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명 오동환

돈황석굴, 시공 교차하며 형성된 입체적 대장경

동서관문에 천년 간 조성…석굴 500여기에 불상·벽화 
하나의 석굴로 구현된 불국토에 변상으로 법어 시각화
출가자엔 관상수행의 대상이자 예배자엔 학습의 교재

막고굴은 남북방향으로 길게 뻗은 단면에 700여기 이상의 석굴이 빼곡히 조성되어 있다.
막고굴 61호굴은 중앙 불단을 중심으로 굴 전체가 벽화로 장엄돼 있다. 
막고굴 61호 굴은 중앙 불단을 중심으로 굴 전체가 벽화로 장엄돼 있다. 

불교에 있어 경전은 무엇인가?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이자, 부처님이 교설하신 진리의 기록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그 깨달음의 법어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2500여년 전 녹야원의 다섯 비구에게 최초의 설법을 하신 이래 열반에 드시기까지 교화행에 힘쓰신 덕이다. 또한 그 법어가 제자들을 통하여 철저하게 암송되고, 전승되고, 다시 문자로 기록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진리의 경계는 ‘불립문자’ ‘언어도단’이지만, 감관에 기대어 인식할 수밖에 없는 범부중생에게는 오히려 그 암송되고 문자화된 경전 자체가 진리의 피안으로 이끄는 유일한 나룻배일 수 있다. 언어도단의 간극은 나룻배에 오른 후, 수행과 성찰이라는 노를 끊임없이 저음으로써 극복돼야 할 과제를 의미하리라. 그렇다면 경전의 나룻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양적으로 방대하고 사상적으로 복잡해진 경전체계에 직면해, 이 질문은 시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고심해야 할 난제일 것이다. 

돈황석굴은 이러한 질문과 연결했을 때, 흥미로운 점이 많다. 주지하다시피 돈황은 실크로드의 동과 서를 잇는 관문에 자리했기 때문에 문화의 유입과 융합 또한 왕성했다. 이러한 문화와 사상의 회통 속에서 돈황석굴이라는 불교유산의 보고가 탄생했다. 돈황석굴은 막고굴, 유림석굴, 동천불동, 서천불동 등 일대의 석굴군을 통칭한다. 유명한 막고굴은 돈황석굴을 대표하는 석굴로서 4세기 중엽부터 약 1000년의 세월에 걸쳐 부단히 석굴이 건설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석굴의 수가 735기에 달하며, 그 가운데 약 500기에 가까운 석굴 내부에는 불상과 벽화가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어 당시의 감흥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그 중의 한 석굴을 들어가 보자. 10세기 중엽에 조성된 막고굴 제61호굴은 당시 중국 오대산에 남겨진 신라나 고려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석굴이다. 좁게 형성된 통도(通道)를 지나 주실에 들어서면 온통 벽화로 장엄된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면의 벽면 중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서벽)에는 문수보살이 주재하는 성지로 알려진 오대산도가 그려져 있어, 지금은 텅빈 채로 남아있는 중앙의 불단에 본래 문수보살이 주존상으로 자리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나머지 삼면의 벽에는 ‘능가경’ ‘미륵경’ ‘아미타경’ ‘법화경’ ‘보은경’(이상 남벽), ‘밀엄경’ ‘천청문경’ ‘약사경’ ‘화엄경’ ‘사익범천문경’(이상 북벽), ‘유마경’(동벽)을 배경으로 한 벽화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른바 경변(經變) 혹은 변상(變相), 즉 경전을 소재로 조성된 회화를 이와 같이 석굴에 장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혜의 상징자로서 대부분 경전 법회에서 상수(上首)로서 자리했던 문수보살을 추앙하고 그가 주재하는 세계를 장엄하기 위함일 것이다. 당시 하나의 석굴로 구현된 불국토에서 교주는 중앙에 자리한 문수보살이며, 문수보살의 지혜와 정신을 담지하고 있는 것은 경전의 법어를 시각화한 변상들이다. 

그렇다면, 변상은 단지 석굴을 장식하고 교리를 상징하기 위해서 표현되었을까? 정토종의 대성자(大成者)인 선도(善導. 613~681)는 일생 동안 약 300폭의 정토변상을 그렸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저작인 ‘관념아미타불상해삼매공덕법문’에서 언급했듯이 ‘누구나 정토장엄 변상을 그려 주야로 정토를 생각한다면, 현세에 생각마다 과거 팔십억겁 동안 지은 생사의 죄를 제멸할 수 있다’는 염원에 근거한 것이다. 비교적 초기의 돈황석굴에는 관상(觀像) 수행을 위한 소규모 석굴이 다수 제작되었는데, 이러한 석굴에 장식된 변상의 경우 역시 수행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변상들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대다수의 변상들이 예배자에게 이야기되고 설명될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61호굴의 예를 보자. 갖가지 변상들을 주존상이 자리한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와 정면의 벽에 장엄했는데, 이러한 배치는 예배자의 입장에서도 관람하기에 용이하다. 변상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각 장면마다 방제(榜題)를 붙여 설명을 덧붙이고 있음이 확인된다. ‘장경동’으로 잘 알려진 막고굴 제17호굴에서 발견된 돈황문서 중에는 경문을 강설하기 위해 기록한 변문(變文)이 다수 보이는데, 이것들은 변상과 상호보완적으로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정황들을 고려해볼 때, 예배자에게 있어 변상은 돈황석굴이라는 응축된 불타의 공간에서 학습하고 체득할 수 있는 또 다른 경전이라 할 수 있다. 

변상은 비단 61굴에만 벽화로 장식된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돈황석굴 속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 형식에 있어서 경전의 내용을 시간적 배열에 따라 여러 화면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큰 화면 안에 화가 자신의 설계에 따라 중층적 구성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내용적으로도 주존상과 각 석굴이 구상하는 이념에 따라 다양한 불전들이 묘사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현우경’ ‘육도집경’ ‘대지도론’ 등 각종 경전에 기록된 인연, 본생, 본행을 묘사한 내용도 있고, ‘아미타경’ ‘약사경’ ‘미륵경’ 등의 정토경전, ‘법화경’ ‘화엄경’ ‘열반경’과 같은 대승경전들, ‘금강경’ ‘능가경’ ‘사익경’ ‘밀엄경’ 등 선종계 경전과 더불어, ‘금광명경’ ‘불정존승다라니경’ ‘불공견색관음경’ 등 밀교계 경전 등 그 종류가 다채롭다. 이처럼 다양한 경전들을 바탕으로 한 변상들은 단독으로 혹은 변상들 간의 조합을 통해 각각 수백기의 석굴을 장식하고, 다시 시대에 따라 표현과 의미에 같음과 차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가히 시간과 공간을 교차해 형성된 입체적 대장경이라 할만하다. 

본 연재에서는 앞으로 돈황석굴에서 시각적으로 재구성된 경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 글마당이 당시의 불교 사상과 신앙적 면모를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다각화된 매체 환경에 처한 우리 불교에서 시각문화가 갖는 의미를 반추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ory88@qq.com

[1616호 / 2022년 1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