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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계교 무진장행법과 무진장행시

기자명 법공 스님

경전, 비전 사상으로 구제 사업 시작하다 

‘베품이 곧 수행’이라는 사상으로
무진장원 설치해 구제 사업 실시
곤궁 서민에 간결한 절차로 대출 

‘무진장행법’은 삼계교의 경제관이다. 이를 분명히 알기 위해선 신행 스님의  출생전 사회경제적 혼돈 상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으나 여기서는 곧바로 삼계교도의 무진장행시로 넘어가도록 하자. 

‘무진장행’(法·施)은 삼계교의 경제적 원리이다. 경·율에 입각해 실천적으로 그 행법내지 베품을 실시한 것이다. 삼계교도들은 이러한 경제적 관념을 도입했다. 민중을 도와 그들의 의복과 양식 등 생활을 윤택하게 하면서 이를 수행과 연결시켰다. 이는 불교사에 있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념은 어떤 경전에서 출처를 찾을 수 있을까.

‘화엄경’에서 설하고 있는 ‘무진장법’과 ‘무진장행’의 사상은 완전히 불도수행의 보살도이다. 삼계교는 ‘무진장법석(法釋)’에서 ‘화엄경’ ‘유마경’들을 인용하며, 경전(敬田)과 비전(悲田) 개념을 가져온다. 이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무진장물(物)로서 빈곤한 중생에게 베푸는데, 수(數)에 의하여, 베푸는 고로 선심을 발한즉 이루기 쉽고(悲田), 둘째는 빈궁(貧窮)인을 가르침이며 소(小)재물로서 타보살의 무진장시(施)에 같이 함으로, 그 보리의 마음을 점차 발하게 함이라(敬田).”

삼계교에서는 무진장행 수행자들이 보시를 행하면서 전생 빚과 업과 비롯됨이 없는 묵은 빚이 일시에 몰록 정지된다고 보았다. 또 장애의 길인 업장보장(報障)도 일시에 멸하여, 부모형제·육친권속 등이 삼악도를 벗어난다고 했다.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큰 이익이라고 표방했다. 

불도수행과 추선공양(追善供養)이 행법의 목적이었다. 이렇듯 ‘무진장법석’에 의해 화도사(化度寺)에 무진장원이 설치됐지만 그 목적은 전적으로 무진장행의 ‘사회 구제사업’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위술(韋述)의 ‘양경신기(兩京新記)’에도 “사내(寺內·化度寺)에 무진장원이 있는데, 신행(信行) 설립이라. 경성(京城)에서 시사(施捨)한 연후에 점차 성대하여, 정관(貞觀) 후에는 전금(錢金)이 쌓이는데 헤아릴 수 없었다. 항시 승려로 하여금 감시를 하여 천하의 가람 수리와 장내(藏內) 가람수리에 공양하였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후에는 대여(貸與)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놀라운 건 대여 절차가 매우 간결하는 것이다. 게다가 증문(證文)도 작성하지 않고 기한이 되면 반환한다. 채무자 편의를 위한 자선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무진장원은 서민계층에선 없어서는 안 될 편리한 금융기관이었다. 서민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에서 기록을 살펴보면 이것에 대해 상당히 엄중했다. ‘유부비내야’ 권22의 ‘출납구리학처’ 제19 내용을 살펴보자. 

“부자가 물건을 찾을 때 관세(官勢)의 힘으로 상환에 응하지 않으며…빈곤인이 대출을 원하나, 담보물이 없을 때, 불(佛)이 말씀하되, 만일 물건을 줄 때 분명히 2배의 담보물을 납입 할 것이며, 권계(券契)를 기록하며, 그 연월을 기록하여 상좌명이나 수사(授事)인의 이름을 적어 보증을 세워야 한다.”

이 내용을 보면 부자는 관(官)의 권력으로 반환하지 않았고, 곤궁한 사람은 언제까지나 돈이 없다는 이유를 가져와 반환을 거부했다. 그래서 대출에 엄중했다. 

인도의 기록이 경제상의 견지에서 입각한 자리적인 것이라면, 삼계교의 것은 불도수행과 이타적인 복전사상에 의한 것이었다. 대자비행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런 무진공덕행은 ‘속고승전’ 삼계승(僧), 묵(黙) 선사 조(條)에도 잘 나타나있다. 

묵 선사가 멸도 하려함에 그 복전 업을 제자 덕미(德美)에게 위임했다. 그는 스승의 행적을 따라, 비경양전(悲敬兩田)을 해마다 한 번씩 베풀었다. 혹은 의복과 양곡을 건네며 모든 복처(福處)를 짓는데 다하여 남음이 없었다. 

경전(敬田)과 비전(悲田)을 베풀며 ‘법화경’의 상불경정신에 따라 모든 중생을 예로서 대하고, 죽어선 그 시신마저 뭇 중생들에게 보시하는 삼계승들은 무진장시의 행법에 철두철미했다. 

법공 스님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비전과 경전의 시복행업은, 민중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됐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쳤다. 민중을 상대로 한 대출로 이익을 걷어들인 정부나 귀족, 대사찰들은 삼계교에 밀려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었다. 이러한 불이익은 탄압으로 이어졌고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가는 원인이 됐다.

법공 스님 동국대 경주캠퍼스 전 선학과 겸임교수
hongbub@hanmail.net

 

[1608호 / 2021년 11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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