년(1490) 인수대비, 인혜대비, 정현왕후에 의해 중수된 해인사 법보전·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상 후령통 납입법과 닮아있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미타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좌상의 복장유물 현상과 기록, 양식 측면에서 보면 불상의 조성 시기는 대세지보살상, 아미타불상, 관세음보살상 순으로 이와 같은 삼존불 구성은 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된 1769년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서로 다른 시기 조성된 삼존불상이 한 자리에 봉안된 사례는 매우 독특하다. 이에 유 교수는 세 불상이 각기 다른 사찰에서 조성됐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시했다. 그는 아미타불상의 ‘조성발원문’ 가운데 “봉래산 쌍계사에 봉안했다”는 언급에서 봉래산이 응봉산 아래 위치한 독서당일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유 교수는 쌍계사의 위치를 단정할 수 없지만 (동호)독서당 인근 월송암으로 보이며 해당 암자가 미타사 전신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삼존불은 1517년 ‘월송암’에 있었다가 1707년 ‘쌍계사’, 1757년 ‘미타암’으로 변경됐으며, 위치가 계속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미타사 극락전 아미타삼존불좌상의 조성·개금·중수에 왕실 인물이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조선후기 왕실과 비구니 사찰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궁궐 안에 있던 왕실 인물들 수행처가 사라지면서 궁궐 바깥의 비구니 사찰이 기도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해 왔었는데 미타사의 경우 그간 연구를 뒷받침하는 귀중한 사례”라며 “특히 1800년대 후반 조성된 극락전 불화의 화기를 통해 왕실과의 관계를 추정은 해왔으나 숙종을 비롯해 왕실 인물이 미타사 불사에 참여했다는 사료는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596호 / 2021년 8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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