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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행 윤선주(보명화, 62) - 상

기자명 법보

수행 궁금증으로 찾은 범어사
화엄신중기도로 수행 시작해
봉사·기도해도 따라온 불안감
해소 위해 시민선방 입방신청

보명화, 62
보명화, 62

불교를 처음 접한 곳은 부산 반여동에 있는 한 도량이었다. 건강이 썩 좋지 못했기에 ‘기도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하는 심정으로 도량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신행의 출발이었다. 이곳에서 불교가 참 편안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면, 딸의 입시로 인연을 맺은 다른 절은 기도의 힘을 느끼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 절에서는 지장보살을 반복해서 염하는 수행을 지속했다. 그러다 보니 수행법에 대한 궁금증이 늘어났고, 이왕이면 기도도 좀 더 깊이 있게 해보고 싶다는 발원이 커졌다. ‘큰 절에 가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용기를 내 부산에서 ‘큰 절’로 불리는 범어사를 찾은 것이 12년 전이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지 않고 대웅전으로 곧바로 향했다. 범어사 대웅전은 이른 아침에 올라가도 전각 안에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불자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기도처다. 여기서 범어사 전통의 ‘화엄신중기도’로 수행을 시작했다. 자식을 둔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취업을 앞둔 딸을 위해, 아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출발했다. 매일 새벽 3시 일어나자마자 집에서 아침기도를 했고 간단하게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해 놓은 뒤, 일찍 나서면 오전 6시, 늦어도 8시30분에는 범어사 대웅전에 당도했다. 좌복에 앉으면 잠깐의 점심 공양 시간을 제외하고 오후 2시 정도까지 나름의 수행 계획을 세워 기도했다. 매일 출근 도장을 찍듯 절에 올라갔고 ‘기도가 참 잘된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신심 날 때는 옆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기도에 몰입했다. 특히 ‘금강경’ 독송은 하루에 적게는 10독, 많게는 30독씩 읽으며 1000독을 회향할 때마다 다시 입재를 거듭했다. 현재 1만5000독을 넘어서고 있다. 또 ‘법화경’ 사경, 108참회기도,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 관세음보살 3000념 등 여러 수행법으로 정진을 이어갔다. 그러다 보면 매일 부처님 품 안에 머무는 것 같은 환희심이 함께했다. 

매일 범어사에 올라 기도할 수 있는 이 고마움을 어떤 방법으로든 회향하고 싶다는 원력이 생겼다. 마음을 먹으니 기회가 닿았다. 봉사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범어사 대웅전과 마주 보는 전각인 보제루에서는 종종 사중의 큰 법회나 큰스님들의 기제사가 봉행됐다. 법회가 열릴 때 여러 가지 준비를 책임지는 보제루 봉사 담당을 맡게 되었고 크고 작은 여러 법석의 손발이 되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절에 올라가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순간순간이 감사함으로 충만했다. 

과일 등 공양물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마지막 하나까지 도량과 불자들에게 회향했다. 봉사와 기도를 마치고 빈손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일심으로 기도하고 봉사해도 늘 따라다니는 고민이 있었다. ‘아직 공부가 안되었다’는 말이 자꾸 주위를 맴돌았다. 경전을 읽지만 뜻을 잘 몰랐고 불보살의 명호를 불러도 깊은 의미는 여전히 와닿지 않는 심정이었다. 돌이켜 보니 불교가 좋아서 할 뿐이었다. 딸이 원하는 곳에 취업했고 아들도 잘 지내고 있으니 간절함마저 사라진 느낌이었다. 갑자기 누군가 내게 ‘살림살이를 내놓아보라’고 하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일체 존재의 행복을 발원하는 기도가 왠지 텅 비어 덜커덩거리는 수레 같았다. 날이 거듭될수록 노심초사하며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까지 들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문구를 만났다. 2019년 가을, 범어사에서는 오랜 염원의 불사였던 선문화교육관을 개관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재가불자를 위한 선방이 문을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민선방 안내문을 보자마자 입방을 신청했다. 사실 선방에 관한 이야기는 책으로 접한 것이 전부였다. 또 선방에 다닌다는 불자들에게는 왠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벽이 느껴져 좀처럼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지금 두드려야 할 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참선수행을 위해 봉사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초심자로 돌아가자.’ 선방 입문은 묘한 긴장감마저 느끼게 했다. 

드디어 시민선방의 문이 열렸고 1차 정진의 대중이 되었다. 처음 좌복에 앉은 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얼마나 내면이 시끄럽고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지 명징하게 확인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1614호 / 2021년 12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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