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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은 깨달음의 시작이자 종착점”

기자명 이재형

간경 수행 보림회 성 상 현 법사

죽음 앞두고 불교 공부…법화경 등 주요경전 모두 암송

경전 회통으로 독창적 해석…경전 무시는 ‘어불성설’


『금강경』 강의가 열리는 종로구 견지동 보림회 강당. 하나 둘 발길이 이어지더니 강의가 시작될 무렵에는 10평 남짓한 이곳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강사는 벌써 몇 년 째 이곳에서 여러 경전을 지도하고 있는 보림회 회장 성상현(70) 법사. 밤색 벙거지 모자에 짙고 두툼한 잠바, 거기에 감청색 체육복 차림은 ‘저 분이 정말 성상현 법사일까’하는 의구심까지 생기도록 한다.

드디어 강의시작, 마침 『금강경』 사구게(四句偈) 부분이다. 체구에 비해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사진설명>성 법사는 경전의 지식을 지혜로 바꾸려면 경전의 참뜻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네 구절은 이 경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를 해석하기를 ‘무릇 모든 형상은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까? 틀렸습니다. 틀려도 한참 틀렸지요.”

이어 성 법사의 새로운 해석이 이어졌다.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보면 그게 곧 여래인데, 이러한 해석에는 여래를 보는 주체와 객체가 분리돼 있습니다. 또 『능엄경』에서도 ‘보는 놈을 봤다면 그것은 보이는 놈이다. 보는 놈은 볼 수 없다(見見之時 見非是見)’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무릇 모든 형상이 허망한 것이니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는 그것이 바로 여래’라고 풀이해야 옳습니다.”
손에 경전 한 권 들고 있지 않지만 수많은 경전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주제는 다시 『능엄경』으로 옮아갔다.

“이왕 한 가지 더 지적하지요. 『능엄경』에는 도량을 장엄하는 방법에 대해 나옵니다. 즉 ‘만약 말세의 사람이 도량을 세우려면 먼저 설산에서 큰 힘을 가진 흰 소를 구해야 할지니, 이 소는 설산의 맑은 물만 마시고 그 산에서 나는 향내 나는 풀만 먹어서 그 똥이 매우 부드럽고 미세하니 그 똥을 가져다가 향초에 잘 비벼 그 지면에 바르라’고 말합니다. 다른 경에도 ‘그렇게 못하면 땅을 오척을 파서 황토를 걷어내고 열 가지 귀한 향을 섞어 칠하라’고 합니다.”

잠시 후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것이 가능합니까, 이 말씀을 문구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떤 법당도 만들 수 없지 않겠어요. 여기서 말하고 있는 도량은 『유마경』의 ‘마음이 곧 도량(直心是道場)’이라는 말처럼 ‘마음’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설산은 청청함을 말하고 그곳에 사는 흰 소는 청정한 부처님을 일컫습니다. 똥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또 오척을 파내라는 것은 우리의 오욕을 걷어내라는 것이며 열 가지 향을 섞으라는 것은 열 가지 선(十善)으로 악업을 없애라는 말입니다. 이런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경전은 자칫 황당무개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성 법사의 강의는 명쾌했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성 법사의 경전강의를 들어본 사람들은 그의 독특한 견해에 놀라곤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색하다기보다는 어느 설명보다도 쉽게 와 닿는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어쩌면 이는 그의 ‘놀라운’ 능력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성 법사는 『아함경』 『능엄경』 『금강경』 『원각경』 『법화경』 『열반경』 『유마경』 『육조단경』 등 대승의 주요경전을 달달 왼다. 그 덕에 하나의 경전을 강의하더라도 온갖 경전을 오가며 서로를 회통시키고, 이를 통해 듣는 이들로 하여금 불교의 깊은 가르침과 마주하도록 한다.

40세 가까이 불교의 ‘불’자도 몰랐던 그가 ‘간경수행자’로 바뀐 데는 70년대 말 불치병을 겪으면서부터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병무청에서 근무하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병명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수술을 하면 나을 수도 있다는 말에 그는 선뜻 수술대 위에 올랐다. 그러나 수술은 오히려 병을 깊게 했다. 점차 움직이기도 버거웠고 나중에는 물 한 방울 넘기기도 힘들어 닝겔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렇게 27개월을 꼼짝없이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의사와 가족들도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에 찾아온 한 스님이 자기를 보고 곧 죽을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방법이 없을까요, 스님?”
“이 경을 읽어봐요.”
“그러면 살 수 있나요?”
“태어난 이상 죽는 건 당연하지만 곱게 죽을 수는 있지.”

그는 그 때부터 『금강경』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보니 며칠 새 『금강경』을 모두 외웠다. 이런 가운데 “임종은 집에서 맞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사의 권고로 퇴원하게 됐다. 가족들은 장례준비를 했지만 그는 『금강경』을 끊임없이 외웠다. 며칠 후 기적이 일어났다. 2년 넘게 음식을 먹지 못했던 그가 시장기를 느낀 것이다. 간신히 소리를 내 “배가 고프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도 아내도 외면했다. 먹게 되면 죽을 때 더 고통스럽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계속 부탁하자 마침내 미음을 쑤어주었다. 그렇게 미음 먹기를 몇 번, 일주일 후 앉을 수 있었고 몇 달 후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뼈만 남았던 몸에도 조금씩 살이 붙어갔다.

“『금강경』의 힘이자 부처님의 엄청난 가피였죠.”
그는 그동안 전혀 관심 없던 불교에 점차 매료돼 갔다. 신기한 것은 어느 경전이고 몇 번만 봐도 그대로 외워지는 것이었다. 머리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경전에서 의문이 들었던 구절을 저 경전을 떠올리면 이해가 되곤 했다. 때때로 세상이 온통 빛으로 훤해지거나 문 밖의 세상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각경』의 말씀처럼 여기에 탐착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경전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는 만고의 진리입니다. 깨달음의 시작과 끝이 모두 경전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성 법사에 따르면 간경에도 방법이 있고 단계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지독송이다. 다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부분은 반드시 ‘외워야 하며’ 동시에 ‘이해하려 해야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외우고 숙고하다보면 언젠가는 문리가 트이듯 경전의 구절이 환하게 밝아온다는 것이다. 또 이럴 때 모든 경전의 뜻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문자반야의 세계에 도달하게 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 뜻을 확연히 알았다고 해도 경전에서 말하는 ‘법(法)’이 나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전을 끊임없이 관찰하다보면 ‘관조반야’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는 경전을 체득하게 되는 ‘실상반야’에 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 성 법사의 설명이다.

<사진설명>종로구 견지동 보림회 강당에서 강의를 듣는 불자들.

“경전에 대해 많이 안다고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이 지혜로 전환하지 않는 한 단지 업식(業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경전의 참뜻을 이해하려 끊임없이 궁구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 법사는 간혹 ‘경전을 수행의 장애물’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볼 때만 안타깝기만 하다.
“히말라야에 가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은 히말라야는 대단히 높고 눈이 쌓였다는 지식만을 갖고 히말라야로 떠납니다. 다른 이에게 가는 길을 묻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히말라야에 도착할 수 있겠습니까. 눈과 높은 산을 보고 자신이 히말라야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백두산인지 한라산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자세한 지도와 나침반이 있어야지요. 그게 바로 경전입니다. 부처님이 자비심의 발로로 설해 놓은 경전을 업수이 여기면서 어떻게 깨달음을 얻겠어요.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지요.”

그는 언젠가 『능엄경』 『금강경』『법화경』 등을 새롭게 번역한다는 각오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란다. 공부가 아직 멀었다는 게 그 이유다.

성 법사는 현재 서울 보림회(02-739-1044)와 연신내 금강도반회(02-353-6888)가 주관하는 경전강좌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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