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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열려 있는 세상에서의 콘텐츠란?

기자명 자현 스님

능력으로 명운 가르는 공평한 진검승부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던
‘모수자천’ 고사는 옛날 말
‘콘텐츠 무적’인 시대에는 
드러나지 않기 더 힘들어

나는 폰번호를 비공개하는 사람이 아니다. 요즘은 모르는 번호를 받지 않는 시절이니, 번호가 공개돼도 문제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필요한 연락은 문자나 카톡으로 먼저 오니 공개가 오히려 편한 것 같다. 물론 간혹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기도 하는데, 이런 것은 진짜 인연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이런 전화는 더욱 소중히 생각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세상의 흐름이 바뀌면서, 이제 폰번호 공개 정도는 문제가 아닌 시절이 된 것이다.

이렇게 허술하게 번호를 관리해도 메일로 연락을 주는 분들이 가끔 있다. 흥미롭게도 미국에 사시는 분이었는데, 불교적인 내용을 새롭게 얘기하고 싶으니 발표할 곳을 연결해 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이분은 세상의 변화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 갑이고, 발표할 곳이 지천이다. 예전에는 신문이나 TV에 한 번 나오는 것만으로도 판도가 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문과 방송이 몰락하고, 포털까지 주저앉는 격변의 시대가 아닌가? 때문에 신문이나 방송할 것 없이 좋은 콘텐츠를 가진 사람을 찾아 혈안이 되어 있다. 이들을 잡아야만 그나마 자신들의 생명이 연장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찾아도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이다.

해서 나는 ‘요즘은 투고도 많이 열려 있고 유튜브 등 개인 방송도 가능하니, 드러내면 된다’고 답해드렸다. 요즘은 TV드라마보다 넷플릭스 제작 프로가 더 인기고, 유튜브의 ‘머니게임’이 조회 수가 좋으니 유사한 콘텐츠가 TV제작으로 결정되기도 하지 않는가! 이것이 개인과 방송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인터넷 혁명의 결과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4차 산업의 변화가 시작된 더욱 격변의 시대가 아닌가?

사마천의 ‘사기’에서 유래된 사자성어에 ‘모수자천(毛遂自薦)’과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이 두 가지는 사실 연결되어 있다. 즉 하나의 사건에서 두 개의 사자성어가 만들어지는 특이한 경우인 셈이다.

모수자천은 ‘모수가 스스로를 천거했다’는 뜻으로, 전국시대 조나라 평원군이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모집하자 모수가 ‘저요’하고 손들었다는 내용이다. 이에 평원군이 ‘낭중지추’ 즉 ‘능력자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튀어나오게 마련인데, 당신은 전혀 두각을 내지 못하지 않았냐’고 말한다. 그러자 모수는 ‘일단 주머니에 넣어 보라’고 답한다. 이 이야기는 모수가 강력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처럼, 유능한 인물이었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예전에는 모수처럼 스스로 나대지 않으면 드러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여기에 인간관계까지 해야 했으니, 뚫고 나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이 아니라, ‘콘텐츠 무적’인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로또가 나오기 전에는 무당과 점쟁이 중에 ‘복권 당첨 번호는 아는데 그 번호의 복권이 어딨는지 몰라서 안타깝다’는 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로또가 나오면서 이런 영험한 분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미래를 안다면 굳이 단가가 낮은 점이나 굿을 안 해도 된다. 로또만 매주 맞춰도 1달에 30억은 벌 수 있고, 미국과 유럽까지 진출한다면 1000억을 버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로또계의 방탄소년단이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시절인 것이다. 이들이 이런 손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 것은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사회는 능력 있고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모수가 자신을 ‘주머니에 넣어달라’고 한 절규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즉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문제인 시대인 것이다.

감추어진 사회가 인간관계라는 줄이 작동하는 시절이라면, 드러난 사회는 능력에 의한 진검승부가 명운을 가르는 시대이다. 전국에 깔린 인터넷망처럼, 모두에게 열려 있는 보다 공평한 세상. 이것이 인류가 나아가고 있는 사회의 거대한 진화방식이기 때문이다.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kumarajiva@hanmail.net

[1605호 / 2021년 10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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