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장에서 ‘문화재관람료’를 ‘통행세’로 매도해 물의를 일으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번엔 ‘영화 관람료’ 비유를 들며 억지를 부렸다. “영화관람료는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받아야 한다”며 “극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근처에 있다고 받으면 안 되겠죠”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영화관과 명승도 구분 못하는 국회의원이란 말인가? 자신의 무지로 인해 상처 입은 교계에 사과·참회하기는커녕 “정청래 말이 맞다”는 일부 댓글에 기대 자신의 언행에 대한 정당성만 운운하고 있으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사안을 한 국회의원의 물의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됐다.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해도 개인이나 단체가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를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을 경우 국민의 문화유산 향유권이 제한될 수 있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선조들의 얼이 배인 것들 중에서도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국민들이 좀 더 폭넓게 만끽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에 따른 최소한의 비용 마련을 위해 ‘문화재관람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1967년 3월 공원법이 제정됐다. 자연풍경지를 보호하고, 국민의 보건과 휴양,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하기 위함이다. 그에 따른 비용 마련을 위해 ‘공원입장료’를 징수할 수 있도록 했다.
문화재보호법과 자연공원법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단체는 예나 지금이나 불교계다. 한국의 단체 중 유무형의 지정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불교계는 국립공원 내 사유지 또한 단일 단체로는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법이 시행되며 불교계는 문화재관람료를 받았고, 정부는 국립공원입장료를 징수했다. 이 지점에서 살펴야 할 게 있다.
‘공원법’을 제정한 정부는 국가 소유의 땅은 물론 막대한 사유지를 공원에 편입시켰다. 적절한 보상은 차치하고라도 사찰과의 긴밀한 협의조차 전무했다. ‘국립(國立)’이라는 명칭을 붙여 ‘사찰 땅’이 ‘나라 땅’이라는 오해마저 불러일으켰다. 현 22개의 국립공원 내의 사찰 소유 토지는 2억7960만m²인데 이것은 7.2%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정부는 수행환경에는 아랑곳 않은 채 길도 멋대로 뚫었다. 지리산의 ‘지방도로 861호선’이 대표적이다. 무장공비 출몰에 대비한 군사작전도로가 개설(1968∼1972)되고는 군부대가 주둔(1974)했다. 전두환 정권은 88올림픽 특수를 노리고 관광·지역개발 목적(벽소령 관광도로)으로 확장·포장(1985.5∼1987.5)했다. 사람들은 “노고단 대중관광 시대가 열렸다”고 환호하면서도 그 길이 천은사 도량을 관통한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사찰이 문화재관람료를 받고 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공원입장료 징수가 시작되며 시비가 일기 시작했다. 한 매표소에서 문화재관람료와 국립공원입장료를 받는 건 사실상 ‘이중 과세’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2007년 1월1일 국립공원입장료를 폐지했는데 불교계와 공감 없이 저지른 ‘단독행동’은 또 다른 폐단을 낳았다. “나라가 세운(國立) 공원에 가는 데 왜 사찰이 방해 하느냐?”는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국립공원입장료를 왜 폐지하는지, 문화재관람료가 남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국민에게 명료히 알리지 않은 채 서둘러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불교계와 시민의 갈등을 촉발시킨 건 정부다. 그러나 그 어떤 정부도 작금의 공공갈등을 해결하려 나서지 않고 뒷짐만 지고 방관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이 사안을 해결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지만 임기 말의 시점에 이른 지금도 한마디 언급조차 없다. 오히려 여당의 국회의원은 막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조계종은 이 사안을 엄중히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청래의 통행세·영화 관람료’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이 문제와 직결된 환경부와 문화재청도 심도 있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조계종과 함께하는 협의체 구성에 정부가 적극 나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공원 내 전통사찰보존지 권리를 인정함과 동시에 공동 관리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1606호 / 2021년 10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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