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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류학자가 찾아낸 세상의 가장 깊은 소리

  • 불서
  • 입력 2021.11.05 22:07
  • 수정 2021.11.06 11:43
  • 호수 1608
  • 댓글 0

인도·스리랑카·미얀마·중국·일본·티베트 등 각국 불교음악 기록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생생함…귀중한 사진들로 가득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기록할 수 없는 저자 열정이 빚어낸 결실

중국 깐수성 샤허현 라브랑스의 스님들이 참무를 반주하며 나팔을 불고 있는 모습. 운주사 제공.
중국 깐수성 샤허현 라브랑스의 스님들이 참무를 반주하며 나팔을 불고 있는 모습. 운주사 제공.

“음악은 말 한마디 없어도 그 자체가 종교적 경험의 중요한 원천일 수 있다. 예술 중에서 가장 영적인 분야인 음악, 이 음악과 종교의 경계선은 무척이나 가늘고 미세하다. 거의 모든 경험을 고양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음악의 변형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독일 신학자 한스 큉의 말마따나 종교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다. 종교는 음악을 통해 깊은 내적 체험과 장엄함, 성스러움, 구성원들의 일체감을 이끌어낸다. 불교와 음악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불교는 음악을 통해 전법의 길을 모색하고 대중의 마음을 얻었으며, 음악은 불교를 통해 더욱 심오해질 수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표현하고 부처님을 찬탄하는 성음(聖音)인 불교음악은 불교가 전래된 각 나라에서 사회문화, 자연환경, 전통사상 등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으로 변화하고 뿌리를 내려갔다. 한국에서도 불교는 우리 소리를 만나 향가 등 독특한 불교음악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불교음악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상당부분 금이 가 일그러졌고, 의미가 단절되거나 변형·왜곡됐던 것이 아픈 현실이다.

부산대 한국음악학과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한양대 음악대학에서 음악인류학을 전공한 저자가 다른 나라의 불교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범패라고 불리는 우리의 불교음악에 다가갈수록 얽히고 막힌 곳이 수두룩했고 그 의문들은 화두마냥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하나만 알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 저자는 다른 것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 것을 새롭고 깊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저자는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 티베트, 네팔 등 불교음악이 있는 현장을 찾아 기록하고 자취를 더듬어나갔다. 음악은 건축이나 조각과 달리 기록할 마땅한 수단이 없었기에 해당 지역의 전문가 도움 없이는 아예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더욱이 요즘에야 많이 나아졌다지만 10~20년 전까지도 커다란 촬영기와 녹음기, 외장하드를 일일이 챙겨 다녀야 하는 수고로움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지난한 과정을 딛고 출간된 이 책은 세계 각국의 불교문화를 담은 순례기로 오직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생생함, 직접 촬영한 귀중한 사진들로 가득하다. 한 나라의 불교음악을 이해하는 일이 그 나라의 불교의식, 나아가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핵심코드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스리랑카의 불교행렬을 이끄는 악사들. 운주사 제공
스리랑카의 불교행렬을 이끄는 악사들. 운주사 제공
대만 불광산사 야단법석에 차려진 법석과 의례를 주재하는 대사의 법탁. 운주사 제공
대만 불광산사 야단법석에 차려진 법석과 의례를 주재하는 대사의 법탁. 운주사 제공
일본 사찰에서 한 스님이 어산단 스님들에게 의물(儀物)과 의문(儀文)를 올리는 모습. 운주사 제공
일본 사찰에서 한 스님이 어산단 스님들에게 의물(儀物)과 의문(儀文)를 올리는 모습. 운주사 제공

전체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첫 장에선 저자가 30여년 동안 기록하고 모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종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 종이 민족, 문화, 종교에 따라 그 역할과 구조, 치는 방식이 왜 달라지고 종교적 메시지나 감화를 위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2장에선 중국, 대만, 베트남, 일본, 한국 등 한자문화권에서 나타나는 불교음악의 동질성과 차이점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장에선 저자가 오랜 세월 티베트 곳곳을 누비며 마주했던 불교창극, 독수리에게 시신을 보시하는 조장터, 라다크 참의식, 따시종 밀의 악가무 등 티베트 불교음악 및 문화의 정수를 생생히 전해준다. 제4장에선 찬팅 율조 자체가 범패라고 할 수 있는 초기불교 전통의 미얀마와 스리랑카 등 팔리어 문화권 불교의식과 범패를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 5장에선 각국의 토착문화와 불교음악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됐는지, 세계 3대 유적으로 불리는 미얀마 버강(바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의 유적에 남겨진 불교음악 흔적을 고찰하고 이를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낸다.

스리랑카 호리나와(태평소) 가락에 등장하는 상모를 돌리며 양면북을 둘러메고 치는 타악기가 한국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이나 ‘딴따라’가 고려시대 들어온 티베트불교의 시끌벅적한 밀교의식을 이르는 ‘딴뜨리즘’에서 유래한 말인데 대중가수나 밤무대 악단을 부르게 된 데에는 조선시대 불교를 비하해 온 배경이 있음을 풀어낸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박범훈 불교음악원장은 추천사에서 선재동자의 구법여행기를 언급한 뒤 “저자의 순례행은 단지 음악에 대한 탐구라기보다 문화적 토양 위에서 인간행위와 음악이 어떻게 불교화되어 가는가를 탐색하는 여정”이라며 “이 책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은 더없이 소중한 정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소리의 세계로 안내하는 이 책은 ‘불견불필(不見不筆) 불청불필(不聽不筆)’이라는 옛말처럼 감히 보지 않으면 기록할 수 없고 듣지 않으면 기록할 수 없는 저자의 오랜 노력과 열정이 빚어낸 숭고한 결실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08호 / 2021년 11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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