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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 배워 세상에서 실천할 때 너와 나 모두 행복”

  • 인터뷰
  • 입력 2022.04.25 13:29
  • 호수 1630
  • 댓글 0

자비·전법도량 인천 호불사 경원 스님

불교학생회 통해 불법 접한 뒤
실천하는 삶 서원하며 출가 발심
1974년 붕해 스님 은사로 출가

호불사 주지 취임 후 도량 일신
인재불사 원력으로 가연회 조직
경전공부 공덕 보시·봉사로 회향

종도들 추대로 9·10대 총무원장
포살 등 추진해 종단 역량 강화
창종조 일붕 스님 선양에도 매진

총무원장 퇴임 후 지역포교 집중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화합하며
집집마다 연꽃 피워내도록 정진

경원 스님은 “사찰은 스스로 지혜와 복덕을 찾는 힘을 기르고 나와 이웃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역량을 갈고 닦는 곳”이라며 “스스로 복을 짓는 신행으로 너와 나, 모두가 행복한 삶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원 스님은 “사찰은 스스로 지혜와 복덕을 찾는 힘을 기르고 나와 이웃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역량을 갈고 닦는 곳”이라며 “스스로 복을 짓는 신행으로 너와 나, 모두가 행복한 삶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 연수구 옥련동 청량산 중턱에 위치한 ‘호불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절히 호념하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호불사(護佛寺). 이 절 이름에는 부처님의 진리와 자비광명이 만 중생의 가슴마다 새겨져 영겁에 길이 남길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 2010년 입적한 (재)대한불교일붕선교종 종정 붕해 스님이 인연을 맺기 전까지 이곳은 ‘청룡사’라는 이름의 작은 암자였다. 붕해 스님은 1974년 운수행각 중 이곳과 인연이 닿았고, 전법을 통한 중생제도를 서원하며 청룡사에 바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원한 내용 그대로 사찰명을 ‘호불사’로 바꿨다.

옥(玉)빛 연꽃(蓮) 만발한 고장 옥련동의 청량산(淸凉山)은 송도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풍광과 더불어 바위틈 사이로 솟아나는 청량한 석간수(石間水)를 받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금은 잘 정비된 산책로와 등산로가 더해져 지역 주민뿐 아니라 인천시민들의 나들이 장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호불사는 그 중심에서 시민들의 편안한 쉼터이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역사회에 회향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호불사를 ‘인심 좋고, 풍경 좋은 절’이라고 부른다. 이는 경원 스님이 1996년 호불사 주지를 맡아 도량을 일신하며 가져온 변화의 바람이기도 하다.

경원 스님은 1974년 호불사에서 붕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세속의 나이로는 22살이었지만 어린 시절 잦은 이사로 초등학교를 2년 늦게 입학하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후였다. 스님이 출가를 결심한 것은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삶을 꿈꿨기 때문이다. 중·고등학생 때 불교학생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며 사회에 회향하는 출가수행자의 길을 발원하게 됐다.

“당시 시작된 새마을운동으로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호불사 주변 사람들의 형편은 더 그러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서원하게 됐고, 스님이 된다면 그 꿈을 더 빨리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사스님께 제 뜻을 말씀드렸더니 고등학교를 마치면 삭발염의를 허락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행자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고단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해야 할 일들과 익혀야 할 습의, 공부해야 할 것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계속되는 일과에 지칠 법도 하건만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치고 힘든 시간이 더해갈수록 바라던 삶에 한 걸음 더 나아간다고 생각하니 매 순간이 뜻깊고 뿌듯했다. 

“그 무렵이었습니다. 입영통지서가 날아왔어요. 남들보다 졸업이 2년 늦다 보니 곧바로 군대에 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출가자의 길을 잠시 접어야 하는 건 아쉬웠지만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니 따라야 했습니다. 이왕 해야 할 군대생활이기에 더 다양한 경험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치러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사병으로 근무하는 것보다 복무기간은 늘었지만, 대중을 이끌고 목표를 세워 함께 이뤄가는 책임감은 군생활을 통해 얻은 소중한 자산입니다.”

스님은 예편과 함께 다시 호불사로 돌아왔다. 늦은 만큼 주어진 일들과 해야 할 것들에 더욱 매진했다. 출가자로서의 기본은 은사스님께 배우고, 동방불교대학에 입학해 내전과 외전을 익혔다. 은사 붕해 스님은 (재)대한불교일붕선교종 제2·4세 종정을 역임한 불교계의 어른이다. 일붕선교종은 일붕 서경보 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교조로, 태고보우 스님을 종조로 1988년 창종했다. 불교에서 선(禪)은 마음을 닦는 것이고, 교(敎)는 부처님 가르침의 배움을 의미한다. 일붕선교종은 종조와 종명에서 드러나듯 선이나 교에 치우치지 않고 병행함으로써 위로는 깨달음을, 아래로는 중생제도를 목적으로 한다.

“은사스님의 배려로 일붕 큰스님을 1년간 시봉했습니다. 은사스님도 그렇지만 일붕 큰스님을 모시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손에서 경전을 놓지 않으셨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좌복 위에서 정진하셨습니다. 경전을 보실 때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글자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법문을 준비할 때도 부처님의 말씀뿐 아니라 참고할 만한 외전을 챙겨 살피셨습니다. 큰스님의 모습은 출가자로 살아가는 데 지남이 되었습니다.”

1996년 호불사 주지에 임명된 경원 스님이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가람정비였다. 은사스님은 공부 외에 도량 불사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1974년 호불사라는 이름으로 산문을 열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부를 하든, 수행을 하든, 기도를 하든 불자들이 모여 함께하기 위해서는 가람정비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대웅전을 시작으로 요사와 산신각, 명부전을 다시 짓고 극락전을 새로 건립해 여법한 모습으로 도량을 일신했다. 이와 함께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천 개의 눈으로 살피고, 천 개의 손으로 구제한다는 해수관음보살님을 봉안해 관음기도도량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했다.

“은사스님은 도량불사보다는 인재불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일찍이 육법공양단을 만들어 불자들의 육바라밀 실천을 이끌었고, 인드라합창단을 창립해 음성공양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진불 양성을 위해 어린이집을 위탁운영하는 등 지역 내 불교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은사스님이 닦아놓은 기반이 있었기에 불사를 추진할 수 있었고, 호불사가 여법한 부처님 도량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경원 스님은 주지 취임 당시 가람정비와 함께 그동안 은사스님이 펼쳐온 ‘배운다, 실천한다, 인연공덕 짓는다’는 가르침에 원력 하나를 더했다. 으레 항구도시가 그렇듯 인천의 불교도 기복이 중심이었다. 더욱이 청량산은 토속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했고, 호불사의 전신인 청룡사는 ‘업혀 들어왔다 걸어서 나간다’는 소문이 자자할 만큼 기도효험으로 유명했다. 오랜 세월 깊이 뿌리내린 습성은 은사스님의 노력에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스님은 불자들이 기복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정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개인과 주변의 삶이 달라지고 불교가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바른 법을 배우고, 배운 법을 실천하는 불자모임 ‘가연회(家蓮會)’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가연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신심 돈독한 불자를 양성해 집집마다 정법의 연꽃을 피우겠다는 호불사 인재불사 원력의 또 다른 실천행이었다.

경원 스님이 신도교육을 위해 직접 편찬한 경전 교재.
경원 스님이 신도교육을 위해 직접 편찬한 경전 교재.

“불자로서의 갖춰야 할 기본교리는 물론 ‘금강경’ ‘법화경’ ‘지장경’ 등을 모두 한글로 번역해 한 달에 두 차례 공부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공부모임 이후에는 반드시 회향하도록 지도했습니다. 회향은 보시든, 운력이든, 봉사활동이든 자신의 형편과 시간에 따라 선택하도록 했어요. 이렇게 모연된 자비원력들은 경로잔치, 장학금, 자비의 쌀, 자원봉사로 회향되고 있습니다.”

실제 호불사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자비나눔 활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부처님오신날 즈음해 구청의 추천을 받아 어려운 환경에도 학업에 매진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또 연말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자비의 쌀을 보시하고, 호불사 신도들로 하여금 어르신 말벗 되어드리기, 장애인 이동지원, 목욕봉사 등에 동참하도록 이끌고 있다. 호불사 자비나눔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 불자들이 십시일반 회향하도록 이끈 경원 스님의 원력에서 비롯된 셈이다. 

“불교의 본질은 기복이 아닌 부처님 말씀을 등불로 삼아 법을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에게 부처가 될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부처임을 깨달을 때 내 안의 번뇌와 고통이 사라지고 서로가 더불어 아끼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고 행복해지는 데 부처님의 가르침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자신이 부처임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내가 진정 부처임을 알게 된다면 이웃을, 사회를, 세계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것입니다.”

가람정비와 인재불사, 지역포교에 매진하던 2012년 경원 스님은 일붕선교종 제9대 총무원장에 취임했다. 일붕선교종 내부 갈등이 몇 년째 이어지자 종단의 스님들은 원만한 성격과 추진력의 경원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추대했다. 경원 스님은 제10대 총무원장까지 8년간 공정하고 투명한 종단운영으로 종단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와 화합을 이끌었다. 특히 재임기간 중 스님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매년 봄가을 포살법회를 개최했으며, 불교계 안팎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고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연수교육을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종단 구성원들의 흩어진 마음을 다시 하나로 모으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창종조 일붕 스님 선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20년 총무원장 소임을 다한 스님은 다시 호불사로 돌아와 인재불사와 지역포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신도들을 바른 법으로 이끌기 위해 경전공부와 독송, 외부 인사 초청법회를 재개하고, 대학생·청소년 장학금 지원 사업,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자비의 쌀 행사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동지 때는 연안부두 어시장과 경로당을 방문해 신도들과 함께 준비한 팥죽도 나눴다. 

최근 스님은 다문화가족 포교에 주목하고 있다. 옥련동 일대에 대규모 중고차 수출단지가 들어서며 베트남, 중국, 태국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의 상호를 붙인 가게가 여럿 생겨났다. 옥련동 주변에만 다문화가정이 1만여 세대에 이를 만큼 이주민들이 크게 늘었다. 스님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초청행사를 열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청소년들이 꿈을 키워가며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2016년 신도들과 함께한 대만불교 성지순례에서 불광산사의 인재불사, 자제공덕회의 봉사활동을 직접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호불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확신했습니다. 공부하는 불자, 실천하는 불자, 인연공덕 짓는 불자를 더 많이 양성해 사회에 회향하고자 합니다. 고려시대 선사인 보조 스님은 ‘수심결’에서 ‘요즘 사람들은 어리석어 자기 마음이 참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성품이 참 법임을 깨닫지 못하며, 법을 구하는 것을 먼 성인에게 미루고, 부처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살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찰은 복 빌고 복 받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지혜와 복덕을 찾는 힘을 기르고 나와 이웃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역량을 갈고 닦는 곳입니다. 불보살님에게 매달리기에 앞서 스스로 복을 짓는 신행으로 너와 나, 모두가 행복한 삶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비와 전법의 그 길을 호불사 사부대중은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연꽃과 연꽃이 더해져 아름다운 연지를 이루듯 청량산 호불사. 그곳에서 피워낸 정법의 연꽃들로 세상은 더 맑고 향기로워지고 있다. 

경원 스님은 주지 취임 후 가람정비와 함께 인재불사, 자비나눔에 매진하고 있다. 총무원장 재임 때는 투명한 종단운영과 스님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포살·연수교육 등을 실시해 종단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와 화합을 이끌었다.
경원 스님은 주지 취임 후 가람정비와 함께 인재불사, 자비나눔에 매진하고 있다. 총무원장 재임 때는 투명한 종단운영과 스님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포살·연수교육 등을 실시해 종단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와 화합을 이끌었다.

수도권·경기지사=허광무 지사장

[1630호 / 2022년 4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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