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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편협함 깬 ‘문화유산’ 전환 환영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2.14 10:45
  • 호수 1620
  • 댓글 0

국가·경제 논리에 문화정책 뒷전
‘면’ 아닌 ‘점’ 단위 인식의 결과
물리·역사·자연환경도 확대 보전
주객 소통·호흡 속 새 문화 창출

문화재청이 ‘문화재(文化財)’ 용어의 변경과 분류체계 개선을 추진한다. ‘문화재(文化財)’를 대신할 새로운 용어를 선택·결정한 후 그 아래 문화·자연·무형유산을 둘 방침이라고 한다. 

문화재청의 이러한 정책에 대해 불교계와 학계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조계종 문화부장 성공 스님이 지적했듯 면(장소)이 아닌 점 단위로 인식하게 하는 ‘문화재’ 용어로 인해 불교계는 ‘관람료’ 등의 문제로 시민들과 갈등을 겪어야 했고, 그로 인해 많은 불이익을 당해왔다. 학계 역시 “문화재 분야의 세계적 추세와 문화재의 확장성을 고려할 때 문화재 관련 용어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펴왔다.

문화재청은 2004년 영문 공식 명칭 ‘Cultural Property Administration’에서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으로 바꿨다. ‘문화재청’이라는 국문 명칭은 그대로였지만 문화재를 뜻하는 ‘Cultural Property’에서 문화유산을 뜻하는 ‘Cultural Heritage’로의 전환은 문화재 개념에 대한 큰 변화를 예고한 것이어서 의미 깊었다. 

‘문화재’란 용어를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일본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사용했던 ‘Kulturgut(문화재)’를 그대로 사용했다. 학계에 따르면 ‘독일이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독일의 문화가 국가의 재산으로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문화재(Kulturgut)’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대중·유산보다는 국가·경제에 방점이 찍힌 개념이라 할 수 있다. 1962년 제정된 우리의 문화재보호법은 1950년 일본에서 제정된 동명 법률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문화 계승, 정신문화 영달’을 위한 문화재보호법은 나름 큰 성과들을 보였지만 국가 주도의 경제 논리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일례로 사직단 대문(社稷壇 大門·보물)은 도시계획에 따라 14미터 뒤로 옮겨졌고(1962), 독립문 역시 성산대로 건설로 원래 위치에서 70미터 옮겨졌다.(1979)

그뿐인가? 천년고찰의 도량도 갈라놓았다. 지리산의 ‘지방도로 861호선’이 대표적이다. 절 땅의 소유 주체인 천은사와는 상의 한마디 없이 군사작전도로(1968∼1972) 내더니, 그에 따른 보상은커녕 확장 포장하여 벽소령 관광도로(1985.5∼1987.5)로 써왔다.

이러한 일은 작금에도 발생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한 점의 문화재만 중요하다고 보고, 그 주변의 건축물과 자연환경은 언제든 허물고 훼손해도 된다는 편협·왜곡된 인식이 부른 참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화유산 개념이 적용되면 문화재 보호의 폭이 대폭 확대될 것이다. 단일 문화재는 물론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의 물리·역사·자연환경까지 포괄적으로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야산 해인사의 장경판전뿐만 아니라 전각과 요사채, 암자, 홍류동 계곡도 철저하게 보호해야 한다. 1990년대 물의를 일으켰던 ‘가야산 골프장 건립’ 사태 재발 가능성은 제로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다. 

박제된 문화적 산물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현시대 및 사회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만들어지는 ‘문화유산화 과정’, ‘문화유산 사회화 과정’을 우리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해인사에 상주하는 사부대중과 해인사를 찾는 불자·시민들이 형성해 가는 신행·참배·관광의 형식과 내용이 새로운 문화로 조성되고, 이것은 다시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할 문화유산이 된다. 이렇게 창출된 문화유산은 그 유산을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 역할로 작용한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조언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3~4월 중으로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고, 하반기 관련 법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사안에 대해 가장 깊은 고민을 해온 불교계의 고언을 문화재청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특히 ‘문화재’를 대신할 용어 확정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아울러 어떤 분류에서든 ‘국립공원’ 명명하듯 ‘국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건 ‘문화유산’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1620호 / 2022년 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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