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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기독교에서 배워야 할 것!

기자명 이병두

얼마 전부터 모임을 만들어 함께 영어 ‘기독경’(기독교 성서)을 읽는다. 대학생 시절부터 우리말로 된 ‘기독경’을 읽어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다가 멈춘 적이 있었는데, 아마 요즈음에는 쓰이지 않는 옛날 말투가 어색하여 읽는 데에 불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 관련 서적이나 서양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신‧구약의 구절들을 만나게 되어 내게도 익숙하다. 기독교 입장에서 쓴 글에서는 ‘선한 하느님과 그 제자’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는 구절들을 인용하지만, 반대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작가의 글에서는 ‘복수’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이 나와서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한쪽으로 치우친 ‘왜곡된 기독교’의 모습에 잡혀 그것이 머리와 가슴에 굳어버릴 수 있다.

오래 전부터 ‘기독경’을 꼼꼼하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기독경’을 모르고서는 서양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기독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를 얻게 되었다. ‘문학작품이나 스토리’로 읽어도 흥미롭지만, 한국의 기독교인뿐 아니라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도 그 구절을 인용하면 분위기를 훨씬 부드럽게 만들 수 있고 외국인들은 감탄사까지 연발하며 반가워한다. 그래서 요즈음 “최소한 일거삼득(一擧三得)은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렇게 ‘기독경’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놀라다가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일부 고위 성직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라틴어로 된 ‘기독경’을 대중들도 읽을 수 있는 독일어‧영어‧프랑스어 등 유럽 각국 언어로 옮기기 시작한 지 수백 년이 되었다고 해도 고어(古語)체를 고수하고 어려운 단어를 써서 실제로는 학력 수준이 높지 않은 서민들에게는 그 경전을 읽는 일이 ‘일생동안 넘을 수 없는 높은 장벽’이었는데 최근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영어 기독경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는 이른바 제임스 왕 판본(King James Version)에서 점차로 진화하여, 내가 요즈음 읽고 있는 NIV(New International Version)판에 오면 “영어권 국가에서 중학교 1~2학년 정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편하게 읽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NIV 판본에서도 ‘좀 더 쉬운 낱말과 표현법’을 쓰는 쪽으로 계속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에 “기독교가 가진 힘이 여기에 있구나!”하고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하면 “우리는 결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면서 절망감을 드러내거나, 종단과 스님들을 탓하는 이들이 많다. 아니면 “부처님 가르침은 워낙 수승(殊勝)해서 경전을 대중들이 이해할 정도의 우리말로 옮겨주지 않아도 인연을 타고난 사람들은 다 부처님 제자가 되어 불법을 깨닫고 이승을 떠난 뒤 극락에 태어난다”며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펴는 이들도 있다. 이 두 가지 의견과 주장이 결코 불교 발전에 도움이 될 리 없는데도 뜻밖으로 대다수 불자들의 생각이 여기에 고정되어 있어서 답답하고 안타깝다.

한문 경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애써서 우리말로 옮긴 ‘한글대장경’이나 낱권으로 나온 우리말 경전들을 쉽게 읽고 ‘그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온다’고 느끼는 불자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 이 말을 한다고 해서 이제까지 경전 번역에 정성을 다한 개인과 기관의 공적을 폄하하려는 뜻이 아니다. 기독교계가 그들의 성서를 ‘다시 또 다시’ 수정하며 그 시대 일반 대중의 교육 수준에 맞추어 ‘번역의 진화’를 이어가듯이, 불교 경전과 조사 어록의 우리말 옮김도 시대 환경에 맞추어 변화하지 않으면 대중들의 외면으로 그 소중한 가르침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전하는 것이다.

각 나라말로 ‘기독경’을 옮기는 혁명이 실패하였다면 기독교 문명과 서양 세력의 운명이 전혀 다르게 바뀌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답이 여기에 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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