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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전 주지 정수 스님 

극락이든 지옥이든 모두 자신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

지금 지옥의 고통에 사는 건 자신의 업이 만든 결과일 뿐
안락은 비움서 생겨…비우지 않으면 원하는 것도 못 얻어
살아가면서 돌이켜 비춰보고 살펴볼 때 비로소 길이 보여

봉선사 전 주지 정수 스님은 “옛 스님들이 ‘안락을 얻는 것은 비우는 데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비우지 않으면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봉선사 전 주지 정수 스님은 “옛 스님들이 ‘안락을 얻는 것은 비우는 데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비우지 않으면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늘 의정부 성불사 대웅전 낙성식에 동참을 하게 돼서 저 개인적으로도 매우 기쁩니다. 오늘 이곳에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몇 년 전 성불사에 왔을 때는 쇠락한 사찰에 불과했는데 이렇게 달라져 있을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여법한 도량이 만들어진 것을 함께 기뻐하기 위해 종단을 대표하는 많은 스님들과 의정부 시정을 맡고 있는 시장님, 그리고 많은 불자님들이 오셔서 감사의 말씀부터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창궐해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고, 일상이 단절돼 서로 만나는 것도 제한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불사가 진행됐다는 것은 참으로 희유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도량을 만들겠다는 주지스님을 비롯한 신도님들의 원력과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지스님께서 오늘 법문을 해달라고 해서, 무슨 말씀을 드릴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과연 여기에 도인이 계셨다면 어떤 법문을 하셨을까’를 생각하다가 근세의 도인이셨던 경봉 큰스님의 법문을 간단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물물봉시각득향(物物逢時各得香)
화풍도처진춘양(和風到處盡春陽)
인생고락종심기(人生苦樂從心起)
정안조래만사강(正眼照來萬事康)
(※경봉 스님은 마지막 구에서 ‘활안조래만사강(活眼照來萬事康)’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수 스님은 이날 법문에서 ‘정안조래만사강’으로 재해석했음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당대의 도인이셨던 경봉 큰스님이 통도사 극락암에 계실 때였습니다. 어느 날 대중들이 와서 삼배를 올리면 큰스님께서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극락세계에 왔는고?”라고 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 극락암에 계셨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대중들은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낙처(落處)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대중들은 “스님 덕분에 잘 왔습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 스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고, 그냥 미소만 짓고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대중들이 “이제 저희는 돌아가겠습니다”고 인사를 다시 올리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밑으로 내려가면 고통이 많으니까 조심해서 내려가게.” 그게 스님의 법문이셨습니다. 

“극락세계에는 길이 없는데 어찌 왔는가?” “저 세간으로 내려가면 고통이 많을 터이니 조심해서 내려가게.” 그러면서 말씀하신 게송이 ‘물물봉시각등향(物物逢時各得香)’입니다. 삼라만상 두두물물에 봄이 찾아오니까 모두 다 각각 향기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봄기운이 분홍 꽃을 피게 하고 붉은 꽃도 피게 하고 노란 꽃도 피게 합니다. 여기 성불사 도량 내에는 우담바라가 그냥 활짝 핀 것 같습니다.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때를 만나 다 향기를 얻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이 도량에 와서 참으로 내가 얻어가야 할 향기가 무엇인가를 잘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화풍도처진춘양(和風到處盡春陽)’이라,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니까 우주 공간에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찼구나. 

여러분 잘 보세요. 이 도량만 바라보면 고통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순간에 무슨 코로나가 있고, 무슨 걱정 근심이 있겠습니까? 이 도량 그대로가 극락세계입니다. 따뜻한 봄바람이 다 돌아오니까 그냥 온 세상이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고락종심기(人生苦樂從心起)’라, 사람들은 왜 슬퍼하고 괴로워하는가? 어떤 사람은 극락세계에 머무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왜 지옥고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모두가 마음을 좇아 일어나는 자기가 지은 업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게송에 ‘정안조래만사강(正眼照來萬事康)’이라, 올바른 눈을 가지고 분명하게 보면, 다시 말해 정안(正眼)으로 완벽하게 비춰보면 원래 이 세계는 고통이 없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역대 많은 스님들은 “우리 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기쁨을 얻는 것은 비워내는 것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젊은 사람이 저에게 “스님은 어떻게 정진을 하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얘기해 줄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열심히 배워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배우는 것만이 지금 놓인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우기도 전에 무엇인가를 자꾸 하려고 들기 때문에 수행의 깊이가 깊어지지 않고 욕심만 쌓이게 됩니다. 

이제 다시 나이가 60세가 넘은 연세 지긋한 어떤 분이 오셔서 저에게 “스님, 정진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땐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려 하기보다는 이 순간부터 내려놓으세요’라고 말이지요. 옛스님들이 “안락을 얻는 것은 비우는 데 있다”고 하셨던 것처럼 비우지 않으면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 인연설에 의하면 ‘환호환 탄환사(幻虎還 呑幻師)’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환사는 인형을 만드는 기술자입니다. ‘환호’는 조각을 잘하는 그 기술자가 만들어 낸 허상의 호랑이입니다. 환사가 환호를 멋있게 만들어 놨는데, 어느 날 그렇게 만들어놓은 호랑이가 환사를 삼켜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모두 환사(幻師)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으로 모든 것을 지어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멋대로 대상들을 지어내고, 그 대상들의 성격을 부여합니다. 바로 환호(幻虎)들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자기가 만들어낸 것들에 의해 스스로 잡아먹힌다는 것입니다. 

지옥과 극락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극락은 자기가 만들어놓은 것이고, 지옥도 자기가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환호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지옥도, 극락도 모두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우리는 한평생 살면서 기술이 대단합니다. 무엇인가를 자꾸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만들어놓고 보니까 나중에 가서는 만들어낸 이놈이 결국에는 나를 삼켜버립니다. 그래서 지옥을 만들어놓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고, 축생을 만들어놓은 사람은 축생으로 갑니다. 도를 잘 닦은 사람은 나중에 도인이 되고, 부처가 됩니다.
 
불교의 인과관은 무아가 윤회를 합니다. 본래 내가 없는데 자기가 만들어놓은 환호가 나를 삼켜버림으로써 육도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 선지식들이 ‘정안조래만사강(正眼照來萬事康)’이라, ‘스스로 철저히 한번 반조해보라, 정안으로 비춰보면 본래 슬픔은 없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가장 귀중한 존재인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옛스님들이 누군가가 ‘선이 무엇이냐’를 물었을 때 오직 ‘자기를 살펴보라’고 하셨던 이유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스스로 ‘반조(返照)’해야 합니다. 자기를 철저히 돌이켜서 비춰보고, 자기를 증명해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철저히 간파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불문타인(不問他人)’이라,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습니다. 자기의 길은 오직 자기만이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주기 위해 주지스님이 성심성의를 다해 기도하고 정진하면서, 또 발원하고 참회하면서 이렇게 성불사 중창불사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지스님의 그 원력이 이어져 이 도량이 고통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바른길로 인도해서 절 이름 그대로 성불의 길로 이끌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부처님 도량이 새롭게 조성된 오늘처럼 좋은 날, 스님들과 신도들이 많이 오셔서 기쁘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수행도량을 만들어주신 주지스님과 신도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이 법문은 봉선사 전 주지 정수 스님이 4월10일 의정부 성불사(주지 도심 스님)에서 열린 ‘대웅전 부처님 점안 및 낙성’법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1629호 / 2022년 4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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