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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행 주현아(수진성, 37) - 상

기자명 법보

거듭된 사고에 안 좋은 생각
막막함 해소 위해 산 오르다
통도사서 맡은 향 내음에 눈물
절망 빠져나오고자 수행 결심

수진성, 37
수진성, 37

지난 몇 년간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내 삶은 모조리 무너졌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 마음을 많이 다친 아들의 치료과정, 임신과 동시에 4년이 넘는 경력단절까지. 여기에 힘들게 오픈한 화실마저 코로나19 여파로 월세조차 내기 힘들어져 결국 폐업신고했다. 평생에 걸쳐 매진한 그림을 쳐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졌고, 미술도구를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나마 마음을 다 잡고자 운동을 시작했고, 필라테스 강사가 되기 위해 마음을 다 잡으며 부지런히 공부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습을 하던 중 공황장애가 찾아와 중단해야 했다. 그 일로 뒤늦게 알게 된 30년이 넘은 언어장애와 말더듬이 장애…. 의사의 말이 마치 나에겐 사형선고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며 먹고 살 직장을 가질 수 있을까. 머릿속은 오직 두려움과 걱정뿐이었다. 계속 땅속으로 끝없이 꺼지는 것 같았고 죽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자살을 꿈꿨지만 잠들어 있는 아들을 보면 눈물이 쏟아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두 손 모아 울며 기도를 했지만 들어주지 않는 신을 원망했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준다는 신에게 언제까지 버티라는 거냐며 땅을 치며 통곡했다.

베란다에서 밤하늘의 찬 공기를 맡을 때면 모든 걸 내려놓고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잔혹한 마음 뒤엔 이 극단적인 생각으로 아들이 또 한 번의 상처를 받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랬다. 나에게는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홀로 유서를 쓰는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1박2일 여행의 마지막에는 내가 쓴 유서를 찢어버렸다. 내가 쓴 유서를 읽은 후 찢는 과정은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다시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단단히 다져주는 버팀목도 되었다. 그렇게 버티던 중 갑작스럽게 부모님마저 악재의 상황이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남편의 양육비 감액 소송까지 직면해야 했다. 기나긴 싸움에 다시 지쳐가기 시작했다.

홀로 대청소하던 어느날, 아들에게 남겨줄 유품이 될 만한 것을 모아 정리하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하루하루 아들을 바라보며 자식 때문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나도 모르게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끼치면서 무서웠다. 정신이 번뜩 들어 신경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재활병원에 가서 언어치료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력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갈수록 답답함만 쌓여갔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 막막함을 해소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잠재워야 했다. 등산을 시작했다. 땀범벅으로 이 산 저산을 오르고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쉬었다. 자연스레 여러 사찰도 지나가며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통도사가 눈에 띄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통도사 대웅전 앞을 지나가는 길이었다. 우연히 바람에 스친 향 내음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워하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심장이 뛰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꾹꾹 참아 눌렀다. 그 이후로 자꾸 향 내음이 그리웠다. 때마침 10여년의 우정지기 우진이에게 그동안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불자였던 친구의 답은 의외였다. 자신이 은사로 모시고 있는 스님 한 분을 소개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 바즈라 명상센터에서 진언 수행을 지도하는 청명 스님이었다. 

스님의 가르침은 일본 고야산의 진언종 불교를 근간으로 한다고 했다. 특히 스님은 이 수행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서 중국 그리고 홍콩까지 가서 공부했다고 친구가 말했다. 친구가 스님에 대해 풀어놓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스님의 가르침이 더 궁금해졌다. 

진심으로 스님을 만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기독교 모태신앙을 말하던 나. 한국불교도 어색한 내가 일본과 홍콩에서 전해져 왔다는 그 진언수행을 과연 배울 수 있을까. 아니, 무엇보다 절망에 갇힌 나에게 스님의 가르침이 삶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벼랑 끝에서 지푸라기라도 움켜쥐어야 했다. 스님을 뵙겠다는 용기를 냈다. 그렇게 청명 스님과 낯선 만남이 시작되었다.

[1618호 / 2022년 1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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