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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기대와 우려

기자명 최종환

탈시설이 쟁점이다. 장애인복지관 기관장으로서 탈시설이라는 단어가 무겁고 진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가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포함되어,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인권적 삶이 보장되는 환경을 만들어야한다는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탈시설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지난 8월2일 보건복지부는 ‘거주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장애인의 온전한 자립을 뒷받침하겠습니다’라는 헤드라인으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발표했다. 

탈시설 로드맵에는 주거결정권 보장, 독립생활을 위한 물리적 공간과 복지서비스 결합, 거주시설 신규개소 금지와 거주인의 자립생활을 촉진할 수 있는 거주시설 변환지원과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연 740명을 자립지원하여 2041년에 지역사회 전환을 마무리 한다는 계획이 반영되어있다. 

그러나 탈시설 로드맵 발표 후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은 두 갈래의 울분과 외침을 보였다. 한쪽은 탈시설을 찬성하는 쪽이었고, 다른 한쪽은 탈시설을 반대하는 부모들의 외침이었다.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지지하며 시설 밖 자유로운 삶을 희망하는 부모단체는 보다 명확한, 충분한 로드맵 없이는 시설 밖은 지옥이 될 것이라고 집회를 이어가고, 시설에서의 생활을 요구하는 부모단체는 준비 없이 지역으로 내몰려지면 ‘사형선고’와 같다고 국민청원을 올리는 등 실로 각각 느끼는 ‘탈시설 로드맵’에 대한 불안감은 두 쪽 모두 높기만 하다.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 그 수가 100명이건 20명이건 집단 속에서 효율적, 효과적, 안전한 돌봄을 위해서는 통제가 존재하게 되고 자유로운 삶은 포기될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그래서 대규모 시설에서 동네라는 공간으로, 스스로 구성한 개인적 공간으로의 전환을 통해 통제가 아닌 자기 선택적 삶과 주민으로서의 보통의 삶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 탈시설 로드맵의 방향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같은 장애자녀를 돌보며 다른 입장으로 탈시설 요구와 반대 입장을 보이는 부모님들은 이 공간 변화 이후의 지역에서의 안전한 삶’에 대한 확신을 요구한다.    

탈시설을 불안하게 하는 예를 들어보자. 2019년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서 활동지원서비스가 인정조사에서 종합조사로 바뀌며 오히려 중증장애인들의 활동지원시간이 대폭 삭감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역에서 독립된 삶을 위한 권리로서의 활동지원이 보장되지 않는 한 보통의 삶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이미 다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자립하였고 이제는 발달장애인들이 많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증장애인, 발달장애인에게 맞는 개인별 맞춤서비스, 자산형성기반 지원, 동네중심 인프라, 민-관-마을을 잇는 커뮤니티케어와 사례지원체계 등 자립생활인프라의 대폭 확충, 지원체계 없이 물리적 공간 이동을 쫓기듯 진행하게 되면 부모님들의 서로 다른 울분과 외침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구체적 요구가 현장에 나와 있는 만큼 어떻게 주워 담아 제대로 해낼 것인지는 정부의 몫이다. 

사실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쓸 때 기존 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랜 세월 시설에서의 크고 작은 인권침해와 비인권적 삶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며 모든 시설이 그렇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시설 밖에서 스스로의 삶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거주시설 역시 주도적으로 전환지원을 위한 로드맵을 세우고 촉진하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곧 문재인 정부의 탈시설, 자립지원 공약은 공소시효를 다해 간다. 탈시설 쟁점의 핵심은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관통하는 맥락있는 지원체계이다. 부디 시설에서 나온 지역에서의 보통 삶이 머나먼 험한 길이 아니라 빠른 정책개선과 확충으로 이어져 우려의 시선조차도 기우였다고 느껴지기를 희망해본다.

최종환 서울시립영등포 장애인복지관 관장 chungpajjang@hanmail.net

[1603호 / 2021년 10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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