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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제86칙 국사시자(國師侍者)

스승은 제자 깜냥 알고 향상일로 방향 제시해야

스승 세 번 물음에 제자 같은 답
문답을 초월한 선기 감춰져 있어
문답 이은 스승 마지막 일전어는
제자가 안목 갖췄음을 일러준 것

국사가 어느 날 “시자야!”라고 불렀다. 그러자 시자가 “예”라고 답했다. 이처럼 세 차례에 걸쳐 불렀는데, 세 차례 모두 “예”라고 답했다. 이에 국사가 말했다. “내가 그대를 무시했다고 말할까 싶었다. 그런데 그대가 나를 저버릴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국사는 남양혜충(南陽慧忠 : ?~775)이고, 시자는 탐원응진(耽源應眞)이다. 스승이 부르면 제자가 답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스승이 몇 번을 불러도 제자는 여전히 ‘예’ 하고 답변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본 문답에서는 세 번에 걸친 동일한 문답이 시설되어 있다. 여기에는 단순한 문답을 초월한 선기(禪機)가 감춰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세 번이라는 말에 얽매여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괜시리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꼴이다.

질문과 답변의 횟수에 걸려들어서는 안 된다. 백 번을 불러도 동일하게 답변하는 것은 물론이다. 질문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보다 질문하는 행위와 답변하는 행위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문답에서 질문은 답변을 포함하고 있고, 답변은 문답에 수반되는 행위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질문이고 답변이다. 국사와 시자 사이에는 이미 의기투합이 되어 있지만, 국사는 시자의 그 경지를 확인해주고 싶은 것이다. 시자도 국사의 그와 같은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차에 걸쳐서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피력한 것이다. 이것으로 썩 훌륭한 문답이 완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상식을 벗어나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스승이 세 번이나 불렀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답변만 하지 말고 직접 곁으로 다가가서 필요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능전(能詮)의 언설로 드러나 있는 이면에는 소전(所詮)의 내용이 담겨 있는 까닭에 그것을 일러주고 자각하는 문답으로 제기되어 있다는 것을 상호간에 점검하는 모습이다. 국사가 왜 시자를 불렀는가 하는 것은 국사에게 직접 물어보면 알 것이고, 시자가 답변한 까닭은 시자에게 직접 물어보면 알 것이다. 묻고 답변하는 것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물론이다. 그것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국사는 짐짓 그와 같은 시자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세 번을 부름으로써 시자의 경지를 거듭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런 연후에는 시자의 경지에 걸맞는 일전어(一轉語)를 일러줄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스승의 자비로운 가르침이다. 제자의 깜냥을 파악한 이후에 그로부터 제자가 어떤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깨달음을 유지하는 길로 매진해야 하는지 그 향상일로(向上一路)의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그런 시점에서 국사는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내가 그대를 무시했다고 말할까 싶었다. 그런데 그대가 나를 저버릴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라는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짐짓 가르침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시자에게 훈시한 것이지만, 이 한마디야말로 시자를 극찬해주는 말이다. 국사 자신을 벗어나 시자의 경지가 새롭게 선기를 펼칠 수 있는 뛰어난 안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노출시켜주고 있는 말이다. 시자는 국사의 그러한 의도를 알아차리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답변도 가하지 않고, 감사의 말도 여쭈지 않았다. 그저 가르침을 일러주면 일러준 그대로 묵묵하게 수용할 뿐이다.

때문에 국사는 바로 그와 같은 시자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찬탄한 것이다. 시자의 선기는 더 이상 스승으로서도 속이거나 무시하거나 저버릴 수가 없다고 실토한 것이다. 외려 잘 익은 시자의 선기에 스승 자신이 온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대가 나를 저버릴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라는 말로 표현한 것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본 문답에서 가장 남는 장사를 한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혜충국사 자신이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608호 / 2021년 11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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