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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심(虛心)의 세계로 돌아갈 때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의 일이다. 유학할 때 함께 공부했던 분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유럽에서 은행장도 했던 일본인이다. 말년에 불법이 좋아서 공부하다가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등록했다고 한다. 백발의 머릿결에 말쑥한 신사 차림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분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된 것은 천도재가 끝날 무렵이었다. 

일본에서는 가족 일원의 죽음을 주위에 늦게 알리는 일이 있다. 열반인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사후에 자신의 ‘뒤를 깨끗하게’ 하는 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삼는 풍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임종 전에 스스로 삶의 흔적을 지우고 간다. 비우고 우주로 떠날 텐데 장례식장에까지 와서 빈껍데기인 육신에게 ‘안녕’을 고할 것도 없다고 본다. 우리의 매일은 물론 한 해의 끝자락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렇게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벽암록’ 제27칙에서 “나무가 시들고 메말라 잎이 떨어졌을 때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운문화상이 “가을바람에 나무의 본체가 완연히 드러난다”고 했던 유명한 체로금풍(體露金風)의 선어는 겨울에 제맛이 난다. 모든 번뇌가 다 떨어져 나가고 법신의 체가 빛나는 겨울이야말로 심신탈락(身心脱落)의 계절이다. 여름과 가을의 화려함이 서늘한 늦가을 바람에 날려가고 적나라하게 드러난 나무는 찬 공기가 둘러싼 겨울에 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불염(不染), 불변(不變), 불괴(不壞)의 금강 자성이 투명한 겨울 하늘에서 더욱 빛나는 것처럼.

마음을 비워야 진실이 드러난다는 것은 세상 모든 종교의 공통된 가르침이다. ‘도덕경’에서 “도를 닦는 것은 나날이 더는 것이며, 덜고 덜면 무위의 경지에 이른다”는 말은 텅 빈 본성의 성격에 부합한다. 예수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산상수훈에서 한 말은 하느님 앞에서 모든 것을 비워야만 진정한 믿음에 계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잘 알다시피, 용수는 ‘중론’에서 무자성한 번뇌나 업을 직관하는 것을 공관(空觀)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불이 깨달은 연기의 법칙에 의거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부처님의 위대함은 누구든지 무상(無常)을 인식했지만, 이를 관조하고 극복하기 위한 수행의 길을 세워주었다는 점이다. 무상을 철견하여 불생불멸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불성을 확인한 것이다. 정체성 없는 일물이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로 무한히 확장해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수행해야 할 한 해의 마지막 작업이다. 육식이 육진에 처해도 물들지 않고 자유자재할 수 있는 세계, 무위의 진여가 춤추는 세계가 그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발하며, 자신과 세계의 평화와 안락을 위해 육식과 육진을 운전할 때처럼 잘 부려 쓰는 것이야말로 대승의 본분이다. 

특히 정치의 계절인 지금은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이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위정자들은 겉으로는 허심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권력을 사유화하여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지도자들을 선택하는 우리 자신은 물론 위정자들의 공심(空心)이 확립되어야만 권력의 공공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과거 비탄의 역사에만 매몰될 수는 없다.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정치를 길들이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위정자들을 우리가 선택했음에도 매번 속고 만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우리 내면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다. 우리 마음의 현주소가 정치다. 언제 위정자들을 냉철한 이성에 의한 투명한 직관력으로 뽑았던가. 흩날리는 감정, 눈앞에 벌어지는 시비이해의 극단에서 선택한 후과를 맛볼 뿐이다. 우리가 초래한 코로나19의 대유행 또한 마찬가지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우리에게 자신과 문명을 깊게 통찰하게 한다. 대유행의 끝은 인간이 철들 무렵일 것이다. 마음을 비워 나라와 문명의 현실을 정견하고, 수처작주 수처해탈의 무위진인의 삶이 드러난다면 새해의 살림살이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14호 / 2021년 12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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