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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고대불교-삼국통일과불교(29) (7) 동아시아 불교역사상의 원효불교 (12)

‘소’는 완성도 높아진 반면 ‘별기’에서 보여준 문제의식·열정은 약화 

이설들 모순없이 설명할 수 있는 사상체계로 ‘대승기신론’ 주목
연구노트인 ‘별기’와 달리 ‘소’는 도가적 요소 대신 대승을 부각
여러 이견에도 공‧유 대립과 극복, 원효불교 가장 중요한 현안

‘별기’는 ‘대승기신론’ 이해를 위한 연구노트로 작성된 초고이고, ‘소’는 ‘별기’를 토대로 이를 보완한 저술이다.
‘별기’는 ‘대승기신론’ 이해를 위한 연구노트로 작성된 초고이고, ‘소’는 ‘별기’를 토대로 이를 보완한 저술이다.

지난 호에서 원효의 종합적인 불교사상체계를 제시한 저술로 평가되는 ‘대승기신론별기’(이하 ‘별기’로 표기함)와 ‘대승기신론소’(이하 ‘소’로 표기함)의 유통과 전승과정을 추적한 것은 오늘날 전해지는 ‘별기’와 ‘소’의 관계에 대해 여러 이설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성립 순서와 내용을 비교 검토할 차례가 되었다. ‘별기’가 ‘대승기신론’ 이해를 위한 연구노트로 작성된 초고이고, ‘소’는 ‘별기’를 토대로 이를 보완한 저술이라는 사실은 일찍부터 지적되어 왔다. 최근에는 두 저술의 구문을 대조하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저술과정과 그에 따른 사상의 변화과정에 대한 체계적 이해는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종래의 연구가 원효불교의 핵심적 주제어로서의 ‘화쟁(和諍)’과 ‘일심(一心)’이 의미하는 일반적 특징의 해설, 원효의 전기 자료의 검토, 저술 각각의 내용 분석 등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술편년을 통해 원효 불교사상의 변화과정을 추적하는 작업, 그러한 변화과정을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불교 전체로 한 이해, 나아가 인도-중국-한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불교사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는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 못한 실정이다.

원효의 저술 연대는 기 출가수행과 초기저술, 기 신역경전의 전래와 ‘대승기신론별기’, 기 사상체계의 수립과 ‘대승기신론소’, 기 교판체계의 수립과 ‘화엄경소’ 등 4시기로 구분될 수 있는 바, 기의 ‘소’는 기의 ‘별기’를 수정 보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상적 변화를 나타내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해주 스님은 원효불교의 핵심 주제어 ‘일심’ 의미의 변화를 상정하여 당 유학을 시도할 때는 유식의 일심이었던 것이, 깨달은 이후에는 여래장 일심으로, 다시 이후에는 화엄의 성기 일심으로 원효의 일심에 대한 이해가 변화하였음을 지적한 바 있는데(원효의 화쟁과 화엄사상‧1998), 저술시기의 구분에서 ‘별기’의 저술 단계는 유식의 일심, ‘소’의 저술단계는 여래장의 일심, ‘화엄경소’ 저술 단계는 화엄의 성기 일심에 대응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원효의 저술편년과 불교사상의 변화과정을 이렇게 이해할 때 ‘별기’의 저술은 ‘대승기신론’ 연구의 시작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고, 원효의 일심사상 전개의 본격적인 출발점을 이룬 작업으로 평가될 수 있다.

‘별기’는 서문에 해당되는 대의문(大意文)에서 “간략하게 강령(綱領)을 들어 스스로를 위해서 기록하는 것일 뿐이고, 세상에 유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술회하였듯 본격적 연구를 위해 중요한 문제점들을 기록한 일종의 연구노트였고, 뒷날 체계적 주석서로서 ‘소’를 저술해 내용을 대폭 보완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별기’가 ‘소’로 인해 의미가 완전히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 물론 ‘별기’는 ‘대승기신론’의 ‘인연분(因緣分)’ ‘입의분(立義分)’ ‘해석분(解釋分)’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 등 5부분 가운데서 ‘입의분’ ‘해석분’ 2부분만을 주석한 불완전한 주석서인데 비하여 ‘소’는 전체를 주석한 것이며, 도가적 표현을 불교적 용어로 바꾸고 조사(助詞)를 보충하여 문장을 가다듬는 등 불교 저술로서의 완성도를 높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원효는 신역경전의 전래와 함께 당 불교계의 새로운 소식을 접하면서 ‘대승기신론’ 연구를 처음 시작할 당시에 관심이 있는 문제에 전력으로 몰두하였을 뿐, ‘대승기신론’ 전체에 걸쳐 상세하고 체계적인 주석서를 쓸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원효의 저술 가운데도 이 ‘별기’ 만큼 열정이 담긴 내용과 자신감을 나타내는 표현을 보여주는 저술은 발견되지 않는다. ‘별기’를 토대로 내용과 표현을 대폭 정비하여 완성도를 높인 ‘소’에서는 체제와 문장이 잘 정비된 만큼 열정과 생기는 감퇴된 것처럼 보인다.

원효가 추구하는 것은 진리의 세계를 모색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이설들을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사상체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상체계를 추구하기 시작할 무렵 큰 의미를 가진 경론으로 다가왔던 것이 ‘대승기신론’이었다. ‘대승기신론’은 유심(唯心)・유식설(唯識說), 공불공(空不空)의 사상, 불신론, 진속평등관, 지관과 발심수행의 단계, 아미타신앙 등 대승의 중요한 문제를 다수 받아들이고, 이를 여래장사상의 입장에서 체계화하고 있기 때문에 화쟁과 회통의 근거를 구하기 쉬울 것으로 판단하였던 것 같다. ‘별기’에서는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을 대의문(大意文), ‘소’에서는 종체문(宗體文)으로 표기하였는데, ‘대승기신론’ 사상에 대한 원효의 총체적 평가를 담고 있다. 특히 ‘대의(大意)’는 원효 저술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으로 해당 저술의 ‘전반적인 의미’, 또는 ‘중심이 되는 요지’라는 뜻이다. ‘대의’에서 원효는 자신의 독창적인 경론에 대한 입장을 집약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총론에 해당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원효 저술들의 ‘서’ 6편을 수록하고 있는 ‘동문선’에서 ‘서’라고 표현한 것은 대부분 본래의 저술에서는 ‘초술대의(初述大意)’, 혹은 ‘약술대의(略述大意)’라는 형식으로 표기된 것들이다. 대의는 일종의 서문처럼 보이지만 일반적인 서문과는 다르게 총론적인 내용이고, 시적 형식의 유려한 문체로 되어 있는데, 예외적으로 ‘별기’에서의 ‘대의’를 ‘소’에서는 ‘종체문’으로 표기하고 ‘노자’ 등의 도가적 표현을 불교적 용어로 바꾸었다. 또한 ‘별기’의 본래 명칭은 ‘사기(私記)’로서 원래는 공표할 의도가 없었는데, 뒤에 ‘대승기신론’ 전체에 걸친 체계적인 주석서로서 ‘소’를 다시 저술하면서 ‘소’와 구별된다는 의미에서 ‘별기’로 명칭을 바꾸고, 내용에도 수정을 가하여 발표하게 되었던 것 같다.

‘별기’의 대의문과 ‘소’의 종체문을 비교해 보면 ‘대승기신론’에 대한 평가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단이 삭제되거나 추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별기’의 대의문은 6개 문단으로 이루어졌는데, 가운데 둘째 문단과 넷째 문단이 ‘소’의 종체문에서는 삭제되고, 1개 문단이 새로 추가되어 5개 문단으로 구성되었다. ‘소’에서 삭제된 둘째 문단의 내용은 불도(佛道)의 도(道)에 관한 설명인데, 그 앞 첫째 문단에서 ‘별기’ 대의문 첫 머리 구절인 “연부불도지위도야(然夫佛道之爲道也)를 ‘소’ 종체문에서는 연부대승지위체야(然夫大乘之爲體也)로 바꾸었는데, ‘불도(佛道)’를 ‘대승(大乘)’, ‘도(道)’를 ‘체(體)’로 주제어를 바꾼 것은 도가적 흔적을 지움으로서 대승불교의 의의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와 관련된 것이고, 그 다음 문단의 ‘불도’에 관한 설명 내용은 의미를 잃게 됨으로서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소’에서 삭제된 넷째 문단의 내용은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주류인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의 사상적 특징을 각각 ‘무소불파(無所不破)’의 ‘파(破)’와 ‘무소불립(無所不立)’의 ‘입(立)’으로 정의하고, 양자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경론으로서 ‘대승기신론’을 제시한 것인데, 원효의 대승기신론관의 핵심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원효의 불교사상사에서의 위치를 확정시킨 내용으로 주목받아온 구절이다. 대승불교사상의 두 기둥인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을 대비시키고 ‘대승기신론’이 두 사상의 대립을 지양, 종합하는 탁월한 사상체계라고 하는 명쾌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소’ 종체문에서 삭제된 ‘별기’ 대의문 넷째 문단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유식학파의) 논은 세우지 않는 것이 없으며, (중관학파의) 논은 깨뜨리지 않는 것이 없다. ‘중관론(中觀論)’과 ‘십이문론(十二門論)’ 같은 것들은 모든 집착을 깨뜨리고 또한 깨뜨린 것을 또 깨뜨리되, 깨뜨리는 것(能破)과 깨뜨림을 당한 것(所破)을 다시 허락하지 않으니, 이것을 보내기만 하고 두루 미치지 않는 논이라고 말한다. 또 ‘유가론(瑜伽論)’과 ‘섭대승론(攝大乘論)’ 같은 것들은 깊고 얕은 이론들을 온통 다 세워서 법문을 판별하였으되, 스스로 세운 법을 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을 주기만 하고 빼앗지는 않는 논이라고 말한다. 이제 이 ‘대승기신론’은 지혜롭고 어질며, 깊기도 하고 넓기도 하며, 세우지 않음이 없으면서 스스로 버리고, 깨뜨리지 않는 바가 없으면서 도리어 인정하고 있다. 도리어 인정한다는 것은 저 보내버리는 것이 보냄이 다하여 두루 세움을 드러내며, 스스로 보내 버린다는 것은 이 허락하는 것이 허락함을 다하여 빼앗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것을 모든 논의 조종(祖宗)이며, 모든 쟁론을 평정시키는 주인이라고 말한다.”

학계는 이 내용이 대승기신론관의 핵심을 담은 것으로 주목하여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을 통합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탐색하였다. 그 결과 ‘대승기신론’의 일심(一心) 이문(二門)의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에 각각 중관과 유식을 배대시켜 그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즉 원효는 심진여문에 중관사상, 심생멸문에 유식사상을 배대시킴으로서 ‘대승기신론’을 일심이문의 구조에 의해 중관과 유식의 대립을 지양, 종합하는 사상체계로서 평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효가 ‘별기’ 대의문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해 ‘별기’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직접적인 논거가 제시된 바가 없으며, 뒷날 완성도를 더 높인 ‘소’의 종체문에서는 이 문단 자체가 완전히 삭제되었다는 점에서 일심 이문에 중관과 유식을 직접 배대시키는 주장은 무리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또한 ‘별기’ 대의문 넷째 문단 내용은 7세기 중반 이후 현장에 의한 신역불교로 인하여 중관학과 유식학 사이의 공(空)・유(有) 대립이 불교계의 현안문제로 부각되었던 상황에 대한 원효의 날카로운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며, ‘대승기신론’이 중관・유식의 대립을 극복하는 논서라는 원효의 기신론관은 다분히 선언적 의미를 가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원효의 화쟁사상에 관한 전문적인 저술인 ‘십문화쟁론’에서 당대 불교계의 쟁론들을 10문으로 분류 정리하면서 공유이집(空有異執)의 문제를 첫 번째로 들고 있는 것을 보아 역시 중관과 유식의 공・유 대립과 극복의 문제는 원효가 가장 중시하였던 현안문제였음에 틀림없다고 본다. 원효는 ‘소’의 종체문에서 ‘별기’ 대의문의 넷째 문단을 삭제하는 대신에 새로운 문단을 추가하였음이 주목된다. ‘별기’ 대의문에서는 “세우지 않는 바가 없고(無所不立) 깨뜨리지 않는 바가 없다(無所不破)”는 논리를 중관과 유식의 공・유 대립과 극복이라는 사상적 문제에 직접 적용하였던 반면에 ‘소’ 종체문에서는 “개합(開合)이 자재하고 입파(立破)가 무애하다”는 논리로 재구성하여 일심이문의 구조에 적용함으로서 차이점을 나타내주었다. 이로써 ‘소’는 ‘별기’에 비하여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의 사상체계를 충실하게 이해하는 방향으로 저술의 완성도가 높아졌던 반면에 ‘별기’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불교계 현실에 대한 강렬한 문제의식과 열정은 약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628호 / 2022년 4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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