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내세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삶은 현생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생까지 이어져 새로운 차원의 세상에 태어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 같은 내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곧 천국과 지옥이다.
천국과 지옥은 현생의 인간들이 지은 선행과 악행의 결과에 의해 태어나게 되는 장소들이다. 대개 이렇게 천국 아니면 지옥 식의 둘로 양분되는 내세관은 유일신교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에서 많이 나타난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경우 신의 심판에 의해 인간의 내세가 결정되는데 천국 아니면 지옥 둘 중에 한 곳으로 가게 되어 있다. 이들 종교는 인간이 선을 행했느냐 악을 행했느냐보다는 신을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를 최우선적 가치로 삼기 때문에 내세도 천국과 지옥만이 존재한다.
반면 불교의 경우는 인간이 살아 있을 때에 어떤 행위를 했느냐를 최우선적 가치로 삼는다. 따라서 불교의 내세는 인간의 행위에 비례한 만큼 다양하게 펼쳐진다. 이른바 윤회의 세계가 그것이다. 윤회의 세계는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는 극단적 구조의 세계가 아니다. 윤회의 세계란 천상계, 인간계, 수라계, 축생계, 아귀계, 지옥계 등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나누고 나누어 세분화시킨 다층적 구조의 세계이다. 마치 흰색이 천국이고 검은색이 지옥이라면 그 중간에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다양한 회색들이 존재하듯이 윤회의 세계도 그렇게 존재한다.
여기서 한 가지, 신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와 인간의 행위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교리가 있다. 그것은 두 종교 모두가 천국과 지옥을 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천국은 행복과 기쁨이 극에 달한 곳이고 지옥은 형벌과 고통이 극에 달한 곳이다. 무신론자나 유물론자들에게 있어 천국과 지옥은 아예 인정을 안하다보니 관심 밖의 일이라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내세를 철석같이 믿고 사는 신앙인들에게는 삶의 전체를 지배할 만큼 심각한 주제들이다.
그런데 이들 천국과 지옥 가운데에 대다수 신앙인들이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곳은 아무래도 지옥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싫어하고 거부한다.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지만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일부 신앙인들은 왜 그 종교를 택했느냐는 물음에 천국가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고 지옥가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만약 천국만 있고 지옥이 없다면 꼭 종교를 믿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대답한다. 광신도들 중에는 기도 도중 지옥을 다녀왔다고 간증하면서 비신자들을 겁박한다. 신경정신 병리학에서는 이를 과종교증 종교망상증으로 본다.
다른 종교에 비해 불교는 내세에 대한 믿음은 그리 강렬하지 않다. 불교 믿으면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도 없고, 부처님이 자기 맘대로 천국 보내고 지옥 보내는 분도 아니다. 또 불교는 모든 게 마음에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이다 보니 내세에 관한 집착이 별로 없는 것이다. 불자들 중에 불교 안 믿으면 지옥 갈까봐 믿는다고 답하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 불교를 수행하는 사람이나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 중에도 지옥 이야기를 하는 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의 가르침 속에 지옥에 대한 강력한 가르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 종교보다 지옥의 참상은 더욱 사실적이고 체계적으로 묘사된다. 물론 믿고 안 믿고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독자들 중에는 지금까지 내용을 읽으면서 대체 지옥과 소리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궁금해 할 것이다. 다음호에 불교의 지옥을 설명하면서 소리와 관련한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604호 / 2021년 10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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