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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세상 건너는 법

기자명 진원 스님

‘해가 처음 돋아오를 때는
산꼭대기 위에 있게 되나니
당신의 슬기로운 광명이야말로
일체 중생을 비추시리다
싯다르타 태자가 세간을 떠나 출세간에 나아가면서 명예와 권력과 부의 상징인 왕자 옷을 벗고 출가자의 의복, 즉 진인(眞人)의 옷이요, 세상을 건지는 자비의 옷, 소망이 이루어지는 법의 옷으로 갈아입고 산에 들어가자 온 산은 서광이 가득하였다.’(수행본기경)

이는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를 찬탄한 글이다.

집도 절도 없다는 말처럼 나는 요즘같이 자유로울 때가 없다. 이른 아침이면 자욱한 안개 속을 지나 근처 외국인스님들이 공부하는 무상사에 기도를 떠난다. 지심귀명례하고 108배를 올리면 주지 소임 때 느껴보지 못한 자유와 발심으로 새롭다. 동터 오는 태양이 산꼭대기를 비추고 자욱한 안개가 걷히면서 삼라만상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나의 기도는 끝난다. 옛 고승들은 깨달으면 이렇게 삼라만상의 이치를 훤히 보는 지혜가 적나라하게 열린다고 한다.

시간의 영속성 속에서 시작도 끝도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묵은해와 새해를 구분한다. 한 해에 힘들었던 기억들을 회자하고 정리하면서 지난해에 이루지 못한 소망을 새로운 한 해에 다시 다짐하는 것이다.

지난해는 뭐니 뭐니 해도 ‘집’이 갑이었다. 자고 나면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는 집값에 벼락부자가 속출했고, 이러한 반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안절부절했다. 정말 내 몸 하나 쉴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속절없이 좌절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이라는 말까지 대두 되었을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욕구와 욕망을 탓할 수만 없지만 욕망이 습관화 되어 버린 세상, 그 욕망을 조금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안 될까.

연일 고공행진 하는 집값과 가파르게 상승하는 주식 그래프에 주변사람들도 한 방향으로 휩쓸려 가는 것 같다. 시간만 나면 집이야기와 비트코인, 주식이야기뿐이다. 집값이 오른 사람들은 날마다 생기가 돌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박탈감 내지는 패배자 같았다. 그럴 때마다 “좋은 시절이라고 날마다 좋은 시절 없고, 지금 당장 불이익을 보는 것 같지만 늘 손해 보는 인생 없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귀하게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랬던 그들이 요즘에는 재산세가 많아서 걱정이란다. 많아서 걱정, 부족해서 걱정 모든 게 걱정인 그들이 늘 불안해 보인다. 그렇다고 그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채워지지 않아 잠 못 이루는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줄까. 

말법시대인 지금 우리에게는 욕망과 집착을 떠나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자신이 받고 있는 괴로움을 소멸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지혜롭고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욕망과 집착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새해 불자들의 인사는 “부자되세요”라는 말보다는 “자비로운 마음입니다”라는 덕담을 전했으면 한다. 언제까지 천상천하를 주유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돈과 부에 욕망을 두고 살 것인가. 마음에 자비로운 생각을 담고, 자비로운 생각의 소유자가 되면 진정한 행복을 알 수 있다. 마음자리 하나에 고통과 행복이 함께 공존하고, 선업과 악업이 함께 공존하니 취사선택은 내 마음대로이다. 욕망의 옷을 벗고 자유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소원을 가져보기 바란다.

오늘도 나는 싯다르타 왕자가 출가시절 벗어던진 욕망의 옷을 벗어버리고 출가자의 의복, 진인(眞人)의 의복, 세상을 건지는 자비의 옷, 소망이 이루어지는 법의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새벽안개가 자욱한 무상사 길을 걷고 있다.

산은 벌써 광명이 가득하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인데도 묵은해가 지고 새해가 밝고 있다. 

2022년 호랑이띠 해에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불안한 세상이 아닌 호랑이처럼 용맹하고 대범하게, 느리지만 소처럼 신중하게(虎視牛步) 자타를 돌아본다면 부처님의 슬기로운 광명이 일체 중생을 비추시리다.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615호 / 2022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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