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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총림 범어사 방장 지유 스님

“칭념하는 불보살에 좋고 나쁨 없으니 오로지 일념으로 해야”

사람 움직이는 모습이 여럿이듯 마음 속에도 많은 생각이 있어
지금 괴로운 것은 자기 마음 속 온갖 번뇌망상에 흔들리기 때문 
우리가 염불하고 기도하는 것은 참된 모습에 도달하려는 노력

오늘은 백중 지장기도 회향 일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 모든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수도하고 마음을 깨달아 성불하셨습니다. 깨닫고 나서 보니 일체중생이 부처님과 같은 불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구할 필요 없이 우리 마음속에는 복과 지혜가 조금도 모자람 없이 구족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모든 중생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면 보자마자 이러쿵저러쿵, 좋다, 나쁘다, 무슨 소리가 나면 소리를 듣자마자 이러쿵저러쿵 좋다, 나쁘다, 온갖 생각들을 일으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은 좋다고 집착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싫다며 멀찍이 보내고 싶은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어지럽고 괴롭다고 합니다. 

모처럼 바깥 좋은 경치를 보려다가도 이끼가 끼고 그늘지고 안개에 묻혀 버리면 아무것도 보지 못해 답답합니다. 그와 같이 마음속에는 탐심, 뜻대로 안 되면 화나는 진심, 어리석음인 치심, 이렇게 세 가지 독이 덮어놓듯이 가려버립니다. 그래서 제대로 보지 못하니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일념(一念) 즉, 한 생각 돌이켜버리면 끝없는 과거로부터 나를 괴롭혀왔던 자기 속의 망상과 번뇌,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를 괴롭히던 탐, 진, 치 삼독(三毒)이 태풍에 구름이 날아가듯이, 구름이 헤쳐지면 밝은 하늘이 보이듯이 부처님과 같은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 여러가지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는데, 진리는 하나입니다. 진리는 하나이지만, 환자가 병이 들었을 때 가벼운 병, 무거운 병 등 여러 가지 병이 있습니다. 그 병에 맞도록 의사가 처방해서 무거운 병을 가진 환자에게는 많은 약을 처방하고, 가벼운 병의 환자에게는 적은 양의 약을 처방하듯이 사람마다 관세음보살이 좋으면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이 좋으면 아미타불, 지장보살이 좋으면 지장보살을 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불보살이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심(一心)으로 염하는 것입니다. 흐트러진 생각을 내가 지금 염하고 있는 불보살의 이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몸과 입과 생각으로 하나 되는 것이 일심이고 일념입니다. 자꾸 염하고 염하다 보면 그렇게 생각이 흐트러져 있었지만, 점점 일념의 힘이 강해집니다. 전 같으면 누가 욕하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끌려갔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에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항하(恒河) 모래의 수같이 많은 번뇌 망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무량아승지겁(量阿僧祗劫)이라고 합니다. 그 많은 마음속의 생각이 일념으로 모이고 나중에는 일념 하나로만 뭉쳐져 버립니다.

경전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미타불재하방(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불이 어느 곳에 있느냐, 이번에는 지장보살을 염했으니까 “지장보살재하방(地藏菩薩在何方)”, 지장보살이 어디 계시느냐고 합시다. 그리고 “착득심두절막망着得心頭切莫忘)”, 마음속에 굳게 묻고 간절히 잊지 말라고 합니다. 바깥으로 향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염하고 있는 속에 몸과 입과 생각이 하나의 송곳으로 구멍을 뚫듯이 지극하게 나가면 염도염궁(念到念窮), 염도는 생각에 이른다는 의미입니다. 염하고 염하면 나중에는 다할 궁(窮), 생각이 다 해버립니다. 생각이 다 하면 어떻게 됩니까? 무념처(無念處), 생각이 없는 곳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무념처에 도달해보니 눈으로 보는 물체, 산, 강물, 귀에 들리는 종소리, 목탁 소리, 심지어 태풍이 몰아치는 소리, 코에 맡아지는 향내, 모든 음식 냄새, 입에 들어오는 짜고, 쓰고, 단 그 모든 맛이 그대로 부처님의 모습이요 진리의 모습이요 내가 찾던 부처님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잡념과 염불을 구별합니다. 잡념은 나쁜 생각이고 염불은 좋은 생각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따져보면 악한 생각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마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착한 생각 역시 마음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음은 착한 생각, 나쁜 생각, 별의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러쿵저러쿵 온갖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번뇌 망상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을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에 도달해 놓고 보면 어떤 생각도 부처님의 그림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생각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마음과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예를 들겠습니다. 불교를 강의하는 어떤 교수님이 수업 중에 한 대학생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교수님. 우리가 고통받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이 생각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그 교수님은 얼른 답이 나오지 않더라고 합니다. 교수님은 제가 있는 원효암으로 찾아왔습니다. “스님. 이럴 때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합니까?” 

저는 거꾸로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처사님에게 반문하겠습니다. 파도가 일어났다고 하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그러니까 이분이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바람이 일어났다고 하면 바람이 어디에서 일어났습니까?” 역시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두었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사님, 파도가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찾으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찾지 말고 파도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파도는 무엇입니까? 물입니까? 물이 파도가 아닙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물 움직이는 것이 파도입니다. 가만히 있는 물을 파도라고 하지 않습니다.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태풍이 불고 있습니다. 수건이 여기에 있는데 바람이 불면 수건이 철렁철렁 움직입니다. 수건이 자기가 좋아서 춤을 추는 건 아닙니다. 어떤 것이 건드리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십시오. 공기가 흐르는 것, 공기가 움직이는 것을 바람이라고 합니다.

파도는 물에서 일어났고 바람은 공기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그 일어난 곳만 묻지 말고, 그렇다면 생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파도는 물의 움직임이고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인 것처럼 이 마음 움직이는 것이 바로 생각 아닙니까? 움직이는 모습이 굵고 가늘고 거칠고 부드럽고 착하고 악하고 여러 가지인 것처럼 한 마음속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각이 있는 겁니다. 사람이 고통스럽고 괴롭다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속의 온갖 번뇌 망상에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을 깨닫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마음이라고 합니까? 파도로 말하면 무엇이 물이냐는 것입니다. 만약 파도를 물이라고 정해버리면 파도가 없어졌을 때 물도 없어졌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파도는 없어졌지만 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마음속에 한 생각이 일어났다고 해서 없던 마음이 생긴 것도 아니고, 그 생각이 사라졌다고 해서 마음이 없어진 게 아닙니다. 생각은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생사(生死)라고 합니다. 나면 없어지고 없어지면 생기기를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 생사 속에 생사와 관계없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 있다고 합니다. 불생불멸을 불교에서는 열반(涅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생사 속에 생사 아닌 마음이 같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파도 속에 물이 있지 파도 떠나서 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파도가 파도 없는 물로 돌아가듯 마음속 탐진치로 인해 나를 괴롭히던 온갖 번뇌 망상이 염불하고 독경하면서 싹 사라져버립니다. 그때 움직이지 않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에서 바깥을 관찰하면 모양도 있고 소리도 있고 온갖 냄새가 다 있습니다. 그대로 진리입니다. 그때 부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때 참된 부처님을 친견한 것입니다. 

아직 염불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참된 모습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참된 염불이 되기 위해서 불보살의 이름을 빌린 것입니다. 그 빌린 힘으로 마음을 가리고 있는 모든 번뇌 망상이 다 녹고 사라져 버릴 때 염불했던 흔적도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리이고 빛이고 맛이고 냄새이고 주위 환경 그대로 사바세계가 부처님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하니까 어떤 모습을 부처님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유형의 모습을 통해서 유형 아닌 마음을 보아야 유형에 의지했던 공덕(功德)이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편안한 것입니다. 누가 욕을 해서 화가 날 때, 마음이 어두워졌을 때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렇게 한 생각 돌이켜버리면 본래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수행, 관세음보살이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면 지장보살을 염하면 그 어둠이 없어집니다. 이것이야말로 좋은 약 아닙니까? 

물론 상근기는 약을 먹을 필요 없이 바로 해결됩니다. 여러분도 빨리 상근기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소개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여러 방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8월25일 금정총림 범어사(주지 경선 스님) 설법전에서 봉행된 ‘백중 지장 기도 선지식 초청 회향 법회’에서 지유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600호 / 2021년 9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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