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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장애인단체 시위

기자명 최종환

“안내말씀드립니다. 지금 장애인단체에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어 열차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급하신 분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주십시오.” 며칠 전 지하철 안내 전광판과 함께 반복적인 역무원의 멘트는 촉박한 출근길 시민들의 불만과 보통의 삶을 위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 단체의 승강장 집회현장을 팽팽하게 분리하고 있었다. 찰나 생각이 많아진다. ‘왜 하필 출근시간에…’ 혹은 ‘얼마나 간절했으면…’ 나에겐 보통인 일상이 누군가에겐 치열하게 쟁취해야 하는 삶, 같은 하늘 아래 세상은 다르게 실존하는 듯하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 후 몇 년 전 신길역 사고까지,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져 왔다. 멈추지 않는 추락 사고와 분노한 사람들의 대책 촉구 집회가 반복되는 사이, 서울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가 91% 설치되었고 지금은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유아차 사용 시민 등 다수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작년 말 지하철에서 집회를 주도하던 장애인 단체의 요구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의 연내 개정과 예산확보를 통한 이동권 보장이었고 그해 마지막 날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앞으로는 노후된 버스를 대체할 경우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고, 지자체별로 운영되는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의 지역 간 환승·연계체계가 구축된다. 법 통과로 전국적으로 30%를 밑도는 저상버스 보급이 확대되고 인근 시·도를 이동할 수 있게 됐으며 케이블카 등에도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이 의무적으로 설치되게 됐다. 혹자는 편의시설까지 갖춰진 철도망이 촘촘한데 시외버스가 왜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철도에 내린 이후 목적지로 가기 위한 것부터가 고난이다. 전국적 편차가 크고, 특별교통수단이나 저상버스가 없는 상황에서 장애인에게 ‘고향가기’란 언감생심일 때가 많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한 걸음씩 또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지만 2006년도 교통약자편의증진법 제정으로 저상버스도입, 특별교통수단 확보를 약속한 것 치고는 너무 느린 걸음이다. 2022년부터는 한 걸음씩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열심히 뛰어야 오랜 시간 인내한 교통약자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동한다는 것은, 밀어주고, 들어주고, 옮겨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자의에 의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의 삶에서 배제시키고 고립된 삶을 종용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가르침은 세상 만물은 멈춰있지 않고 반드시 변화한다는 무상의 도리를 일깨워 준다. 우리도 언젠가는 휠체어를 탈 수도, 이동의 어려움을 가진 존재가 될 것이다. 이동권 투쟁을 하는 사람들. 어쩌면 당연히 가야할 길을 위해 새로운 길을 내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집회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이동권 확보를 위한 요구는 결국 모두를 위한 변화고 미래의 나를 위한 일이 될 수 있기에 공감과 마음의 품을 내어보는 것도 원융무애한 세상으로 한 걸음 다가가는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동권은 길로 가는 여정이다. 그 길은 여행일 수도, 사람일 수도, 때론 숲일 수도, 참된 나를 찾는 구도의 길일 수도 있다. 부처님은 시각장애를 가진 아나율존자를 제자로 두며 장애라는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은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으로 품으셨다.

불교와 사찰도 과거에 비해 편의시설이 많이 갖춰져 불자장애인들이 다가가기 좋은 환경이 됐다. 하지만 바퀴가 있는 세상, 걷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부처님께 가는 길은 아직도 험하고도 먼 길이 많다.

부처님께서 차별 없이 중생을 품었듯 좀 더 많은 사찰이 이동 약자를 위한 환경 변화에 적극 동참해 더 많은 중생이 부처님의 가피에 함께 하게 되기를 발원해 본다.

최종환 서울시립영등포 장애인복지관 관장
chungpajjang@hanmail.net

[1617호 / 2022년 1월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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