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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행 윤선주(보명화, 62) - 하

기자명 법보

어려워도 포기 않고 선방 찾아
시간 지날수록 몸·마음 편안해
일상서 잦았던 다툼 줄어들고
집착하는 마음 알아차리기도

보명화, 62

1차 정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좌복에 앉으면 온몸이 바늘로 찔리는 듯 쑤셨고, 머릿속은 떠오르는 번뇌와 망상들로 뒤죽박죽이었다. 대웅전 기도, 보제루 봉사를 몇 년동안이나 했던 내가 아닌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티며 겨우 45일 1차 정진을 마쳤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참 묘한 현상이었다. ‘참선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한 부분을 차지했다면, 또 다른 한 부분은 ‘준비운동 제대로 한 셈 치자. 다시 한 번 도전 어때’라며 선방 문을 다시 두드리도록 나를 이끌었다. 45일 정진을 끝내자마자 2차 정진대중 모집에 다시 이름을 써넣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는 야심차게 출범한 범어사 시민선방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방 개방이 무기한 보류된 것이다. 언제든지 문을 열면 들어가겠노라며 다짐하고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동안 범어사 전통등 공방에서 봉사하기 시작했다. 일반 사람들은 부처님오신날에만 등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범어사 전통등 공방은 1년 내내 불이 켜져 있다. 봉사를 하던 중 큰 장애를 만났다. 등 공방에서는 음력 초하루 봉사를 마치고 나면 떡이나 과일 등 불단에 올려졌던 공양물을 선물로 주곤 했다. 보제루에서 봉사할 때는 늘 나누는 일에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봉사했다는 이유로 공양물을 받는 게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다. ‘내가 이걸 받아도 되나.’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음력 초하루 날이 되면 공양물이 기다려졌다. 오늘은 어떤 것을 주실지 은근 기대됐다.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공양물 받기를 기다리고 있구나. 아무 대가 없이 봉사하기로 했던 그 원은 어디로 갔는가.’ 참회의 시간으로 선방 정진이 더 간절해졌다.

오랜 기다림은 2년 만에 빛을 보았다. 2021년 11월22일 범어사 시민선방 2차 정진이 시작됐다. 범어사 시민선방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4일 정진한다. 정진 기간 중 등 공방에는 금요일에만 나가기로 양해를 구했다. 정진은 나를 위한 특별 휴가였다.

2차 정진의 첫날, 범어사 교무국장 범종 스님이 입회했다. 스님은 앉는 자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스님 덕분에 첫날부터 앉기가 훨씬 수월했다. 깨끗하고 넓은 공간에서 거리 두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항상 마스크를 했고 덕분에 모두 대화보다 정진에 더 집중했다. 매일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은 필수였다. 점심공양도 일렬로 앉아서 묵언으로 했다. 오전 수행에는 사중 국장스님이 항상 함께 앉았다. 오후에는 불자들이 돌아가며 입승 소임을 맡았다. 일과 수행을 마치면 청소로 회향했다. 모두 평등한 자리에서 서로 배려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수행 전과 후 국장스님에게 질문할 수 있었고 함께 수행하는 도반들과 차를 타고 내려가며 수행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편안해졌다. 

가족들이 나의 변화를 먼저 발견했다. 나는 성격이 보통 급한 편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든 나서서 했다. 이렇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다툼도 잦았다. 그런 내가 바뀌었단다. 남편은 기다리는 나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딸도, 아들도 어머니의 미소를 본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살았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발견했다. 항상 나의 만족이 먼저였던 지난 시간을 참회했다. 

삶의 집착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지만, 참선수행은 한참 초보다. 화두도 아직 받지 못한 상태다. 큰스님들의 법문을 들어보고 불서도 읽어보고 있다. 아직은 화두를 찾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다만 좌선에 들면 시간이 언제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재미있고 매 순간순간이 새롭다. 좌선은 어느샌가 익숙해졌고, 집착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1월5일, 45일간의 2차 정진을 회향했다. 지금까지 2차 정진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스님에게 감사드리고 함께 정진한 도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도반들은 3차 정진에 다시 들어가는 분위기다. 나는 부처님오신날까지 등 봉사를 예약해 두었다. 아쉽지만, 이번 정진은 쉬기로 했다. 더 공부하고 싶다는 이 마음으로 반드시 수행의 관문을 통과하고 싶다. 돌아오는 여름, 나는 다시 시민선방으로 힘차게 걸어가 좌복을 펼 것이다.

[1616호 / 2022년 1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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