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창호 (사)나누며하나되기 사무처장

  • 무진등
  • 입력 2022.02.14 13:59
  • 수정 2022.02.14 14:00
  • 호수 1620
  • 댓글 1

“나와 이웃의 행복 위한 자비 실천이 불교를 이끌어갑니다”  

30년 전 뉴스로 접한 성철 스님 열반 소식이 불교 관심으로 이어져
열정으로 백련암서 무작정 삼천배…환희심 솟아 불자로 살 것 서원
부처님 의지해 힘든 시간 이겨내고 취약계층 지원 등 다방면서 활약

진창호 사무처장은 “역경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며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성장이 없다는 ‘보왕삼매론’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하루하루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진창호 사무처장은 “역경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며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성장이 없다는 ‘보왕삼매론’을 마음 깊이 되새기며 하루하루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와 오미크론 확산으로 사회 취약계층의 고립감과 어려움이 커질수록 진창호(보인, 50) (사)나누며하나되기 사무처장의 하루는 더 분주해진다.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취약계층에 꼭 필요한 생필품과 마스크, 손소독제 등 코로나19 예방물품을 후원받고 도움이 시급한 전국의 복지사각지대로 배달하는 연결고리에 그가 서있기 때문이다.

항상 더 많이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앞서지만 “고맙습니다” “덕분에 다시 버틸 힘이 생겼습니다”라는 응원 한 마디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낸 하루를 보상받는 듯하다. 불제자로서 부처님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도 뿌듯했다.

그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건 30여년 전이다. 그 전까지는 불자였던 어머니를 따라 유명 사찰을 관광하긴 했지만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어린이 잡지기자로 일하던 무렵이다. TV를 보던 중 한 스님의 열반 소식이 주요 언론사 9시 뉴스 헤드라인으로 소개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스님을 향한 애도의 물결이 연일 이어졌다. 다른 언론들도 앞 다퉈 스님의 삶을 심층보도했다. 바로 1993년 11월3일 원적에 든 성철 스님이다.

궁금했다. 어떤 스님이었기에 모두에게 존경받고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올 수 있었는지. 그길로 성철 스님의 저서 ‘자기를 바로 봅시다’ ‘영원한 행복’ 등을 사서 읽었다. 승가의 수행공동체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히 수행에 매진한 올곧음에 존경심이 절로 솟았고, “일체 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라며 남을 돕는 것이 참다운 불공임도 배웠다.

불교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깊어졌고 1995년, 그의 발길은 성철 스님이 주석했던 합천 해인사 백련암으로 향했다. 반나절을 버스에서 보내고 걷고 또 걸어 새벽 2시가 돼 겨우 백련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아침예불에 맞춰 도량이 환해지고 법회에 동참하기 위한 이들이 하나둘 모였다. 절을 하는 방법도 몰랐지만 옆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절을 했다. 26세 청년의 열정과 패기로 시작한 절은 삼천배를 채우고 나서야 끝이 났다. 맨바닥에 절을 해서인지 양 무릎이 까져 피가 났지만 가슴 속에는 환희심이 가득 차올랐다.

이날을 계기로 불제자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해인사 종진 스님에게 수계를 받고 ‘보인’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매년 한두 번씩은 꼭 백련암을 찾아 삼천배 정진과 하계·동계수련대회에도 동참했다. 점차 불교는 삶의 일부가 됐다.

인생도 내 뜻대로만 흘러가는 것 같았다. 20대의 끝자락, 여의도 증권회사에 취직한 그는 소위 ‘진박사’ ‘진선생’이라 불릴 만큼 잘나갔다. 추천하는 주식마다 대박을 쳤고 그를 믿고 투자하겠다는 고객들도 많았다. ‘일찍이 평생 벌 돈은 다 벌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공한 삶 그 자체였다.

누구나 그렇지만 그의 삶에 항상 햇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만한 탓일까, ‘돈’에 대한 세속적인 탐욕 때문이었을까. 위기는 한순간 그의 인생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지금껏 쌓아온 그의 명성은 물론 그를 믿고 은퇴자금, 결혼 준비금을 투자했던 사람들에게도 상처만 남겼다. 갑작스런 시련에 방황이 시작됐다. 며칠간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정처 없이 걷기만 했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한 채 도망갈 수도 없었다. 다시 한 번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야 했다. 오후 3시, 이른 퇴근을 하고 매일 조계사를 찾았다. 늦은 시간까지 1080배 절을 하며 차근차근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스럽게도 조금씩이나마 주변인들의 손해는 회복돼 갔고, 마음의 짐도 덜어갔다.

“삶 자체가 어려움의 연속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역경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가는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지혜도 쌓이더라구요.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성장이 없다는 ‘보왕삼매론’의 구절을 지금도 마음 깊이 되새기며 하루하루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넉넉한 그늘 안에서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기에 그의 신심은 더욱 단단해져 갔다. 30대가 된 그가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일조하겠다는 발원을 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조계사청년회 입회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초발심을 밑거름으로 청년 불자로서의 활동에 매진했다. 도반들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나눌 때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행복하고 보람찼다. 문화부 총무, 기획차장, 기획실장 등 임원직을 맡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끌며 청년불자들과 공감대도 쌓았다.

2010년 7월 대한불교청년회에서 개최한 ‘차세대 글로벌리더 평화통일캠프’에서 통일골든벨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
2010년 7월 대한불교청년회에서 개최한 ‘차세대 글로벌리더 평화통일캠프’에서 통일골든벨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
조계사청년회 유마회가 2019년 11월 파주 1사단 군법당에서 봉사활동 후 찍은 기념사진.
조계사청년회 유마회가 2019년 11월 파주 1사단 군법당에서 봉사활동 후 찍은 기념사진.

‘청년불자가 살아야 한국불교가 산다’는 확신이 생길 즈음 우연치 않게 대한불교청년회에서 같이 일하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비교적 적은 월급에 잠시 고민도 했지만 5년간 몸담았던 증권회사를 그만둘 만큼 그의 신념은 확고했고 열정은 넘쳤다.

청년포교를 위해서는 당시 쇠락해가고 있던 청년회 재건이 시급했다. 전국에 있는 청년회 산하 12개 지구, 100여 지회 등을 일일이 방문해 회원들과 소통했으며 청년불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독려했다. 

특히 극심한 훼불과 종교편향 정책으로 불교계에 큰 아픔을 남긴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등 불교계를 외호하는 호법신장을 자처했다. 불교계·민간인 불법사찰 정치공작 중단운동, 민족문화수호운동, 서울시 학생 인권 조례 제정, 자살·폭력·왕따 문제 해결을 위한 생명생존 국민운동본부 창립 등 불교의 대사회적 활동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한국불교 중흥이라는 원력으로 이곳저곳을 누빈 그는 4년 전부터 천태종 산하 나누며하나되기와 새로운 인연을 맺고 보다 구체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NGO단체다 보니 남북문화 교류사업부터 북한 문화재 발굴, 저개발 불교국가 지원, 다문화·이주노동자·북한이탈주민 등 사회 곳곳의 소외된 이웃들 향한 자비나눔까지 활동의 폭도 넓어졌다.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환경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불교기후행동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관련 세미나 및 교육, 길거리·SNS 캠페인 등을 펼치며 시민 의식 전환을 통한 기후위기 극복에 노력 중이다.

“주요 업무를 혼자 담당하다 보니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지만 스님들의 무한한 신뢰·지지로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나누며하나되기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NGO단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의 정신으로 진력하겠습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남북관계와 코로나19 확산으로 활동에 제약이 생기긴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키로 했다. 취약계층을 위한 자비행이 바로 그것이다. 적은 수량임에도 지속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다보니 힘을 보태고 싶다는 기업들도 늘었다. 2020년 2월 코로나 발생 이후  지원한 시설만도 300여곳이 넘는다. 꾸준하고 활발한 활동 덕분에 지난해에는 대한불교진흥원 대원상과 보건복지부 전국 나눔대상 전국재해구호협회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불제자로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하루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모여 일 년이 되듯, 나와 타인이라는 각각의 물줄기가 행복이라는 하나의 강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다는 그는 오늘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아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되뇌인다.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기원하는 부처님을 닮아 가기 위한 그의 열정 속에 자비로운 부처님의 미소가 오버랩 된다.

김내영 기자 ny27@beopbo.com

[1620호 / 2022년 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