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빠사나 수행(빤냐 라끼따, 63) - 상

기자명 법보

유년시절부터 신행생활에 매진
선물 받은 책, 수행 전환점으로
미얀마 단기출가 동참수행하며
고된 수행의 지혜 경험·확인도

빤냐 라끼따, 63
빤냐 라끼따, 63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하고 석경(石徑)에 배회하니.”

불자라면 한번쯤 들어봄직한 고려시대 나옹 스님 토굴가의 도입 부분으로 스님처럼 일대사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끔씩 읊조리고 있다. 

나는 고등학교시절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큰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반야심경’ ‘천수경’ 그리고 대승불교의 소의경전이라 할 수 있는 ‘금강경’을 암송하는 등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1980년 전후 사회적 격동기였던 대학 시절에는 불교학생회 일원으로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도 캠퍼스에서 아침 예불을 주도하는 등 신행생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결혼 후에는 아내와 더불어 가까운 절에 가서 가끔씩 계도 받고 청법하는 등 일상적인 불교신행을 꾸준히 실천했다. 한 큰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아서 간화선을 참구하기도 하였는데 어느날 아내가 건네준 한 권의 책이 나의 불교수행의 큰 전환점이 됐다. 황영채 법학자의 위빠사나 수행기인 ‘아는마음 모르는 마음’이라는 책이었는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통해 위빠사나 수행을 알게 됐고 저자가 수행하고 있는 한국명상원에도 나가게 돼 지금의 위빠사나 스승님을 만났다. 그러나 30여년간 한국불교를 전부로 알고 부처님의 법맥이 현재 우리나라에 있다고 굳게 믿고 있던 한국불교인의 입장에서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수행으로 알려진 위빠사나 수행법과 초기불교를 받아들이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매주 토요일 명상원에서 법문청취와 경행, 좌선을 하면서 평일 출퇴근 시간에는 명상원에 비치된 ‘초전법륜경강의’ ‘12연기와 위빠사나’ 등의 법문집을 반복해 공부했다. 이와 함께 마하시사야도의 ‘위빠사나 수행의 기초’와 대림, 각묵 스님의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수차례 정독하고 나서야 마침내 위빠사나 수행의 이론과 실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10여년간 명상원에서 선생님의 법문을 듣고 경행과 좌선, 그리고 인터뷰를 통하여 고정관념의 틀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아울러 시간이 지날수록 관념과 실재를 구분하는 지혜가 점차 생기면서 일상에서 수행의 이익을 얻게 됐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번 정도의 청법과 수행만으로는 늘 부족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던 차에 정년퇴직을 맞으며 수행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에 그토록 갈망하던 미얀마에서의 집중수행에 동참하는 방법을 찾았고, 2019년 미얀마 양곤에 있는 참몌센터에서 안거기간 단기출가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들을 비롯한 일본, 캄보디아,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수행자들과 함께했다. 언어장벽으로 소통이 다소 불편했지만 가사 옷매무새를 서로 챙겨주는 등 눈빛으로 같은 길을 가는 도반임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사야도(수행지도 스승)와의 인터뷰를 통해 수행 중 나타난 현상에 대해 점검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탁발에는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스님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공양을 올리고 예경하는 모습에 미얀마 불자들의 따스한 신심을 마음 깊이 느꼈다. 

고된 시간들도 있었다. 미얀마의 기후 조건, 음식, 숙소, 언어소통 등의 문제는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반면 수행은 매우 힘들었다. 시간표상 새벽 4시 30분부터 시작해 저녁 9시 30분까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1시간 경행, 1시간 좌선으로 약 14시간 동안 알아차리며 90일간 수행하는 것은 고됐다. 그러나 명상원에서 같이 간 도반 수행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죽을 힘을 다해 매진했다. 미얀마 수행처에 가기 전 명상원 스승께서 몇 가지 당부하셨다. 명상센터에서 시키는 대로하고 시간표대로 수행하되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이 말은 쉬운 것 같아도 실제로 해 보니 정말 어려운 과제였다. 

출가까지 하는 모처럼 갖게 된 기회에 특별한 경험을 하고 크게 이루리라는 욕심 때문인지 몸과 마음에 힘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행히 높은 위빠사나 수행 단계의 지혜는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삐띠(piti)의 느낌과 다양한 현상을 보았고, 사야도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수행의 단계적 지혜를 제대로 경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