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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이근의 번뇌

기자명 이제열

말소리에 마음·감정 변화 주시해야

퇴역장군, 선사에게 출가 의사
선사의 모욕발언에 장군 분노
분심 돌이켜 성찰하도록 지도
주시하면 갈애도 현저히 저하

어느날 선사에게 한 퇴역 장군이 찾아왔다. 그는 선사에게 자신도 출가하여 도를 닦고 싶다면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청했다. 이 말을 들은 선사는 “당신은 평생 전쟁을 하면서 살생을 많이 하고 성내는 마음이 강하므로 근기가 무겁고 탁하여 수행을 할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장군은 얼마 뒤 다시 선사를 찾아가 요청했다. 그러나 선사는 모질게 말을 이어갔다.

“그대는 젊어서는 군인으로 전쟁터에서 세월을 보냈으니 집에 없었고, 이제는 도를 닦는다고 절에 오겠다고 하니 자네 부인은 다른 남자하고 정분이 나기 좋겠군!”

이 말을 듣게 된 장군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선사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쳐들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이 늙은이가 듣자듣자 하니까 기고만장이구나! 사람을 이렇게까지 능멸하다니!”

그러자 분기탱천한 장군을 향해 선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이렇게 부는 작은 바람에도 분노의 파도가 세상을 덮을 정도이니 어찌 도를 닦을 수 있겠는가?” 이에 장군은 ‘아차!’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선사에게 무릎을 꿇었다.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마음의 번뇌를 조복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는 그 수효도 한량없지만 범위도 굉장히 넓다. 대승에서는 마음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고 일으키는 중생들의 모든 정신 활동을 번뇌로 규정할 정도이다. 여기서 중생들에게 번뇌가 일어나는 과정을 잠깐 살펴보자.

중생의 인식기관은 안·이·비·설·신·의 육근이다. 이 육근은 인식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의 육경과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만난 육근과 육경에서 인식인 식이 발생한다. 이때의 식을 우리들은 마음이라 부른다. 육근과 육경을 조건으로 발생한 식은 동시에 식의 작용들을 불러일으킨다. 이른바 촉(觸, 접촉)·수(受, 느낌)·상(想, 생각)·사(思, 의도)·작의(作意, 주의기울임)이다. 마치 물에서 여러 가지 물결이 이는 것처럼 중생의 마음은 끊임없이 매순간 출렁인다.

그런데 이때 마음 작용인 촉·수·상·사 중에 주목해야 할 것이 있으니 수(受), 즉 느낌이다. 중생들에게 느낌은 모든 삶을 지배하는 심리작용으로 중생의 실존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중생은 느낌이 삶을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느낌인 수를 살펴보면 대략 세 종류로 분류된다. 즐거운 느낌인 낙수(樂受), 괴로운 느낌인 고수(苦受),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사수(捨受)가 그것이다. 중생들은 이 세 가지 수 가운데 당연히 괴로움인 고수를 싫어하고 즐거운 느낌인 낙수를 추구한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고수를 싫어하고 낙수를 추구하려는 육체적·심리적 욕구를 갈애(渴愛)라고 이름 하셨다. 갈애는 중생의 본능적 욕망으로 모든 번뇌가 이로부터 생긴다. 중생에게는 육근이 육경과 마주칠 때마다 갈애가 일어나고 이어 크고 작은 번뇌가 뒤따른다. 그런데 이들 번뇌 중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번뇌가 안근(眼根)인 눈과 이근(耳根)인 귀를 통해 일어나는 번뇌들이다. 뿐만 아니라 눈과 귀를 통해 일어나는 번뇌들은 그 힘도 강력하다. 예컨대 비근(鼻根)이나 설근(舌根)의 경우는 중생에게 미치는 영향이 안근과 이근처럼 왕성하지 않으므로 번뇌의 힘도 강력하지 못하다. 냄새가 안 좋고 맛이 없다고 해서 크게 충격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이에 비해 안근과 이근은 마주치는 모습과 소리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앞서 장군의 분노도 이근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원인이었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들은 중생에게 고수와 낙수를 만들게 하고 갈애를 불러일으킨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갈애의 발생이다. 수행은 갈애의 소멸과 갈애에 따른 번뇌의 제거를 목표로 한다. 소리가 들릴 때 방치하지 않고 그때 일어나는 마음과 감정의 변화를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소리를 듣되 듣는 주체로써의 마음을 돌이켜 들여다볼 때 갈애는 현저히 약화되거나 제거된다.

소리가 바람이라면 마음은 바다이다. 소리라는 바람은 늘 불게 되어있다. 그러나 마음의 파도는 일어나지 않게 할 수도 있고 가라앉히게 할 수도 있다. 만약 장군이 선사의 말소리에 마음의 흐름을 주시하고 이를 다스렸다면 그렇게 큰 화의 파도는 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609호 / 2021년 11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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