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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세상을 바꾸는 화해와 공존의 힘

기자명 김준희
  • 기고
  • 입력 2021.08.12 15:17
  • 수정 2021.08.13 09:32
  • 호수 1597
  • 댓글 1

[특별기고] 만해 평화대상 수상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누구인가

음악자 선정 이례적…유대인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동독인들 위한 연주회
중동 출신 음악가로 구성된 서동시집오케스트라 창단
분쟁지역서 음악으로 화해 메시지…유엔 평화대사 임명
음악으로 사람·세상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실천해

피아니스트이자 본지에 ‘클래식으로 감상하는 불교’를 연재하고 있는 김준희씨가 제25회 만해대상 평화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세계적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에 관한 기고문을 보내왔다. 김준희씨는 천재적 피아니스트였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부터 꾸준히 진행해 온 세계평화를 위해 행보에 주목하며 그가 만해 평화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배경을 조명했다. 특히 불교계에서는 비교적 낯설게 느껴지는 다니엘 바렌보임에 대한 이해를 통해 평화와 공존을 위한 문화의 힘에 불자들이 보다 주목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했다.  편집자

만해 평화대상 수상자 다니엘 바렌보임.
만해 평화대상 수상자 다니엘 바렌보임.

만해대상은 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해 온 만해 한용운 선사의 뜻을 기리며 제정된 상이다. 올해 25회째를 맞는 만해대상 ‘평화대상’ 수상자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그동안 평화대상은 달라이 라마, 넬슨 만델라,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을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 권위를 더해왔는데, 해외 클래식 음악가를 대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다니엘 바렌보임(1942~)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대인 음악가로 7세 때부터 공개 연주회를 열 정도로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적인 활동을 이어오던 그는 1973년부터 지휘자로 데뷔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상임지휘자를 대신하여 베를린 필을 지휘하여 동독 사람들을 위한 역사적인 연주회를 갖게 된다. 그는 이 연주회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솔리스트와 지휘자의 역할을 함께하며 연주했고, 교향곡 7번을 지휘하였다. 또한 이듬해 베를린 필의 첫 이스라엘 공연을 연주하는 등 역사적인 순간마다 베를린 필과 함께해 명예단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바렌보임은 1999년 절친인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화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과 함께 중동지역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서동시집오케스트라를 창단해 꾸준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긴장 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교육활동과 연주 활동을 동시에 진행해오고 있다. 스페인 세비야에 본부를 둔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은 이스라엘, 아랍, 유럽의 음악인들로 구성되어있으며, 분쟁지역을 다니며 음악을 통해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서동시집오케스트라는 2016년 유엔 평화대사로 임명되었고, 만해축전 행사가 열리고 있는 지금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여름 페스티벌 연주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서동시집오케스트라(West-Eastern Divan Orchestra)’라는 이름은 독일 문학가 괴테(1749~1832)의 시집에서 따왔다. 괴테가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즈의 시를 읽고 감명을 받아 동방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여 이 시집을 집필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서양인들은 대체로 그들의 문화가 동양의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러한 편견을 깨고 동양의 우수한 문화를 자신의 작품 속에 창조적으로 수용했고, 이상적인 동서양 문학 양식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업적을 남겼다.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괴테가 구현하고자 했던 동서양의 화합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에 이 시집의 이름을 붙였다.

지휘자로 활동하며 바렌보임은 한 가지 금기를 깨게 된다. 유대인 지휘자나 이스라엘의 오케스트라는 절대로 바그너의 작품을 연주하지 않는다. 그가 반유대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히틀러가 그의 열광적인 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렌보임은 정치적인 이유로 대 작곡가의 작품을 기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바렌보임은 바그너의 연작 오페라를 공연하고 레코딩 하는 등 음악으로서의 화합을 원했다. 동시에 자신의 고국 이스라엘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고수해왔던 것도 변화하게 되었다. 그는 모든 갈등과 대립의 대안을 찾고자 했으며 음악의 힘으로 중동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스스로에게 임무를 부여하게 되었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단원들은 음악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을 믿는 바렌보임과 사이드의 ‘세계주의자적(cosmopolitan)’적인 바람을 실천하고 있다. 단원들은 음악을 연주하는데 있어서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며, 음악으로 언어에 우선하는 특별한 교감을 한다. 음악이 가진 보편성과 특수성 덕분이다. 강함을 이길 수 있는 부드러운 음악의 힘이 중재의 역할을 하며, 화해의 첫걸음이 되는 메신저가 된다. 음악과 대화를 통해 ‘관용’을 알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바렌보임과 뜻을 같이했던 사이드는 그의 저서 ‘경계의 음악’에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첫 연주회에 관해 ‘정체성과 정치에 대한 논쟁이 믿을 수 없는 앙상블 연주로 녹아들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바렌보임에 대해 ‘타자(他者)에 대한 매료를 뚜렷이 드러내고,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불합리한 입장을 단호히 배척한다. 금지된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각자가 제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그의 견해에 나는 동의한다.’라고 말하며 그의 화합과 공존에 관한 행보를 지지했다.

바렌보임의 가장 인상 깊고도 과감한 도전은 2005년 팔레스타인의 임시수도 라말라에서의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특히 이스라엘 단원들의 안전이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지만, 그는 외교관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이끌고 성공적으로 연주회를 마쳤다. 이 연주회 이후 서로 다른 배경의 젊은이들은 상대방을 더욱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바렌보임은 무기를 들지 않고도 위험지역에서 음악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서로의 응어리를 풀고 음악과 대화로서 공존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전했다.

정치적 이견과 반목을 넘어서는 화합을 위해 음악으로, 그리고 대화로서 풀어나가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행보, 그리고 그들의 평화와 공존에 관한 진정성을 만해대상에서 높이 평가한 것은 불자 클래식 음악인으로서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화합과 융합, 그리고 공존의 의미로 생각된다.

‘법화경’ 제5장 ‘약초유품’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나무와 풀은 상중하가 있지만, 비가 내리면 모든 초목이 똑같이 비를 맞아 초목의 종류와 크기, 성질에 따라 줄기가 성장하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는다. 비가 내려 모든 초목이 똑같이 비를 맞지만 숲속의 풀과 초목이 자양분을 받아들이는 데는 각각 차별이 있다.”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이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관용’의 메시지이다.

바렌보임은 2011년 서동시집오케스트라와 내한해 임진각 야외무대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을 연주하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임진각 공연 이후 꼭 10년 만에 ‘만해평화대상’을 수상한 바렌보임과 ‘서동시집오케스트라’에게 ‘법화경’의 말씀이 큰 의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괴테의 ‘서동시집’에 실린 ‘은행나무’의 일부를 옮겨 본다.

‘두 쪽으로 갈려 있는 / 이 잎은 본래 한 몸인가? / 사람들에게 하나로 보이는 / 이것은 본래 두 개인가? / 이런 물음을 궁리하다가 / 나 참 뜻을 깨달았다. / 그대는 내 노래에서 역시 / 내가 하나이며 또한 둘임을 느끼지 않는가?’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97호 / 2021년 8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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