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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수행이론의 총망라(5)-믿음 관련 각론③

부파불교 통찰하며 대승 이론 전개

설일체유부와 경량부의 이론
대승으로 살짝 비틀어서 확장
1~9번은 중생영역 질문이지만
10번은 부처님 영역 관한 질문3

청량 국사는 ‘보살문명품 제10’ 전체를 ‘명정해리관(明正解理觀)’이라고 과목 이름을 붙였다. 번역하면 ‘바른 지식을 위한 참된 관찰 밝히기’ 정도가 될 것이다. 해(解)자와 관(觀)자를 놓다니, 볼수록 청량 스님은 천재이시다.

‘화엄경’ 본문을 보면, 이 대목을 연출한 구성작가는 문수보살을 비롯한 10명의 ‘가공인물’을 등장시킨다. 대화형식이어서 아비달마 논사들의 문장보다 좀 쉬우리란 생각은 말아야 한다. 다루는 주제가 난해하다. 오죽하면 각현(覺賢, Buddhabhadra) 스님이 60권으로 번역할 땐 ‘명난품(明難品)’이라 했을까? 

이품에서 ‘화엄경’ 구성작가는 당시 부파불교 이론을 통찰하면서, 그런 토대 위에 대승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설일체유부의’ 범주론, 수행론, 지식론 등을 타고 넘기도 하며, ‘경량부’의 이숙식(異熟識) 이론을 대승 철학으로 살짝 비틀어 확장하는 등 절묘하다. ‘10심심(十甚深)’이라고 이름 붙인 ‘탐현기’의 저자, 현수 스님에 공감이 간다. 지면이 허락하는 대로 문답 정도만 줄여 소개해 본다. 

첫째는 연기(緣起)이다. 평등한 ‘한 마음[一心]’ 위에 모든 존재는 인연 따라 연기하는데, 어찌하여 누구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짐승으로 태어나는가? 육신이 온전하기도 하고 장애도 있는가? 목숨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가? 인물 나기도 하고 못나기도 한가? 사는 게 고생스럽기도 하고 편하기도 한가? 10게송으로 답하는데, 지면 관계상 제7게송만 소개한다. 

“법의 성품 본래 나지 않지만/ 나타내 보이므로 나는 것이니/ 거기에는 나타내는 자체도 없고/ 나타낸 물건들도 없는 바니라.” 제1구는 법성(法性)의 불변을, 제2구는 법성이 인연 따라 연기함을, 제3구와 제4구는 모든 현상이 인연을 따라 연기하더라도 법성 속에서 그러는 것임을, 각각 나타낸다.

둘째는 교화(敎化)이다. 인연 따라 연기한 수많은 중생을 부처님은 어떤 방법으로 교화하시냐는 질문이다. 10게송으로 답하는데, 제6게송만 소개하면 이렇다. “지혜 있는 이는 온갖 법들이/ 무상한 것인 줄을 관찰하리니/ 모든 법이 공하고 ‘나’가 없어서/ 영원히 온갖 모양 떠났느니라.” 즉, 무상(無常), 공(空), 무아(無我), 무상(無相), 이렇게 네 가지 ‘관찰(觀, Vipaśyanā)’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쳐 교화한다는 것이다. 더 줄여 질문의 졸가리만 소개해야겠다.

셋째는 이상과 같이 공, 무상, 무아라면 선악이니 고락이니 하는 차별이 없어야 하는데, 선이니 악이니 하는 업의 과보[業果]는 뭐냐고 묻고 대답한다. 넷째는 여래의 깨달음은 오직 하나의 진리[一法]인데, 어찌하여 경전마다 말씀이 다르냐고 묻고 대답한다. 다섯째는 중생의 복전(福田)은 다 같은데, 왜 사람마다 수확하는 게 다르냐고 묻고 대답한다. 

여섯째는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敎]’은 다 같은데, 그것을 실천하는 중생들의 이익은 왜 다르냐고 묻고 대답한다. 일곱째는 위에서 말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중생들이 실천하는데도 그들은 왜 각종 번뇌를 일으키냐고 묻고 대답한다. 

여덟째는 ‘바른 가르침 중’에서 ‘으뜸가는’ 즉 지혜바라밀 하나만 가르치시지, 왜 이런저런 ‘보조되는’ 다양한 수행법을 말씀하셔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시냐고 묻고 대답한다. 아홉째는 모든 부처님은 ‘누구나 다 같이 부처 되는 수단[一佛乘]’으로 중생을 열반으로 실어 나르는데, 왜 수많은 정토와 예토가 있고, 사람에 선인과 악인이 있고, 승(乘)에서 2승과 3승 등이 있고, 계・정・혜 3학이 왜 나뉘고, 수명에 왜 장단이 있고, 광명에 색깔과 명암과 원근이 다르고, 국토마다 사는 사람이 다르고, 청중의 숫자와 수준이 다르고, 교화의 방식이 다르고, 불교 번영에 흥망이 있는가? 조목조목 열 가지를 묻고 대답한다.

이상은 ‘중생의 영역’에 관한 질문이지만, 열째는 ‘부처의 영역[佛境]’에 관한 질문이다. 원인[因], 제도[度], 들어감[入], 지혜[慧], 진리[法], 말씀[說], 앎[知], 체험[證], 드러남[現], 넓음[廣], 이렇게 열 측면에서 따져 묻고 대답한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28호 / 2022년 4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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