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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화엄경 독서의 길 안내에 주력

연구자들, 화엄교학에 쏠려
화엄경 본문 읽기에는 소홀
철학·해석학적 서술 줄이고
전통적 경학 방법 적극 활용

고려 말 조선 초,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은 달마 스님과 혜능 스님의 남종선을 계보로 하는 ‘선종’과 현수-청량-규봉 등의 스님으로 이어지는 ‘화엄종’의 양대 산맥으로 조정되었다. 그 결과를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으로 공포했다.  그러나 성리학의 이념이 공고해지면서 ‘경국대전’의 불교 관련 조문도 죽은 문서가 되었고, 불교계는 인재난을 비롯해 여러 어려움에 빠졌다. 결과적으로 산중에서 겨우 계보상 선종 명맥만 이어갈 정도였고, 선종이건 화엄종이건 학승을 배출할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다 16세기 말 17세기 초, 임진왜란의 긴 전쟁 통에 승려들의 구국 애민 활동이 높이 평가되고 또 신분제가 와해되어가면서 글 읽는 집 자손들도 출가하기 시작했다. 강원(講院)도 생기고 교과과정도 정비되어갔다. 게다가 영·정조 시대 학문 진흥 풍조에 힘입어  불교계에도 선종과 화엄종 관련 책을 읽고 쓰는 학승들이 늘기 시작했다.

‘기신론’ 주석서로 대승불교의 총체적 이론 틀을 잡게 했고, ‘금강경’ 주석서로 외재적 요소실재론자인 부파불교와 내재적 의식실재론자인 유식불교 격파 훈련을 시켰고, ‘능엄경’과 ‘원각경’ 주석서로 부정의 논법으로 일관하는 공사상을 극복하게 했고, ‘화엄경’ 주석서로 전(全) 불교사상을 종합 통일하여 대승보살의 실천 이론을 제시했다. 또 선사들의 법문을 이해하기 위해 ‘선요’를, 사대부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가르치기 위해 ‘서장’을, 선종 역사를 알기 위해 ‘전등록’을, 화두를 점검하기 위해 ‘선문염송’을 학습시켰다.

이상은 모두 이론에 관한 문헌 훈련이다. 이런 문헌 훈련을 마치고, 또는 동시에 병행하여, 실제 수행을 시켰다. 이런 실제 수행을 통해서 몸소 아집과 법집을 떨쳐내는 체험을 하게 했다. 이런 교육방법을 중국 선종에서는 ‘자교오종(藉敎悟宗)’이라 표기했고, 조선 선종에서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 표기했다.

요약해서 말하면, 교학(敎學)과 선학(禪學) 관련 책 읽기 훈련을 시켰다. 그 훈련을 마치고, 또는 그 훈련을 하면서, 화두 참선이라는 마음 닦기 훈련을 시켰다.

필자는 이상의 서적을 중심으로 한 ‘읽기’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방면의 학문적 ‘연구’도 진행해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읽기’ 중에서 ‘화엄교학’ 방면 중 특히 ‘화엄경’ 읽기에 주목하려 한다. 당연하겠지만, ‘화엄경’ 본문이 세상에 먼저 출현하고, 그런 다음에 ‘화엄경’ 본문을 연구하는 경학’의 부산물로 ‘화엄교학’이 출현한다. 그런데도 많은 연구자들이 ‘화엄교학’에 쏠려, 오히려 ‘화엄경’ 본문 읽기에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세상에 유통되는 ‘화엄경’에는 여러 대본이 있지만, 조선시대 이래 우리나라에서는 80권으로 번역된 한문 ‘화엄경’이 주류를 이루었다. 최초의 한글 번역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7년 용성 스님이 하셨지만, 현재 널리 보급되는 한글 ‘화엄경’은 운허 스님이 ‘동국역경원’에서 번역한 상책(1966년 11월 간행)과 하책(1968년 3월 간행)이다. 요즈음 대부분의 번역들도 운허 스님의 번역에 신세지고 있다. 본 연재에서는 운허 스님의 번역을 대본으로 한다.

모든 경전이 그렇듯이 ‘화엄경’ 독서는 특히 ‘요령’이 필요하다. 그 ‘요령’의 하나가 ‘과목치기’이다. 나뭇가지 치듯 그렇게 각 문단들의 과목을 나누고 졸가리를 잡아야 한다. 한편, ‘화엄경’의 범어 이름 속에 ‘바이푸리아(vaipulya)’라는 용어가 들어 있는데, 이를 한자로 ‘방광(方廣)’이라 번역했다. 이 용어 속에는 ‘문답’이란 뜻도 들어있듯이, ‘화엄경’에는 수많은 ‘문답’이 얽혀있다. 심한 경우는 경전 첫 입새에서 제기된 질문인데, 그 대답은 말미에 나오기도 한다. 전통 화엄 강사들은 이 ‘문답의 연결 고리 찾기’에 주목했다. 본 연재에서는 ‘과목치기’와 ‘문답의 연결 고리 찾기’를 요령삼아 되도록 쉽게 ‘화엄경’ 독서의 길 안내에 주력하려 한다.

방법적으로는, 필자의 철학적 견해나 해석학적 서술은 줄이고, 경전 속에서 경전을 설명하는 전통적 ‘경학(經學)’ 방법을 활용하려고 한다. ‘경학’에서는 이런 방법을 ‘이경해경(以經解經)’이라고 한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15호 / 2022년 1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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