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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제89칙 북두장신(北斗藏身)

동일한 선문답을 양면적으로 접근한 공안

향상 측면선 법신구 터득법 묻고
깨치려면 집착‧분별 말라고 대답
향하 측면선 법신구 활용법 묻고
깨쳤으면 분별 필요 없다고 설명

승이 운문에게 물었다. “어찌해야 법신구(法身句)를 초월하겠습니까.” 운문이 말했다. “북두칠성 속에 숨어 있어야 한다.”

운문은 운문종의 개조인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으로 설봉의존(雪峯義存: 822~908)의 법사이다. 본 문답은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아직 깨치지 못한 납자의 입장에서 법신구를 추구하는 방법에 대하여 묻고 있는 향상(向上)의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깨침을 경험한 선지식의 입장에서 법신구의 양태와 그 활용에 대한 방법을 묻고 있는 향하(向下)의 측면이다.

전자의 경우에 법신구를 터득하는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법신구란 법신을 이해하여 법신에 대하여 설명해놓은 교의(敎義) 내지 그에 대한 설법이다. 법신은 청정법신인데, 깨침의 세계이기 때문에 법신의 본분적(本分的)인 의미에 대해서는 분별사식(分別事識)의 차원으로는 소위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심행처멸(心行處滅)인 까닭에 특별히 언급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부득이하게 신훈적(新熏的)인 차원으로 보자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여 사람의 깜냥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 문답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바로 그 법신에 대한 설명방식인 법신구를 깨치는 구체적인 방식은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수행하면 법신구를 터득할 수 있겠느냐고 질문한다.

북두칠성은 모든 사람이 바라볼 수 있는 별자리로서 이상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세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깨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깃들어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열심히 수행하면서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분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을 감추어두는 수행은 아직 깨침이 미완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자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절제할 줄 알고 감출 줄 아는 그 자체가 상(相)을 드러내지 않는 수행이기도 하다. 그래서 북두칠성 가운데 몸을 숨겨두는 것은 가장 크게 빛나는 별자리 속에 있으면서 그것을 온전히 깨우치는 일에 나아갈 것을 요구하는 수행이다. 북두칠성은 개개인이 구비하고 있는 불성을 상징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소위 상구보리의 입장으로 아직은 도중(途中)에서 살아가고 있는 납자의 행리로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는 향상의 길을 일러준 것이다.

한편으로 후자의 경우에는 이미 터득한 법신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묻고 있다. 그래서 문답을 다시 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승이 운문에게 물었다. “법신구를 초월한 것이란 어떤 것입니까.” 운문이 말했다. “북두칠성 속에 숨어 있는 몸이다.” 이 경우는 이미 법신구를 깨친 이후의 상황에서 묻고 있기 때문에 법신구란 어떤 것이고 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소위 자리의 입장에 해당하는 깨침과 이타의 입장에 해당하는 깨침의 활용은 전혀 별개의 상황이다.

운문은 일찍이 법신구를 활용하는 방법의 일환으로써 깨침에 이르기 직전에 갖가지로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인 미도조작(未到造作), 대오의 경계에 도달하여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의 작용인 이도조작(已到造作), 깨침의 경계에 도달하여 일체의 집착을 벗어났지만 다시 발[足]로 실지(實地)를 밟지 못하는 병통인 투탈무의(透脫無依)를 제시하였다. 운문의 답변은 바로 법신구를 깨쳤으면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북두칠성 속에 숨어 있는 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님을 일러준 것이다. 법신구를 깨친 이후이기 때문에 이미 북두칠성과 일체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향하의 모습으로 삼종병을 모두 벗어나 있는 행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본 문답에 대한 이중적인 의미로 이해할 경우에 전자의 경우 법신구를 초월하는 방법으로는 자신이 숨어 있어야 한다는 의도적인 유작의 행위에 속하고, 후자의 경우 법신구를 초월해 있는 상태란 본래부터 그렇게 숨어 있는 몸이기 때문에 달리 분별의 조작이 필요하지 않는 임운무작의 행위에 속한다. 이처럼 하나의 동일한 선문답에 대하여 양면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하는 방식은 질문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방식일 뿐만 아니라 공안에 대한 이해방식이기도 하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611호 / 2021년 12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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