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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말과 분노

기자명 이제열

말소리 듣되 무작정 따르진 말아야

사리풋타 출가 못마땅한 어머니
간혹 만나면 온갖 모멸과 비난
어떤 상황에서도 여여함 유지
화는 참는 것 아닌 다스리는 것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은 누구였을까? 선종에서는 2대 가섭존자를 꼽지만 실제적으로는 지혜제일의 사리풋타 존자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은 그를 법의 장수(將帥)로 칭할 만큼 신임이 두터우셨고 다른 제자들에게도 그의 모범적 행동을 늘 칭찬하셨다. 그가 부처님 앞에서 반열반에 들었을 때, 부처님은 어느 제자의 반열반보다도 침통하게 여기셨다. 이러한 사리풋타가 자신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

그녀는 미모가 빼어났고 특히 눈이 사리라는 이름을 가진 새의 눈을 닮아 사람들은 그녀를 사리라고 불렀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아들도 자연스럽게 이름이 정해지게 되었는데 그 이름이 바로 사리풋타이다. 사리풋타에서 풋타는 아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역에서 사리풋타를 사리자(舍利子)라고 번역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리풋타의 어머니였지만 그녀는 정작 아들의 출가를 반기지 않았다. 늘 마음으로 아들을 원망하고 간혹 만나기라도 하면 온갖 모멸과 비난을 쏟아 내었다.

어느 때 부처님을 모시고 웨루와나 수도원에 머물던 사리풋타 존자는 출가비구들 여럿을 이끌고 마을로 나갔다가 모처럼 자기의 어머니 집 앞에 서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사리풋타 존자의 어머니는 아들과 일행을 집안으로 불러들이더니 음식을 주고는 성난 목소리로 폭언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오! 남이 주는 밥찌꺼기나 얻어먹는 놈, 이상스런 인간들과 집집마다 구걸하면서 국자 뒤나 핥고 다니는 자식, 너는 그따위로 살려고 그 많은 재산을 다 버렸다는 말이냐? 집안을 말아먹은 못된 녀석.” 그러면서 사리풋타 존자의 어머니는 다른 비구들을 향해서도 독설을 퍼부었다. “그래 네놈들도 마찬가지이다. 내 아들을 거지를 만든 놈들, 이거나 처먹고 나머지 음식은 가져가든지 말든지 해!”

그렇지만 사리풋타 존자는 이런 곤란한 지경에도 조금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어머니에 대한 공손함을 잃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비구들은 앞 다투어 칭찬을 하였다.

“비구형제들이여! 실로 사리풋타 존자의 태도는 훌륭했다. 단 하나의 거친 표정, 거친 말, 거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고요와 평정을 잃지 않았다.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이때 부처님께서 공양을 마치신 후 비구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시고 가까이 오시어 무슨 말들을 서로 나누었는지 물으셨다. 이에 비구들은 사리풋타 존자가 어머니를 만나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비구들의 이야기를 들으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악한 욕망을 제거한 사람은 화를 내는 것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게 되느니라.”

세상에 수많은 소리가 있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소리는 역시 사람의 말소리이다. 사람의 말에는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마음도 여러 갈래로 반응하게 된다. 사람들이 일으키는 마음 중에 분노나 악의는 상대방의 말소리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소리 하나에 평생 원수가 될 수도 있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불교에서는 분노와 악의를 매우 심각한 번뇌로 취급하고 반드시 제거해야 할 수행의 과제로 삼는다.

사라풋타 존자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시종일관 진실하게 공손함을 잃지 않았던 것은 성냄의 번뇌를 끊었기 때문이다.

위빠싸나 수행에서는 상대방의 말에 의해 일어나는 성냄의 번뇌를 끊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하고 있다. 남들로부터 자신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소리를 들을 경우 마음을 방치한 채 소리를 따라가지 않고 소리에 의해 반응하는 마음의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라고 가르친다. 마음에서 분노나 악의가 발동할 때 즉시 이를 알아채면서 “화냄, 화냄, 화냄”하고 속으로 되뇌면 마음이 화에 침몰되거나 휩싸이지 않고 평정이 유지된다고 한다.

누구든지 상대가 나를 헐뜯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렇다고 상대를 증오하고 악의를 품는다면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이를 방지하고 자신을 보호 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마음을 관찰하는 일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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