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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후 열반” 선언, 자비롭고 법다웠다

  • 불서
  • 입력 2022.03.22 14:38
  • 수정 2022.03.22 15:42
  • 호수 1625
  • 댓글 0

2011년 출간 ‘니르바나의 미소’ 재개정…삽화 더해져 풍성
열반 전 석 달 아난다와 나눈 이야기에 부처님 생애 함축

굿바이 붓다
정찬주 지음 / 학교법인동국대학교 출판문화원
240쪽 / 1만5000원

“아난다여, 여래는 이제 늙어 삶의 마지막에 이르렀느니라.”

그로부터 3개월 후 부처님은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병이 깊어졌을 때 아난다는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근심했다. 하지만 “목숨을 연장하여 이 세상에 더 머물겠노라 생각했다”는 말씀에 안도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비구들에게 깨달음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열반에 든다는 것은 여래의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임을 알고 울컥했다. 아난다에게 부처님의 부재는 황량한 대지에 홀로 선 것 같은 아득함이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마지막까지도 아난다가 부처님께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와 진리에 의지할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그 미묘한 간극이 불러오는 갈등과 고뇌, 무엇보다 아직 깨달음을 이루지 못했던 아난다의 눈으로 지켜본 부처님의 생애와 마지막 3개월의 발자취는 때론 부처님의 말씀 그 이상의 감화로 다가온다. 

책은 소설가 정찬주씨가 2011년 ‘니르바나의 미소’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던 소설의 재개정판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딸인 정윤경씨의 삽화가 더해졌다. 

웨살리에서 처음 열반을 선언하신 이후 꾸쉬나가르의 살라나무 아래서 열반하기까지 석 달 동안 제자 아난다와 나눈 이야기들이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붓다를 가까이서 모신 아난다의 회상이 더해지며 부처님의 출·재가 제자들과 출가 이전 이야기까지, 거의 전 생애에 걸친 부처님의 발자취가 함축돼있다. 240여쪽의 비교적 짧은 분량에 이처럼 부처님의 80년 생애와 특히 마지막 3개월의 행적을 세세히 담아낸 것만으로도 작가의 단단한 필력을 증명한다. 거창한 수사와 난해한 표현 하나 없이 담백하고 절제된 문장은 발우 하나, 가사 한 벌뿐이던 부처님을 닮았다. 한눈팔지 않고 부처님의 걸음걸이를 따라가는 동안 아난다의 혼잣말은 어느새 독자의 가슴에서 공명한다. 

웨살리성 벨루와 마을에서 ‘낡은 수레’에 자신을 빗대었던 부처님께서는 꾸쉬나가르에 이르러 마침내 열반에 드셨다. 그 3개월, 아직 깨달음은 이루지 못한 아난다에게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존경과 감동, 후회와 연민 그리고 슬픔과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무려 25년간 부처님을 시봉했음에도 여전히 아라한과를 완성하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중생에게 고스란히 전하는 막중한 소임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처님께서 열반의 마지막 모습을 보이신 것은 오로지 중생을 위해서였다. 

“아난다여, 신통력을 통달한 수행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느니라. 한 겁 이상 이 세상에 머무는 것도 가능하느니라. 여래도 얼마든지 오랫동안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느니라.”

그러나 부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혹자는 아난다가 이 말씀을 듣고도 부처님에게 세상에 더 머무르시길 간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힐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열반의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셨다.

“무너져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사라지지 말라고 막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다여, 여래는 이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났느니라. 생명을 연장하는 유수행도 버렸느니라. 그러니 이제와서 이 세상에 더 머문다는 것은 여래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니라.”

말씀은 결연했고, 이치는 뚜렷했다. 수명을 3개월 연장한 것이 비구들에게 깨달음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면 열반은 중생에게 선명하게 법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마지막까지 모든 선택과 행동은 오직 세상의 이익을 향하고 있었다. 모두가 자비였고 법다웠다. 아난다의 뒤늦은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까지도. 

하지만 부처님의 마지막 행적은 가슴을 저리게 한다. ‘발목은 뼈가 드러나 보일 만큼 말라 있었고, 살가죽은 늙은 낙타 발처럼 거칠었다.’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는 데 애를 먹었고, 종종 누울 자리와 물 한 모금이 간절할 만큼 기운이 쇠하기도 했다. 쭌다의 공양을 받은 후에는 탈진할 지경에 이르렀고 온몸에 퍼진 독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신의 병세가 위중함이 알려져 안거 중인 수행자들이 수행에 전념치 못할 것을 염려했고, 공양 올린 쭌다가 비난받지 않도록 감싸 안았다. 아난다가 어서 빨리 아라한과를 얻도록 이끌었으며, 비구들을 지도하느라 붓다를 병문안하지 못한 마하까샤빠나 수부띠를 오히려 칭찬했다. 
부처님의 이런 모습은 열반을 앞두고서 만이 아니었다.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아누룻다를 염려해 지와까에게 진찰을 당부하고, 결국 눈이 먼 아누룻다의 가사를 직접 바느질해주기도 했다. 머리가 나빠 쫓겨난 쭐라빤타까에게 신발 먼지 터는 것을 수행 삼도록 이끌었으며 교만한 찬나도 끝까지 보호했다. 

그렇게 평생 중생을 향한 끝없는 자비를 몸소 보이고 가르침을 펴신 부처님이었다. 열반에 드시기 직전까지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고, 수밧다의 출가를 허락했으며 “의혹이나 의문이 있으면 물으라”고 거듭거듭 제자들을 살피셨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현상은 소멸해 간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당부를 남기신 채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아난다 또한 부처님의 다비가 끝나고 가르침을 결집하기 위한 모임이 이뤄지기 전 7일 밤낮을 정진해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결집에 합류했다. 비로소 그의 마지막 소임을 마친 것이었을지 모른다. 

작가는 후기에서 “부처님은 아직 아라한이 되지 못한 비구들에게 정성을 더 쏟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에게도 연민의 정을 더 주고 있음이 보인다”며 “이 소설을 쓴 나 역시 아난다처럼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으로서 부처님의 이와 같은 자비로운 모습에 크게 감동했고, 무한한 존경심을 느꼈다”고 기록한다. 아직 깨닫지 못했던 아난다의 마음은 그렇게 살아있는 기록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중생에게 이어지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25호 / 2022년 3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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