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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행 주현아(수진성, 37) - 하

기자명 법보

명상서 떠오른 생각들에 당혹
현재는 조금씩 알아차림 실천
꾸준한 수행 덕에 마음도 안정
타인 치유하는 사람 되길 발원

수진성, 37

청명 스님의 지도 하에 바즈라 명상센터에서 처음 명상을 시작했을 때 눈을 감음과 동시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샘 솟듯이 떠올랐다. 그러나 유서를 써가며 내일이면 죽을 하루살이처럼 살 때의 극단적인 생각들이 아니었다. ‘어제는 뭘 했더라’ ‘오늘은 이것을 했으니 이제 저것만 하면 되겠구나’ ‘아들 밥은 뭘 만들어 주는게 좋을까’ ‘몇 시에 재우고 집안일은 어떤 게 더 남았더라’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야 할까’ ‘준비물은 뭐지….’ 다양한 생각들이 끝도 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당혹스러웠다. 

스님은 내가 겪는 이 현상들이 당연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명상의 시작은 올라오는 생각을 내려놓음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일어난 감정과 사건의 분리였다. 그때그때 마음을 알아차리고 챙겨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어떠한 상황이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 감정을 알아차리고 다룬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저 스님의 말씀에 따라 상황이 올 때마다 서툴더라도 감정과 사건을 분리하는 작업을 무한 반복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었다. 

감정과 사건을 분리하는 수행을 지속하던 어느 날이었다. 불이 꺼진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베란다 너머로 저 멀리 청량한 하늘 아래 푸른 산이 보였다.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당황할 찰나도 없이 오열했다. 갑작스레 밀려온 우울감은 눈물이 멈춘 뒤에도 지속됐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산을 함께 올랐던 사람이 그리워서일까? 내 인생이 비참하다고 느꼈던 걸까? 아직도 난 죽고 싶다고 갈망하는 것일까? ‘예쁜 풍경에 비해 나는 참 초라하기 그지없구나’하며 우울감에 가슴이 답답했다. 

스님에게 지난 일을 이야기했다. 왜 눈물이 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스님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나 이제 행복하고 싶어 라는 의미일 겁니다”라고 답했다. 스님은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사건은 그 산에 올랐던 기억이기에 가장 행복감이 느껴졌던, 산에 오른 사건을 떠올렸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때처럼 행복감을 또 느끼고 싶다며 알아차려 달라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라는 스님의 말씀에 내 가슴이 내려앉았고 머리가 울렸다. 

스님의 말씀이 옳았다. 갑자기 평온해지며 감정과 사건의 분리가 이런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이후로도 여러 차례 기억들이 떠올랐지만 감정과 대면하는 어려움은 점점 줄어들었다. 물론 완벽하게 나아진 것은 아니었기에 한 번씩 공황장애가 오긴 했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나아졌고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명상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바즈라 명상센터에서 배우는 진언 수행과 수인법은 불교를 잘 알지 못했던 나도 쉽게 명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처음에는 진언이 뜻을 모르는 산스크리트어로 돼 있어서 어려웠지만 듣고 염송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점차 편안하고 익숙해졌다. 

지금도 꾸준히 명상을 실천하며 빠른 속도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신경정신과 약물을 끊게 되었고, 언어장애와 말더듬 장애를 극복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무런 불편함 없이 필라테스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스님이 ‘수진성’이라는 법명을 주셨다. 불교 기초교리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행을 통한 삼매와 견성에 대해 궁금한 점이 무척 많아졌다. 신심을 기본으로 배워가야 할 부분이 참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막막하기보다 설렌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불교를 공부하고 진언과 수인법을 실천하며 한 가지 간절한 원도 생겼다.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 온 나의 아픔을 잊지 않고, 누군가의 아픔을 달래주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발원이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어디에 있어도 늘 관세음보살님의 보살핌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 기뻐도 슬퍼도 두려워도 ‘나무관세음보살’하는 나를 마주할 때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스님을 처음 만나 눈물, 콧물 흘리며 울던 때가 생각난다. 이제는 몰아치던 폭풍우가 잠잠해지고 맑은 하늘만 보이는 것 같다. 아들과 함께 나란히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린다.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찾게 해준 소중한 인연에 감사의 절 올린다. 

[1619호 / 2022년 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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