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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니기도 김준우(48, 법성) - 상

기자명 법보

법정 스님 ‘무소유’로 불교 접해
지인 권유로 정혜사와 인연 맺어
법명 ‘법성’ 받고 수행 정진 다짐
동안거 기간 사찰 관리 맡게 돼

48, 법성

내가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군생활 중 같은 소대 선임병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란 책을 권하면서부터다. 당시엔 작고 얇은 소책자였지만 나에겐 아주 큰 감동과 삶의 관점을 바꿔준 엄청난 책이었다. 몇 시간이면 읽고도 남을 책을 매일 조금씩, 조심스레 넘기며 각 페이지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음미하며 읽었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렇게 불법과 인연을 맺어 군생활을 법정 스님 책 속에 푹 빠져 지냈다. 왜 그랬을까.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아보며 생각컨대, 20대 초의 나는 아집과 편견, 호불호가 가득 찬 모습이었고 모든 일의 결론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 바쁜 인격체였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책을 통해 모든 것이 내 탓이오, 자기 자신이 등불이며(자등명, 법등명)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도, 운명도 달라진다는 진리(일체유심조), 무소유란 철학을 공감하게 되면서 미래엔 달리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전역 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매일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 속에 무언가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 과감히 퇴사했다. 그리고 변호사의 꿈을 안고 신림동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첫 시험 불합격, 2년 차도 불합격. 처음의 패기와 자신 있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불안한 고시생의 나날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2차 스터디 모임의 두 살 위 형님께서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셨다. 불교라고 답했지만 언급한대로 그저 법정 스님의 책, 몇 권을 독파한 신심 없는 독자였을 뿐, 부처님 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형님께서 고시원 중턱에 ‘정혜사’란 절이 있는데 매주 일요일 오후 1시에 고시원생 법회가 있고, 이후 주지스님과 도반 십여 명이 차담을 하며 마음 나누기 시간을 한다며 동참을 권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처음으로 법회에 참석했다. 

주지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행복한 신행생활이 시작됐다. 고시공부 5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6시에 일어나 108배를 올리고, ‘천수경’ 독송과 관세음보살주력, 참선수행에 매진했다. 때론, 100일 200배 기도와 300배 기도도 동참했다. 

수행의 선물이랄까? 드디어 2008년 무자년 음력 7월15일 백중날, 스님께서 법명를 내려주셨다. 주지스님께선 흰 봉투 2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시며 “왼쪽 것은 지금 당장 자네에게 어울리는 옷이고, 오른쪽 것은 십여년 더 수행 정진해 오십이 되어야 입을 수 있는 옷인데, 어떤 게 좋겠습니까?”라고 물어보셨다. 그때까지도 욕심이 많은 터라 겁 없이 오른쪽 봉투를 택하여 열어보니 ‘법성(法性)’이란 법명이 적혀 있었다. 스님은 “법성은 불명입니다. 부처님의 또 다른 이름이니 열심히 정진해 부처님 같은 사람이 되길 기원합니다”하시며 빙그레 웃으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테니, 열심히 살고 끊임없이 수행해서 50살 되거든 딱 맞는 옷을 갖춰 입으라고도 하셨다. 그 말씀은 내 인생의 사명이 됐으며 스승님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함으로 수행 정진하고 있다. 

가을로 접어든 어느날, 주지스님을 모시고 계시던 작은 스님이 학업을 위해 강원에 들어감에 따라 스님은 절에 홀로 남으셨다. 설상가상으로 건강도 안 좋아지신 스님은 추운 겨울, 홀로 계시기가 어려워져, 동안거 기간 도반 스님이 계신 사찰로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하셨다. 그날, 스님은 날 부르시고 고시생들이 기도 할 수 있게 오전 6시에 절 문을 열고, 저녁 6시에 문을 닫는 임무와 절의 관리를 맡기셨다. 

동인거 동안 108배 대신 낙엽을 쓸고, 눈이 오면 제설작업을 하며 열심히 관리했다. 이후 주지스님은 100일 간의 동인거가 끝나 따뜻한 봄날 절에 돌아오셨고 날 부르셨다. 스님은 내게 단주를 주며 소감을 물으시기에 이렇게 답했다. 

“처음엔 절 관리 못 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의무감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50여일이 지났을 무렵, ‘매일 떨어지는 낙엽도, 내린 눈도 바로바로 없애야 쌓이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답을 들으신 주지스님은 “법성 거사, 이번에 제대로 수행하셨습니다”하시며 껄껄 웃으시고는 칭찬의 말씀을 해주셨다.

[1602호 / 2021년 9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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