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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솔선원장 함현 스님

“손 안의 게송 한 구절, 설산고원 넘어 사막 모래바람 뚫고 살아남은 법음!”

‘아난아, 등이 아프구나!’ “부처님도 나와 같은 인간”
이두 스님 은사로 출가 선원정진·대작불사 병행
법현·현장·혜초 구법 열정실크로드·인도성지서 확인
“밍샤산의 울음소리는 모래들의 깨침 환희성”
수행자가 궁극에 전할 건 ‘내 소리’ 아닌 ‘부처님 말씀’  
코로나19·기후위기 재앙 인간 탐욕·야만성 결과 
인류·지구 공존비책 실마리 “머문 자리 깨끗이 하라!”
지계바라밀 실천하면 지중한 ‘자기다움’ 발현 

도솔선원장 함현 스님은 “지계바라밀은 의미 깊은 삶을 이루는 토대 중의 토대”라며 “근원적 평화의 원초적 경험인 선정삼매와 모든 존재가 따로따로가 아님을 명료하게 아는 반야지혜가 다 지계바라밀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도솔선원장 함현 스님은 “지계바라밀은 의미 깊은 삶을 이루는 토대 중의 토대”라며 “근원적 평화의 원초적 경험인 선정삼매와 모든 존재가 따로따로가 아님을 명료하게 아는 반야지혜가 다 지계바라밀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시안(西安)에서 황허(黃河)의 서북쪽 고비사막을 지나 험준한 톈산산맥(天山山脈) 줄기를 넘어 로마까지 이어지는 7000㎞ 길. 고대의 동서문명을 이은 실크로드의 관문은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의 동쪽 끝자락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오아시스 도시’ 둔황(敦煌)이다.

거친 모래바람을 뚫어가며 힘겹게 걸음을 내딛다 닿은 오아시스. 생의 끝자락일 것만 같았던 그곳에서 마신 한 모금의 물이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적신다. 비단과 도자기를 싣고 가던 대상(隊商),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난 모험가 모두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는 흙산 절벽에 구멍을 내고 불상을 봉안하며 합장한 채 머리를 숙였다. 오늘의 무사함에 감사하고, 내일의 무탈함을 기도한 것이리라. 세계 최대 불교미술 유적지 둔황의 모가오 굴(莫高窟)은 나그네들의 간절한 기도에 예술혼이 1000년 동안 더해지며 깊어지고 확장됐다.

동서 40㎞, 남북 20㎞의 밍샤산(명사산·鳴砂山).
동서 40㎞, 남북 20㎞의 밍샤산(명사산·鳴砂山).

모가오 굴에서 1600m 떨어진 곳에 모래산(沙丘)이 서 있다. 세찬 바람에 모래가 흘러내릴 때마다 나는 소리를 두고 ‘모래가 운다’고 하여 밍샤산(명사산·鳴砂山)이라 명명됐다. 그 산 바로 앞에 초승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 웨야취안(월아천·月牙泉)이 있다. 도솔 함현(兜率 涵玄) 스님도 그 산을 올랐다. 탐험가 오럴 스타인(Aurel Stein)이 말한 ‘파도 같은 사구가 넘실거리는’ 모래 능선과 ‘사막의 사파이어’로 불리는 ‘푸른 초승달’이 자아내는 절경을 감상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출가 전부터 품어 온 세 분의 고승을 그려보고 싶어서였다.

서울 우정국로를 거닐던 20대의 청년은 목탁소리를 듣고는 조계사로 들어섰다. ‘서울 청년회 법회’가 열리고 있기에 회화나무 아래에 서서 법문을 들었다. 그 다음 법회 때는 아예 법당에 앉아 스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철학, 역사, 문학, 과학 등의 서적을 독파해 가고 있던 청년에게 무진장 스님의 ‘맛깔난 법문’은 신선하면서도 이색적이었다. 법문하던 무진장 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출가하실 분, 손 들어봐요!”

그 소리가 법당 밖으로 새어 나가기도 전에 청년은 오른쪽 손을 번쩍 들었다. 은사 인연은 선사이자 시인이었으며 당대 선지식으로 추앙 받고 있던 월암 이두(月庵 二斗·1929∼2017) 스님과 맺어졌다.

선원에서 정진하던 함현 스님이 실크로드 길에 오른 건 1980년대 중반이었다. 불교의 시원을 찾아 대장정에 오른 중국 동진(東晋)의 법현(法顯·342~423), 당(唐)의 현장(玄奘·602?∼664), 신라의 혜초(慧超704∼787) 스님이 길 위에 풀어 놓은 목숨 건 위법망구의 구도심을 새겨보기 위함이었다. 오대산 참배에 이어 허난(河南)의 룽먼(龍門), 산시(山西)의 윙깡(雲崗), 톈수이(天水)의 마이지산(麥積山), 란저우(蘭州)의 빙링스(炳靈寺) 등 중국의 유서 깊은 석굴을 모두 참배하고 모아오 굴에 닿았더랬다.

맨발로 밍샤산을 올랐다. 바람이 일자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 나가며 소리를 냈다. 침묵의 세계로 초대하는 속삭임 같았다. 모래산이 내어 준 심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니 고요 속의 모래소리가 ‘내 존재의 문’을 두드렸다. 모래가 ‘우는 소리’가 아니었다. ‘가르침의 바람 속에서 깨어나는 낱낱 깨침들의 환희성(歡喜聲)’이었다.

“…명사산의 울음소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래알들의 합창입니다. 이 거대한 합창음은 어김없이 소리 없는 소리로 돌아가 일대사(一大事)를 마무리합니다. … 여운이 없는 세상, 그래서 날로 여운이 그리운 시대이기에 나는 깨침의 대화음(大和音)에 작은 소리를 더할 한 알의 모래알이 되고 싶은 병앓이를 하는 중입니다…”(함현 스님 저 ‘명사여운(鳴砂餘韻)’ 중)

용맹정진과 깊은 사유를 거듭한 수행자가 아니고서는 이를 수 없는 낙처(落處)에서 끌어올린 명문이다. ‘소리 없는 소리로 돌아가 일대사를 마무리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명사여운’에 앞서 선보인 ‘숨길 수 없는 말’의 후기에 해당하는 ‘뒤에 붙이는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발밑에 일었다 사라지는 명사(鳴砂)의 여운(餘韻)처럼 나 없이 흐르는 살아있는 법음은 한 순간도 자신의 발바닥 밑을 떠나는 일이 없다. 이 살아 있는 법음에 귀를 열고 참으로 나를 세우지 않는 가슴으로 함께 사는 큰집을 마련하고, 고집 없는 눈빛으로 태평한 나날을 여는 일 말고 기특하게 여길만한 삶이나 수행이 따로 있을 것인가. 나는 아직까지 그것을 알지 못하겠다.’

무상·무아·열반적정을 꿰뚫은 언어들이 바위처럼 단단하고도 시처럼 아름답게 흐르고 있다.
 

설산 곤륜산의 눈 녹은 물이 웨야취안(월아천·月牙泉)에서 솟았다.
설산 곤륜산의 눈 녹은 물이 웨야취안(월아천·月牙泉)에서 솟았다.

밍샤산과 웨야취안은 유명 관광지이나 수행자에게는 남달리 다가왔을 터다.

“지금은 운송수단을 이용해 편히 올 수 있지만 당시에는 공포의 길이었습니다. 여기를 지나야만 살고, 그래야만 법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법현 스님의 말씀입니다. ‘사막의 수많은 귀신들과 뜨거운 돌개바람들, 마주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늘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짐승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길은 보이는 곳 끝까지 뻗어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마른 해골 조각이 이정표일 뿐이다.’ 파미르 고원 앞에 선 혜초 스님을 그려 보세요. ‘차디찬 눈이 얼음까지 끌어 모으고/ 찬바람 땅이 갈라져라 매섭게 부는 구나/ 망망대해는 얼어붙어 단을 쌓은 듯/ 강물은 제멋대로 벼랑을 갉아 먹는다/ 용문의 폭포수마저 얼어 끊기고/ 우물 테두리는 도사린 뱀처럼 얼었다/ 불을 벗 삼아 오르며 노래하고 있지만/ 저 파미르 고원을 넘을 수 있을지.’ 우리 손 안의 게송 한 구절은 설산의 고원을 넘고 사막의 모래바람을 뚫고 살아남은 법음입니다. 참선, 위빠사나, 염불 등의 그 어떤 수행으로 나름의 경지에 이르렀든, 궁극에 펼쳐야 할 건 경전이요 전해야 할 건 부처님 말씀입니다.”

중국, 호탄, 파키스탄, 티베트, 네팔을 거쳐 부처님 성지 부다가야에 안착해 가부좌를 틀었을 때 한 생각이 스쳐갔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피가 있었기에 1년 6개월 여정의 순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구법승이 내어 보인 길이 있었기에 오늘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길을 내어 보일 것인가?”

‘숨길 수 없는 말’의 후기에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걸으려 하는 길을 엿볼 수 있다.
 

‘숨길 수 없는 말’과 ‘명사여운’에서 함현 스님의 직관의 힘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숨길 수 없는 말’과 ‘명사여운’에서 함현 스님의 직관의 힘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때때로 삶은 걸음인가 한다. 어떤 오고감도 끝내 걸음만은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을 만들어진 의미를 향해 걸음질을 했을 뿐 정작 걸음을 향해 걸음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걸음을 향해 걷는 걸음이야말로 가장 진솔한 삶의 정점이자 냄새 풍기지 않는 수행의 참 모습이 아닐까. 빈산에 홀로 앉는 밤이거나 산새소리가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는 노을빛을 바라볼 때면 나는 수도 없이 이 말에 머리를 끄덕여야 했다.’

번듯한 대웅전 하나 없이 빗물 뚝뚝 떨어지는 요사채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우암산 관음사에서 목탁 하나 들고 대작불사를 일으켜 청주 대표 사찰로 자리매김시킨 장본인이 함현 스님이다. 관음사는 물론 헬기를 띄워 어렵사리 세운 절에서도, 수좌들의 귀의처이자 발심처인 문경 봉암사의 중창불사를 하고도 ‘가야 할 때’라고 생각되면 바랑 하나 메고 훌훌 떠났다.

“명사산에 오를 때 묵직한 신발을 신으면 푹푹 빠지기에 고생을 자초합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야 합니다. 하심(下心)도 이와 같습니다. 가진 것, 이룬 것 다 안고 있으면 걸음을 쉬이 뗄 수 없습니다. 대 자유를 버리고 자신을 옥죄는 일입니다.”

‘명사여운’은 날카롭고도 묵직한 시선으로 이 시대를 통찰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재앙이 닥친 작금의 현실을 타개할 비책을 여쭈었다.

“전염병 연구로 유명한 프랭크 스노든(Frank Snowden)이 경고한 바 있습니다. ‘역병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비춰 주는 일종의 거울이다.’ 코로나19는 부와 편의를 위해 자연을 파멸시키고 미래를 좀먹고 있는 우리의 야만성을 여실이 보여주는 또 다른 거울입니다. 그 야만성이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이대로 2050년에 이르면 인류문명이 무너질 것이라고 합니다.”

함현 스님은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60억㎞ 떨어진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 ‘창백한 푸른 점(Pale Biue Dot)’을 마주해 보자고 했다.

“티끌 속에서 사는 인간이란 존재는 미물에 지나지 않을 만큼 왜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생명체는 지구에서 오직 인간뿐입니다. 내가 밟고 있는 땅, 내가 머무는 공간, 우리 이웃의 은하계가 서로 상즉상입(相卽相入)·상즉상용(相卽相容)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직시하면 인류와 지구의 상생공존 비책은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대들이 머문 자리를 깨끗이 하라!’”

기본에 뿌리를 둔 간단명료한 해결책이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면 지구의 통증을 줄일 수 있다. 전 세계의 기업이 오염수 배출을 자제하면 죽어가는 강과 바다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명저 ‘명사여운’의 첫 장은 ‘함현자계(涵玄自戒)’로 시작한다.

‘밤 깊어 눈이 감겨도/ 출가한 자신이 고맙고/ 새벽빛에 눈이 뜨여도/ 출가한 새날이 기쁘니/ 생평에 내 잘한 일은/ 출가한 일이 분명하구나.’

출가연유가 궁금했다.

“부처님께서 바이샬리에 머물 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아난아, 등이 아프구나.’ 아난이 자리를 봐 드립니다. ‘아난아, 참으로 편안하구나!’”

‘부처님도 인간’이었음을, ‘나도 깨달을 수 있음’을 확신했음이다. ‘함현자계’의 또 다른 한 구절이 빛난다.

‘이보시게나 함현/ 배 주리면 아귀 떠올리고/ 몸 풀어지면 화탕지옥 생각하세/ 방일하거나 게으르지 말고 탐하지 말며/ 가고 옴을 쉽게 생각하지 말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출가한 첫 마음을 저버리지 마세.’

“누군가 저에게 ‘부처님 말씀대로 올곧이 살았느냐?’ 물으면 저는 ‘그리 못 살았다’ 답할 것입니다. 그래도 지계정신만은 챙기려 합니다. 자신의 삶을 가장 자기답게 발현시키는 데 삶의 의미가 있을 겁니다. 지계바라밀은 이런 삶을 이루는 토대 중의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원적 평화의 원초적 경험인 선정삼매와 모든 존재가 따로따로가 아님을 명료하게 아는 반야지혜가 다 지계바라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산 혜연 스님의 발원문 중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 안 들고 청정범행 닦고 닦아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는 대목이 있습니다. 다음 생은 태국에서 태어나려 합니다. 하하하!”

일평생을 송두리째 들어 법해(法海)에 던져보고 싶은 것이리라.
 

서울 도솔선원 전경.
서울 도솔선원 전경.

코로나19로 개원 못한 도솔아카데미가 하루 빨리 문을 열 수 있기를 고대한다. 함현 스님을 비롯한 출·재가의 도반들이 전하는 법은 청량하고도 깊을 게 분명하다. ‘꽃과 나무들의 향기보다 훨씬 더 미묘한 향기, 바람으로 거슬러 퍼지는 진리의 향기’가 그 곳에서 피어날 것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함현 스님은
속리산 법주사에서 월암당 이두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송광사, 백양사, 극락선원, 대승사, 동화사,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안거 수행했다. 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 주지, 청주 관음사 주지, 지리산 선화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북한산 도솔선원에서 정진 중이다. 

 

[1607호 / 2021년 11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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