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용화선원-시민선방의 후끈한 참선 열기
인천 용화선원-시민선방의 후끈한 참선 열기
  • 이우상
  • 승인 2004.03.2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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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인’과 ‘깨달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엉뚱한 우문으로 말문을 연다. 이 시대 최고의 코드는 골인이다. 슛 골인의 함성이 천지에 자욱하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회로가 골인에 맞추어져 있다. 승리, 정복, 쟁취, 출세, 환희, 감격 등 모든 가치의 실현은 골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머리카락 하나 만큼의 차이로 행복과 불행이 갈라진다.

빠름, 속도전, 디지털이 그 가치를 획득하는 도구이다. 안타깝게도 깨달음의 길은 그 가치와 동반하지 못한다. 그것과 역행하는 노선을 만나야 도달할 수 있다. 법열은 골인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영예보다 높은 것이기에 가부좌를 틀고 화두를 잡고 있다.

용화선원은 도심 사찰이다. 인천시 남구 주안동, 주변엔 아파트와 상가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수행의 입지로서는 마뜩찮다. 애초에는 사방 수십 리가 광활한 염전이어서 언덕에 세워진 가람이 홀로 우뚝했었으나 지금은 도시의 포위망이 턱밑까지 치고 들어왔다.

위용이 심상치 않은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바세계가 아니다. 안거수행 중인 스물 여섯 분의 스님과 시민선방에는 이백 팔십 명의 재가신도가 참선 삼매 중이다. 빠름과 속도, 그것을 초월한 너머에 존재하는 깨달음을 위해 정진 중이다.

차안과 피안이 종이 한 장 차이인가. 일주문 밖 대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이 심산유곡 새소리처럼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바깥의 먼지가 함부로 담장을 넘어오지 못한다. 수행 중인 스님들이 바깥에 발을 내디딜 수 없는 것처럼. 여름, 겨울의 본 안거 외에도 봄, 가을에도 한달 반씩 안거를 실시하니 1년 사시사철 안거 중이다. 그래도 마다 않고 방부를 들이고자하는 납자가 많으니 심상치 않은 도량이다.

용화선원의 무게를 더해주는 것은 시민선방의 참선 열기이다. 빠름에 익숙한 속인에게, 삼매의 법열을 깨치지 못한 이들에게 참선이란 무서운 고문이다. 3초를 참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하루 여덟 시간 가부좌 참선은 도대체 무엇인가. 물가로 데려다주는 스승이 없어서, 화려한 파티가 열리는 연회장을 몰라서 ‘이 뭣꼬’를 붙들고 앉아 있는가.

용화선원은 활구참선을 수행하는 도량이다. 인천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명성이 만만치 않다. 이미 입적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전강선사를 여전히 조실로 모시고 있고 법좌를 이어받은 송담스님이 선원장을 맡고 있다. 송담스님은 좀처럼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다. 현재의 거처도 알려줄 수 없다고 총무 원성스님이 송구한 표정을 짓는다.

용화선원의 모든 운영은 스님들과 신도들의 참선수행을 위한 공간 제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님들이 소임 맡기를 꺼려 직책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출세간에서나 볼 수 있는 별난 구조조정이랄까. 선방은 세 개의 축으로 틀이 짜여져 있다. 스님 선방, 보살 선방, 시민 선방이 그것이다.

스님 선방(법보선원)은 사시사철 안거 수행 중인 곳이다. 댓돌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들만 보인다. 선방 근처에서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럽다. 발소리 죽이며 뜰에 들어서자 울타리 바깥에서 개가 철없이 짖는다. 저 개는 이미 성불을 했는가 아니면 근기를 시험하는 염마졸인가. 도회에 위치한 가람이지만 수행 공덕의 매력이 만만치 않아 매년 수십 명의 스님이 방부를 청한다.

보살선방은 석 달 동안 참선 수행을 각오해야 입방할 수 있다. 시민 선방은 한 달 단위로 입방할 수 있다. 스님 선방의 일과야 아무리 가혹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겠으나 보살, 시민선방의 일과 역시 매섭다. 03:00 기상, 03:30-04:00 아침 예불, 04:00-05:00 새벽 정진, 08:00-10:00 오전 정진, 14:00-16:00 오후 정진, 19:00-21:00 저녁 정진. 빈틈없이 진행된다. 그야말로 용맹정진이다. 무서운 힘이다. 무서운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용화선원의 초석을 다진 전강 선사는 전남 곡성 출생으로 15세에 해인사로 출가했다. 23세 때 곡성 태안사에서 깨달음을 얻고 30대에 범어사 조실,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될 정도로 선의 준걸이었다. 1020년대 용성, 만공, 혜월, 혜봉, 보월, 고봉 스님들과 전강 선사가 한판 벌인 선불장의 일화는 오늘날까지 선가에 회자되고 있다.

법맥을이은 송담 스님은 ‘10년 벙어리로 오도하지 못하면 다시 10년간 눈 감아버리겠다’고 각오를 밝힌 바 있다. 10년 묵언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선풍을 진작시키고 있다. 송담 스님이 밝힌 활구참선의 요지는 이렇다.

‘선지식으로부터 공안 하나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것이다. 세상의 공부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연구하여 차츰 얻어지는 것이지만 참선 공부는 이미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리고 시작한다. 일시에 다 버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공부에 빨리 힘을 얻게되고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하면 그만큼 늦어진다.’

<사진설명>도량 전체가, 고요하지만 뜨거운 수행열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묻기를.
‘뾰족한 산봉우리에 달 뜨는 것을 보고, 두견새 소리 속에 나귀를 먹인다.
원앙새 수 놓은 것은 보여주거니와 수 놓은 금침은 사람에게 건네 줄 수가 없다.’

선방은 열기로 가득하다. 들어서니 안온한 온실 같다. 편한 오수를 즐기기에 좋을만큼 따뜻하다. 눈을 뜨고 감음에 분별심이 일지 않을 정도의 밝기이다. 그러나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니 묵직한 기류가 무례한 방문자의 목을 비틀고 허리를 꺾고 등을 친다. 수백 명이 안으로 삼매의 진땀을 흘리고 있거늘 어찌 뜨겁지 않을까. 입승 스님의 죽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후 정진을 마친 이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참선수행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낮고 고른 음성으로 답한다. 불같은 성미가 순화되었고, 행주좌와 어묵동정시 화두지킴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용화선원의 입지는 소위 말하는 명당이다. 부끄러운 증거가 있다. 일제는 조선의 맥이 흐르는 곳에 쇠말뚝을 박아 정기를 끊고 지역마다 좋은 터에 그들의 신사를 세웠다. 선원의 한적한 귀퉁이에 주안신사(朱安神社)라는 선명한 표지석이 있다. 부끄러움은 숨길 일이 아니다. 그것을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침략을 위한 도구였던 터에 눈 맑은 납자와 탐욕을 내던진 재가자들이 오직 깨달음 한길을 위해 활활 타는 열기로 정진하고 있으니 그 표지석마저 소중한 유물 같다.


글/사진·이우상

소설가·대진대 문창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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