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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과오 드러내는 용기

오래전 워싱턴DC에 갔을 때 유인물·기록물을 모은 박물관에 들렀던 적이 있다. 여러 박물관에서 느낄 수 없었던 몇 가지 강한 인상을 받았다. 거기에는 미국 역사의 생생한 모습이 있었다. 그들이 지금 누리는 많은 것들이 어느 하나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대륙에 정착하면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 그것들을 해결해 오면서 걸어온 미국의 생생한 자취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어렵게 이루어 온 것들을 수입해서 손쉽게 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수입해서 우리에게 맞게 정착시키는 동안 많은 세금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것들을 만들어냈던 괴로움에 비하겠는가?

또 놀란 것은 그들이 그러한 역사를 이룩해오면서 범했던 수많은 추악하고 부끄러운 자취들까지 전혀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노예해방의 험난한 과정, 성평등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 등 거기에는 내가 생각지 못했던 처참하고도 부끄러운 실상들이 있었다. 그것을 모두 드러내는 것을 본 느낌은 감동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저력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필자는 특별히 친미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많은 부문에서 미국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의 실체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미국도 수많은 것들을 감추겠지만, 그 박물관에서 미국이 가진 강점의 하나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역사를 호도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것은 더 나은 내일을 여는 출발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일본은 나은 역사를 열어갈 가능성이 낮은 나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역사 왜곡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거의 모든 고등학생이 내년부터 배울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일본군 ‘종군위안부’라는 표현과 그 강제성에 관한 서술을 없앤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들의 치부를 인정하고 역사 교육을 통해 바르게 인식하겠다는 ‘고노 담화’는 어디로 갔는가? 그들의 국가적인 행보에 표리부동, 조변석개라는 저급한 비난을 퍼부어야 할까 모르겠다. 그리고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보다는 호도와 은폐에 골몰하는 그들의 앞날에 대한 우려를 그만둘 수가 없다.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이기에 그들의 잘못된 행보가 우리에게 끼칠 나쁜 영향 또한 경계해야 마땅하다.

다른 나라에 피해를 준 역사를 호도하고 은폐하는 일본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가 저지른 부끄러운 역사가 떠오르게 된다. 바로 월남전 파병의 역사이다. 그때 월남으로 파병되었던 군인 장병의 희생과 노고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은 국가의 명으로 군인의 본분에 충실했던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보아 그 파병은 우리와 관계가 없는 전쟁에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던 것일 뿐이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은 20세기 후반에 발생한 가장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음이 세계사적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런 전쟁에 이익을 위해 파병했다는 것은 아무리 변명해도 부끄러움만을 더할 뿐이다. 그리고 그 전쟁의 현장에서, 거의 모든 전장에 있는 가혹한 일들이 일어났고, 그 피해를 본 수많은 월남인이 있음에랴.

그 파병으로 우리 경제가 살아났다는 식의 해석(2016년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그 예이다)은 일본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우리 때문에 당한 남의 아픔을 모르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안이한 인식,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눈가림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우리가 일본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참회하고, 또 올바르게 보상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내일을 열어가는 첫걸음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보면서, 우리가 남에게 아픔을 준 부끄러운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깨어있는 마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627호 / 2022년 4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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