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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산 이정에서 일출을 바라보다(洛山梨亭觀日出)

기자명 승한 스님

낙산 해돋이 보고 깨친 선사의 언어

괄허선사 시는 대단히 문학적
동해 먼 수평선 ‘문’으로 상상
‘만 오라기 붉은 빛’도 뛰어나
길에서 길을 찾기 위한 여정

불타는 바퀴가 동녘바다 문에서 막 떠오르자
만 오라기 붉은 빛이 푸른 허공을 쏜다.
밝고 텅 빈 하늘땅 멀리 눈길을 보내니
구름이 막 물로 흩어지며 붉은 빛이 영롱하다.
火輪初出海門東(화륜초출해문동)
萬縷紅光射碧空(만루홍광사벽공)
天地虛明遙送目(천지허명요송목)
雲初散水玲瓏彤(운초산수영롱동)
- 괄허취여

또 해가 바뀌었다. 해가 바뀌면 뭔가 나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뭔가 새 결심을 하고, 새 소망을 갖고, 새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결심과 소망과 목표를 다지기 위해 해맞이라도 가고 싶다. 그만큼 새해 새날 새로 돋는 해는 우리 마음을 충만케 한다.

조선 어느 날, 괄허취여(括虛取如, 1720~1789) 선사도 해돋이를 보러 강원도 양양 낙산에 갔던 것 같다.(그날이 새해 새날이었는지는 모른다.) 이른 새벽, 예불과 참선을 끝낸 괄허 선사는 바닷가로 갔다. 그리고 먼 수평선[海門]에서 막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그 일출을 보는 순간, 선사는 한 소식을 얻었다. 푸른 하늘로 부챗살처럼 흩어지는 ‘붉은 빛’과 바닷물을 영롱하게 적시는 ‘붉은 빛’이었다. 그 붉은 빛은 ‘불타는 불법(佛法)의 수레바퀴[火輪]’였다.

십수 년 전, 나도 수행을 겸해 바닷가로 ‘100일 만행’을 떠난 적이 있다. 첫 기착지는 낙산 홍련암이었다. 새해 새날 해맞이를 겸해서였다. 그해 마지막 날 오전, 나는 청량리역에서 강릉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당시만 해도 강릉행 KTX가 없었다.) 그때 나는 ‘만행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나는 출가수행자다, 기도하고 명상하고 공부하며 부처님의 철학과 삶의 방식을 실천하고 전하는. 그럼에도 그 속박을 벗어던지고 먼 여정에 오른 것은 ‘길[道]’에서 ‘길[道]’을 찾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길들 위에 내 길의 자서전을 쓰고 싶어서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던가? 또한 얼마나 많은 길은 놓치고 아파하고 후회하며 살아왔던가? 이번의 길 떠남은 그렇게 그동안 내가 놓치고 살아왔던, 혹은 미처 찾지 못했던 수많은 내 미지의 길을 만나보는 자리가 되기도 할 터이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 미지의 길을 단 한 매듭으로 단정지었다.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고. ‘낫 테이큰(not Taken)’이라고.… 내 맘을 안 탓일까? 5시간 32분 동안 종착역인 강릉역을 향해 꾸벅꾸벅 달려갈 무궁화호 열차는 서서히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내 몸도 서서히 예열되고 있었다. 전남 영광 군남 동월 258번지, 궁촌벽지에서 태어난 내가 열차를 처음 보고 처음 타본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자랑스러운 나의 첫 가출사건이 안겨준 선물이다. 그때 광주에서 서울까지 8시간이나 걸리는 야간 도둑열차를 타보지 않았다면, 나의 첫 가출사건은 그야말로 무의미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분명 팔자는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나는 모두 네 번의 가출을 했다. 어쩌면 그 가출(家出)의 카르마(업)가 지금의 ‘내 아름다운 출가(出家)’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그 만행 길에서 나는 괄허 선사처럼 ‘붉은 빛’을 얻진 못했다. 하지만, 길 없는 ‘새길’을 얻었다. 그리고 그 길이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괄허 선사의 이 시는 대단히 문학적이다. 동해바다 먼 수평선을 ‘문(門)’으로 상상하고, 해가 막 떠오르는 장면을 해가 ‘문’을 열고 나오는 것으로 묘사하고, 퍼지는 새벽노을을 ‘만 오라기 붉은 빛’으로 표현했다. 기막힌 언어감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도 어둡게 시작됐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그 어둠을 잘도 견뎌냈다. 언제 걷힐지 모를 그 어둠을 올해도 견뎌내야 한다. 괄허 선사의 일출처럼 푸른 하늘로 퍼지는 붉은 햇살과 깊은 고해(苦海)를 붉게 물들이는 ‘빛’처럼, 희망(希望)과 용기(勇氣)를 가지고, 씩씩하게, 굳건히. 이 시를 선시산책의 첫 머리로 가져온 이유다.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omubuddha@hanmail.net

[1616호 / 2022년 1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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