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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겐 스님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기자명 남춘호
  • 기고
  • 입력 2021.09.06 13:40
  • 호수 1600
  • 댓글 1

2003년 법련사 초청으로 첫 한국 방문 이후 이주민 지원 시작
이주민 위한 자비나눔 진력했지만 뇌졸중 찾아오며 반신 마비
불교계 이주민 역사서 중요한 우르겐 스님…활동 잊지 말아야

202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우르겐 스님의 최근 모습.
202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우르겐 스님의 최근 모습.

남춘호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이 한국에서 네팔 이주민들을 지원하다가 지난해 7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우르겐 스님의 그간 활동과 근황을 담은 ‘우르겐 스님,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제하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남 연구위원은 2010년에서 2014년까지 약 5년간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편집자

인류에게 남은 몇몇의 제도적 굴레 중 하나는 이주민에 관한 것이다. 지난 100년간 인간의 자유를 감싸는 굴레를 상당부분 떨쳐버렸다. 식민지 해방, 노예 해방, 여성 인권 향상, 민주화 등 인류사에 획을 그을 자유의 투쟁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민주화라는 거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한국사회의 이주민 분야도 상당부분 진척이 있었지만, 제도적인 제약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세계화의 흐름에도 국경이라는 강력한 벽은 무너지지 않으니, 인류애적인 세계시민으로서의 도약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는 필연적으로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더 나아가 불법착취가 그것이다.

네팔은 예전부터 다른 나라로 이주노동자를 보내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네팔은 세계에서 매우 가난한 국가에 속한다. 2020년 기준 1인당 GDP가 1155 달러에 그치고 있다. 내륙국가에다가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있으며, 제조업 산업기반이 매우 약하다. 그래도 히말라야라는 천혜 자연의 선물이 있어 관광산업에 목을 매고 있다. 그러나 제조업이 없으니 일자리가 없다. 결국 이주노동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이다. 한국에도 1990년대부터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가 들어와 열악한 노동현장인 영세사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도가 많은 부분 정비되었다지만,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착취와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네팔 이주민들을 지원한 이가 바로 네팔 출신의 우르겐 스님이다. 우르겐 스님은 네팔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산재, 심각한 질병 등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법회와 명절행사를 통해 심적으로 달래주기도 하였다. 즉, 우르겐 스님은 네팔 이주민들의 정신적 지주뿐만 아니라 노동과 생활 전반의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스님은 한국어 교육·노동 상담 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네팔 이주민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스님은 한국어 교육·노동 상담 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네팔 이주민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르겐 스님은 법련사(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만다라 전시회에 초청받아 2003년에 한국을 방문하고, 이듬해에 다시 초청받아 본격적인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부터 능인선원 산하의 ‘한국YBA(Young Buddha Association)’와 함께 이주민 지원사업(명절행사, 한국어 교육, 건강검진 등)을 시작했다. 이후 본격적인 사업을 위해서 2008년 용수사를 개원하게 된다. 용수사는 네팔법당이자 이주민센터 기능을 하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우르겐 스님은 적극적으로 이주민 지원활동을 하게 된다. 주요 업무는 환자들을 데리고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돕는 것이었다. 환자가 많은 달에는 한 달에 보름이나 병원에 다닌 적도 있었다. 이외에도 노동상담, 급여 체납 등의 문제를 해결했다. 용수사는 정기적으로 법회를 봉행하지 않고 신도들의 요청이 있을 때 수시로 법회를 연다. 이와 함께 중요한 명절 행사는 설날(로싸), 부처님오신날, 추석이 있는데, 이때 300~500명 정도의 신도가 모인다.

우르겐 스님은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이하 마주협)와 불교계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2013년 마주협이 행안부 지원을 받아 진행한 ‘나마스떼 네팔&코리아’ 국외봉사였다. 이 사업에서 우르겐 스님은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네팔의 상황을 파악하고, 최적의 사업지역 선정 및 봉사단 운영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네팔 국외봉사는 마주협의 세 번의 국외봉사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았다. 용수사 주지이자 동두천이주민센터장으로서도 우르겐 스님은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올해의 불교활동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정신적 기둥이자 보호자였던 우르겐 스님은 2020년 7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마침 다와 라마(네팔 출신 용수사 신도)가 있어서 병원으로 빠르게 갈 수 있었지만, 워낙 상태가 나빴다. 수술은 6시간이나 걸렸고, 수술 후에도 의사 선생님은 예후가 나쁠 것으로 예상했다. 수술한 지 열흘 후에야 의식을 차렸다. 대학병원과 재활병원을 거쳐, 1년간 병원신세를 졌다. 치료비는 다행히도 능인선원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수술비, 입원비 및 각종 재활 비용을 포함해 1억 1천만 원이라는 큰 금액이었지만, 용수사 운영위원회와 능인선원 신도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우르겐 스님이 쓰러진 후 용수사, 동두천이주민지원센터의 활동뿐만 아니라 네팔에서 진행하던 사업도 멈췄다. 2017년부터 네팔 신두팔촉에 지역민들의 신행과 복지를 지원하는 주민자치센터 겸 법당을 짓는 사업이 있다. 총 1억 4천만 원 사업비 중 1억 1천만 원을 투입하였지만, 현재는 사업이 멈춰있다.

우르겐 스님은 2021년 7월 말에 다시 용수사로 돌아왔다. 그러나 병마가 휩쓸고 간 그의 몸은 성하지 못했다. 신체의 절반(오른쪽)이 마비되고, 의사소통 장애가 있어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다행히 퇴원 후 좀 더 회복되어 본인의지로 일어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추가 치료방안이 마땅치 않고 일상생활 영위가 어려워, 네팔로 돌아가 치료 받기로 결정했다.

우르겐 스님의 소식을 듣고 법보신문, 마주협, 국제포교사회, 다문화불교연합회(이하 다불연)와 옛 동료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했다. 특히 귀국 예정 소식을 들은 옛 동료들이 용수사를 찾아 송별의 마음을 전했다. 우르겐 스님의 병든 몸을 보며 다들 마음이 아팠고, 아픈 몸을 보여주는 게 불편한 우르겐 스님이었지만, 지난 일들을 얘기하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상의했다. 다들 10여년 이상 알고 지낸 이들이라서 진솔하고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지독한 병마가 우르겐 스님을 할퀴고 지나갔다. 부디 바라건데 언젠가 그가 자유롭게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건강히 돌아오기를. 남은 우리는 우르겐 스님을 잊지 않고, 그의 불행을 스승으로 삼아 성찰하고 변화해야 한다. 우르겐 스님을 포함한 모든 외국인 스님은 언젠가 한국사회의 이주민 역사에서 분명 재조명될 것이다. 그 때는 아마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없어지고, 한국사회의 이주민 역사를 체계적으로 되새겨보는 시점일 것이다. 우르겐 스님은 불교계 이주민 역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다. 일반대중은 그를 모르겠지만, 불교계는 우르겐 스님의 활동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남춘호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연구위원

[1600호 / 2021년 9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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