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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국 10위의 교육 현실

기자명 안직수

우리 정부는 아동·청소년 교육과 관련해 평등의 출발선을 지향하고 있다. 한 명의 아동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세부적인 사항을 보면 아직도 과거 가난하던 시절의 구습을 ‘당연히’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대표적인 예가 졸업앨범이다. 교과서는 무상지급이지만 3년간 학창시절의 추억을 담은 졸업앨범은 유상이다. 수년 전 연말을 앞두고 지역 사회복지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수십만원의 기금을 모금해 지역 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졸업앨범을 구입해 준 적이 있다. 월세, 통신비, 공공요금 등 고정지출을 제외하고 한 달에 몇 십만원으로 생활하는 저소득층에게 수만원에 달하는 졸업앨범은 사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학교별로 수명의 아이들이 매년 경제적 이유로 졸업앨범 구입을 포기하고 있다.

적게는 4만5000원에서 응시과목에 따라 5만원을 징수하는 수학능력시험 응시료도 교육의 평등 가치를 저해한다. 지난해 딸아이의 친구가 수능을 보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어머니와 동생과 사는 그 아이는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생에 한번 있는 수능 대열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시험비 4만여원이 아까워 “어차피 가지도 못할 대학 시험을 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수능도 응시료를 치러야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진학하려는 대학에 직접 원서를 접수하고 시험을 치렀던 1990년대는 수험생이 몰리는 일부 대학이 원서접수비를 받아 건물을 올린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필요보다 높은 대학 응시료가 사회적으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수능마저 응시료를 받아야 맞는 것일까.

대부분 국민이 일생에 한 번 이상 경험하는 대학입학 시험에 모든 원하는 수험생이 응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평등이다. 더구나 수능 입시날이면 모든 경찰과 사회가 수능 시스템을 맞춰 움직일 만큼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 아닌가.

무상교육을 고등학교까지 시행하면서, 학창시절을 기록한 졸업앨범과 수학능력시험에 대해 유독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우며 개별 부담을 주장하는 이유가 납득이 안 된다. 수년 전 북유럽의 교육시스템을 둘러보러 갈 기회가 있었다. 가장 부러웠던 나라는 핀란드로 취학 전부터 대학원까지 무료로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다. 외국 유학생에 대해서도 핀란드어를 어느 수준 이상 습득하면 같은 혜택을 주고 있다.

이는 최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고용과 교육 기회가 평등한 나라를 선정한 결과와도 다르지 않다. 가장 평등한 나라 1위는 덴마크였고, 2위 노르웨이, 3위 핀란드 등 북유럽의 나라들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25위였다.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은 세계 10위권이라지만 고용과 교육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최근 한 대통령 후보가 초등학교 시절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수학여행을 떠난 일화를 소개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교장선생님은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수학여행비를 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다고 한다. 경제적 이유로 수학여행을 포기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과거 어려웠던 1970년대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교육의 평등은 무엇일까. 교육과정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만이 아니라 동시대 친구들과 동질감을 형성하는 과정도 중요한 요소다. 이런 측면에서 학창시절 경제적 이유로 평생 남을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 권리가 교육의 평등은 아닐까.

열반 직전까지 법을 청하는 한 명의 수도자에게까지 법을 전하며 남녀노소, 신분의 차이를 전혀 개의치 않고 평등의 교육을 실천하셨던 부처님께서는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수능일에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가난의 강요에 의해 시험장이 아닌 아르바이트 일터로 나가야 하는 단 한 명의 청소년도 더 이상 없기를 서원한다.

안직수 복지법인 i길벗 상임이사 jsahn21@hanmail.net

[1611호 / 2021년 12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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