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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수행 김영옥(도혜·58) - 상

기자명 법보

유년시절부터 가까웠던 불교
경전 독송·새벽기도 등도 참여
고모 반대 무릅쓰고 선원 방문
108참회로 신행생활 시작 돼

도혜·58
도혜·58

경상북도 경산 남산면 시골마을. 오빠 셋에 막내딸로 태어난 나는 가족사항이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 뒤에 대답으로 옛 표현에 “양념딸 막내로 귀염 많이 받으며 컸겠구나”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귀하게 컸는가’ 싶을 정도로 아들 셋을 둔 우리 집의 분위기는 무서웠다. 유난히 엄격한 부모님과 거친 아들들의 반항 덕에 사건 사고가 끝없이 계속됐다. 한철에 한두번 와야 할 태풍 같은 아버지의 불호령은 반복되는 일상의 태풍이었기에 나는 해가 지면 ‘오늘은 또 무슨 사건사고가 일어날까?’라는 걱정 속에 있곤 했다. 귀여움 받는 건 두고 제발 평화롭게만 살고 싶은 것이 한 어린소녀의 큰소원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불안, 걱정과 두근거림의 감각과 감정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버지는 누나와 여동생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어렸을 적 여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내를 잃고 어린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겨우 유지하셨다. 하지만 돈을 벌며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으셨다. 결국 할아버지는 어린 아이를 절에 보내고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당시 7살이었던 아버지는 어린 동생을 절에 보내지 않으려고 갈대 숲으로 숨어 들어가 3일을 버티다, 무서움과 배고픔에 결국 동생 손을 잡고 나왔다고 한다. 어린 여동생은 어쩔 수 없이 경북 운문사 아래 작은 암자로 보내졌고. 그 어린 동생은 밤이면 이불에 실수를 하지 않으려 저녁은 일부러 굶고 속을 비운 채 잠을 잤다고 한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는 김씨집의 공통된 유전자면 충분히 그리 했을 듯한, 이 슬프고도 슬픈 얘기들을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내가 부처님을 어릴적 가까이서 빨리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암자로 보내진 이후 평생을 스님의 길을 걸어가신 고모 덕분이었다. 난 주말이나 방학이면 어머니의 심부름을 이유로 거칠고 시끄러운 집을 벗어나 고모가 있는 절로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향하곤 했다. 그곳에 가면 나는 고모가 돌보고 있는 또래 아이들과 함께 법당을 닦고, 칠성각 뒤에 있는 풀도 뽑았다. 그리고 ‘반야심경’을 외우는 놀이와 함께 인자하신 노스님의 방에서 맛난 과자도 얻어먹으며 좋은 말씀들을 들었고, 그것이 나의 어린시절 재미난 놀이였다. 새벽기도에 참석한 날은 부모님보다 더 무서운 고모가 칭찬을 해주니 이를 위해 덜 깬 잠에 눈을 비비며 부처님께 기도했다. “우리집에 평화를 주시고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귀여운 어린시절. 안타깝지만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공부는 못해도 결석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부모님의 말씀. 그리고 나쁜 짓은 물론이고 절대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며 하나를 얻어 먹으면 둘을 갚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 돌아보면 이러한 어린시절의 습이 몸에 깊이 젖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고, 큰 슬픔 속에서 엄마는 사춘기 자식들과 함께 앞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할 부담을 지게 됐다. 하지만 나는 남편 잃은 슬픔에 그리도 울어대는 엄마를 봐도 슬프기보다 난리치던 부부싸움, 오빠들이 매맞으며 그릇이 날라가고 장독 뚜껑이 날라가는 일이 줄어 들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 무서운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던 철없고 후회뿐인 어린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 후 이런저런 추억을 쌓으며 성년이 되어 지내던 어느날. 회사 근처 작은 화장품샵 주인과 연이 닿아 고모가 있는 큰 절이 아닌 마음을 공부하는 아주 자그마한 선원이란 곳을 만났다. 조계종 소속이시던 고모의 엄청난 반대가 시작됐고, 나를 절로 불러 불단에 꽃을 공양하게 했다. 그리고 천배를 시키며 “가문 없는 곳에서 마음공부가 가당치 않다”며 호령하셨다. 우리 가족 모두 고모의 호령에 벌벌 떨며 나를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감행했다. 인과의 인연과 스승의 인연은 다르다며 당돌하게 반문했다. 그곳에서 나의 신행생활이 시작됐고 마음공부를 가르치는 분을 만났다. 그 분은 첫 만남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에게 108참회를 해보라”고 하셨다.

[1622호 / 2022년 3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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