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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의 이익·안락·해탈 위해 봉사하는 게 정치인 으뜸 덕목

  • 새해특집
  • 입력 2021.12.29 15:53
  • 수정 2021.12.29 16:05
  • 호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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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 - 불교에서 배우는 통치의 지혜
[불교와 정치] 1. 경전에 나타난 지도자상

‘숫타니파타’ ‘화엄경’ 등 정법에 의한 통치 강조
정법에 의한 정치란 인륜의 이법이 실현되는 것
사익으로 정의롭지 못하면 국민 갈등·반목 커져

전륜성왕과 법륜,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인도 첸나이주립박물관 소장.
전륜성왕과 법륜,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인도 첸나이주립박물관 소장.

초기경전에 의하면 붓다는 정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단지 정치가 현실적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붓다는 정치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백성과 군주를 인격적으로 교화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불교에서는 왕권을 사유재산으로 인해 생겨난 사회악을 해소하고 질서와 법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백성들의 합의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국왕에게 특별히 우월하거나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국왕은 왕이 될 수 있는 업보를 가지고 있을 뿐 그 자체 무상한 존재이고, 백성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붓다가 활동하던 시기의 인도 정치체제는 공화제와 군주제로 나누어져 있었다. 붓다는 평등하고 평화적이며 민주적인 합의 절차에 의해서 운영되는 공화제를 바람직한 정치체제로 생각했다. 그러나 공화제는 구성원들의 이기심에 의해 도덕성이 상실되면 쉽게 분열되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국들이 통일국가를 이루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붓다는 바람직한 세속적 군주의 상을 제시하여 왕법에 근거한 통치를 강조하고, 왕법은 종교적, 도덕적인 정법(正法)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세속권력보다는 정법을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한 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가 정법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붓다의 중생구제 이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륜성왕 사상은 이러한 정법 실현의 관점에서 등장한 것이다. 

전륜성왕은 도덕성과 정치, 경제적 능력을 모두 갖춘 바람직한 인군(人君)의 상으로 묘사된다. 초기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는 전륜성왕을 “사방을 정복하는 잠주부(인도)의 통치자” “왕 중의 왕” “인류의 제왕”이라 명명하고 있다. 전륜성왕 사상은 ‘증일아함경’ ‘장아함경’ ‘중아함경’이나 대승경전인 ‘화엄경’ ‘대반야경’ ‘대살차니건자경’ ‘대보적경’ 등 여러 곳에서 제시되고 있다. 

전륜성왕 사상은 왕자(王者)사상과 성자(聖者)사상이 결합된 것이다. 전륜성왕은 정법에 의해 다스리며 그 상징으로 금륜보, 백상보, 감마보, 신주보, 옥녀보, 거사보, 주병보와 같은 칠보를 성취하며 선(善), 법(法), 자(慈), 시간, 대중이라는 5가지 위대한 개인적인 자질과 4가지의 공덕을 갖고 있다. 그리고 무력이 아닌 정법으로 정복하며, 법보에 의해 왕위를 보존하지만 궁극적으로 출가한다고 한다.

칠보는 전륜성왕의 이상적인 통치를 상징한다. 정법의 상징인 금륜보는 우주적 정의, 다르마를 뜻한다. 이것은 완전한 인격을 갖춘 도덕성에 의해 전 세계를 통치하는 우주적 통치자라는 의미이다. 칠보의 나머지는 슬기로운 부인의 내조,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인 재해의 방지, 도로망의 확충에 따른 교통수단과 수송수단의 확보, 우수한 군사력과 충직하고 뛰어난 지휘관, 정법을 실천하는 훌륭하고 현명한 관료, 자산가의 경제력에 바탕한 풍부한 국가 재정과 그것의 효율적인 관리 등을 상징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정법을 실현하는 유덕한 군주와 국가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조화라 할 수 있다. ‘40화엄경’에서는 칠보를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7가지 요소라고 하여 임금의 덕, 보좌하는 신하, 국경, 영토, 창고, 군사, 이웃 나라를 말하고, 특히 국왕의 완성된 인격을 강조한다. 

전륜성왕은 정법에 의해 다스리기 때문에 백성들을 도덕적으로 완성시키고, 평등한 권리와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며, 전쟁의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국가를 이루어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도덕적 지배자라고 할 수 있다. 즉 전륜성왕은 정의에 입각한 법치(法治)와 자비를 바탕으로 한 덕치(德治)로 나라를 다스리고, 이웃 나라를 무력이 아닌 정법에 의한 감화력으로 정복한다. 따라서 더 이상 강자가 약자를 병합하는 것과 같은 물고기 정책은 필요없다. 붓다는 전륜성왕의 이념을 통해 권력 중심 국가에 새로운 사회질서 구축의 원리로 도덕적인 질서를 제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정치 행위는 국왕의 백성에 대한 봉사이다. 그러므로 정치의 목적은 모든 사람의 이익과 안락, 해탈에 둔다. 봉사의 정치를 하기 위해 국왕은 먼저 스스로 완성된 인격을 닦아야 하며, 백성들을 고난과 불안, 공포나 여러 사회악에서 구제하기 위해 자비에 의한 보시, 충과 효, 우애, 신의 등과 같은 인륜(人倫)의 실천이라는 정법에 의한 통치를 해야 한다. 왕이 완성된 인격을 바탕으로 정법에 의한 통치를 하게 되면 신하가 비법(非法)을 행하지 않게 되어 모든 관리가 청정하게 되고, 백성도 그것을 본받게 된다는 것이다. 

정법에 근거한 통치원리는 전륜성왕 관련 경전 외에도 대승경전인 ‘화엄경’ ‘입법계품’이나 ‘금광명경’ ‘보살행방편경계신통변화경’ ‘금광명최승왕경’ ‘대법고경’ ‘보행왕정론’ ‘권계왕송’ 등에서 말해지고 있다. 이들 경론에서는 국왕의 임무와 통치원리 외에도 국정 운용과 관료조직, 치안과 국방, 경제와 복지, 종교정책 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들 경론에 나타나고 있는 통치원리를 바탕으로 현대의 정치지도자들이 유념해야 할 정치 덕목이나 방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지도자는 유덕함은 물론 지혜롭고 현명해야 한다. 국가를 다스림에 있어 올바른 상황 판단은 국민의 삶이나 국가의 운명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올바른 상황 판단과 그에 따른 적절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사람이나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며, 언행 일치를 통해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측근의 아첨이나 기어(綺語)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며, 그들의 말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정치지도자는 평등·공정·공평해야 한다. 계급이나 신분의 상하, 친분관계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사사로운 감정이나 욕망에 따른 이익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능력의 여하를 불문하고 개인적인 정실이나 보답에 이끌려 정의롭지 못한 인사나 정치적 행위를 하게 되면 이로 말미암아 도의가 무너지게 되고, 서로 기만하게 되어 불신과 대립이 심해진다. 간신이 난동하여 충신과 지혜로운 자는 은둔하게 되고, 신뢰가 땅에 떨어져 정치지도자에 대한 원망이나 경멸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게 되어 그를 원수나 도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셋째, 정치지도자는 국민과 공감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민과 공감하면서 더불어 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지도자가 이상적인 지도자라 할 수 있다. 또한 지도자는 국민을 악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악행을 한 사람에게는 악행의 인과를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 상벌에 있어 진영의 논리가 개입되면 이미 부정한 사회가 된다.

넷째, 국가의 지도자는 국방을 굳건하게 해야 한다. 국제정세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나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며,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핵심가치를 손상시켜서는 안된다. 또한 무력의 증강이나 군대의 확장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국민의 정신적 무장을 도모하여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럴 때 강대국의 끊임없는 간섭과 협박에 굳건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사회의 안정과 평화, 훌륭한 국가를 위해서는 국가의 경제적 번영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내에 충분한 일자리를 창출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력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재정적 수입을 제공함으로써 국가를 원망하거나 사회악에 의지하려는 욕구를 소멸시켜야 한다. 올바른 경제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며, 기본적이고 평균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사회복지정책도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붓다도 빈곤이 인간을 도덕적, 육체적으로 타락시켜 사회악을 발생시킨다고 하여 국가는 빈곤의 퇴치, 빈민구제와 같은 국민의 기본적인 삶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소외되거나 억울하게 불이익을 받는 계층 없이 국민 전체에게 부의 혜택이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는 복지정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덕망이 있고, 언행이 진실하고, 정직 검약하고, 책임감이 있고, 국내외의 문제에 대한 상황 판단을 올바르게 할 수 있고, 국가의 재무가 균등하고, 국가의 재산을 사유화하는 탐관오리나 도둑이 없고, 외적이 침략할 염려가 없을 때 비로소 국가의 기초가 튼튼하게 확립된다. 이것은 정치지도자가 정법에 따라 통치할 때 가능하다. 마치 물을 건너가는 소 떼의 우두머리가 곧게 나아갈 때 모든 소가 곧게 나아가게 되는 것과 같이 한 국가 안에서도 지도자가 정법이나 정의에 근거한 통치를 한다면 그 국가나 국가의 구성원들은 더욱 번영하고 정의롭게 된다. 그러나 정치지도자가 인륜을 실천하지 않고, 상황 판단도 올바르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에 매달려 정의롭지 못하게 되면, 국민들의 도의는 무너지게 되고, 사회악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게 되고, 진영을 나누어서 상호 갈등과 다툼으로 반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더욱 빈곤해지고, 불안에 떨게 되어 지도자에 대한 원망과 불신은 증대하게 된다. 이러한 국가는 오래 번영할 수 없다. 

조수동 전 대구한의대 교수
조수동 
전 대구한의대 교수

정법에 의한 정치란 인륜의 이법(理法)이 실현되는 것이며, 그 정치 행위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이면서 공평하고 공정하고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아울러 국민들을 하나로 화회(和會) 단결시킬 수 있는 정치이다.

 

 

 

[1615호 / 2022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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