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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겹게 아름답고 거룩한 수행자의 마무리

  • 불서
  • 입력 2021.11.26 18:43
  • 수정 2021.11.28 10:17
  • 호수 1611
  • 댓글 1

아름답게 가는 길
대현 스님 유고집 / 올리브나무 / 320쪽 / 1만5000원

생명 연장 치료 않고 죽음 선택
곡기 끊고 죽어가는 과정 기록
자애롭고 고요한 스님의 사자후

생전의 대현 스님 모습. 올리브나무 제공
생전의 대현 스님 모습. 올리브나무 제공

“이 세상 올 때는 업연에 끌리어 오는 줄 모르고 왔지만 갈 때는 알아차림으로 한 생각 챙기면서 가는 줄 알고 가고 싶습니다. 올 때는 비록 울면서 왔지만 갈 때는 웃으며 가고자 합니다. 나를 억지로 병원으로 데려가 영양제를 놓고 음식을 먹이지 마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대중들께 짐 지워 드려 죄송합니다.”

지리산 정각사 죽림선원에서 정진하던 대현 스님이 만성폐렴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해 초였다. 1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 무렵이었다. 세속 나이로 74세였던 스님은 매년 이맘때면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고 이번에도 비슷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기침이 잦아들지 않았고 나중에는 시뻘건 피까지 쏟아졌다. 몇 차례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뒤 만성폐렴이라고 했다. 의사는 가래, 기침이 이어지고 극도의 피곤함과 저체중,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극성을 부리던 지난해 5월 병원에서는 이제 지켜볼 단계가 지났다며 본격적인 치료를 권유했다. 약이 매우 독해 치료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스님은 치료를 이어갈지 그만둘지를 선택해야 했다. 스님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연이라 생각하고 죽음 또한 삶의 연장이니 이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조금 연장하려고 버둥거려봤자 얼마나 더 살겠는가 싶었고 수행자답게 삶을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스님은 어떠한 약도 먹지 않았다. 아름다운 마무리란 이번 생에서 지어진 모든 분들과 기꺼이 작별할 줄 알고 마지막임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또한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거듭나는 것, 죽고 사는 것까지도 벗어나는 게 수행자가 나아가야할 길이었다.

그렇게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이 오자 스님은 화단에 꽃씨를 뿌리고 야생화를 캐다가 심기도 했다. 죽음이 가까워지니 세상은 더 신비로웠고 모든 생명이 다 고귀했다. 풀 한포기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산새소리 풀벌레소리까지 한없이 정겨웠다.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가 담겨 있는 ‘대반열반경’을 새기듯 읽어갔고, ‘율장’과 ‘대념처경’ 등 다른 불경과 함께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정리했다. 사전 유언장을 작성하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고별사를 쓰고, 영정과 사진, 수의와 장례비용까지 마련한 스님은 이제 마지막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다. 올해 8월25일 곡기를 끊으며 삶을 마무리하는 여행을 시작했고, 29일 만인 9월22일 오후 3시 스님은 부처님 고행상 같은 앙상한 육신을 내려놓고 열반에 들었다.

대현 스님 다비식. 올리브나무 제공.
대현 스님 다비식. 올리브나무 제공.

이 책은 만성폐렴을 통보받은 뒤 죽음에 대한 생각과 죽음을 준비하며 읽어 내려가며 정리한 경전 내용과 설명, 마지막 단식에 들어가 하루하루 꺼져가는 자신의 지켜보며 써내려간 글들이 담겨 있다. 처음 길었던 글들은 단식 17일째 접어들면서 급격히 줄더니 22일째인 9월15일 체중 27.3kg으로 숨쉬기조차 버거운 몸으로 쓴 짤막한 글을 마지막으로 스님의 일기는 끝을 맺고 있다.

1968년 백양사로 출가한 뒤 일생을 수행자로 살아온 스님의 마지막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거룩하다. 또한 끝내 죽음에 끌려 다니지 않았던 옛 선사들의 기개가 펼쳐지고 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그렇기에 한없이 고요하고 자애로우면서 천둥처럼 울림이 큰 대현 스님의 마지막 사자후에 귀 기울일 일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11호 / 2021년 12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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