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 불교의 성(性)과 인간의 성(性)-상

극복대상 성과 생명연원 성 사이에서 중도 추구

성은 깨달음에 방해되는 불편한 본능임과 동시에 극복 대상
초기불교에는 여성을 남성 소유로 봤던 당시의 시대상 담겨
부처님은 재가자 일반의 ‘상대적 금욕’ 차원에서도 기준 제시

붓다는 아내들에게 남편에 대한 순종을 타일렀지만 이혼을 부도덕한 일로 비난하지도 않았다.[법보신문DB]
붓다는 아내들에게 남편에 대한 순종을 타일렀지만 이혼을 부도덕한 일로 비난하지도 않았다.[법보신문DB]

스님들의 삭발한 모습과 잿빛 승복의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엄격한 독신생활(celibacy)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성(sexuality)의 욕망을 억제하는 수행자의 삶을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불교 전통에서 성은 깨달음의 길에 방해가 되는 불편한 본능임과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성은 피할 수 없는 자연적 현상이자 반복되는 욕망이며 모든 생명의 연원이다. 우리가 ‘불교의 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는 불교도 성을 조심스럽지만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작용한다. 마침 이런 인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논문이 있어 간략하게 소개해 보기로 한다. 미얀마의 빤디따 스님(Ven. Pandita)이 쓴 “초기 불교 윤리에서 성적 비행의 문제: 새로운 접근(Sexual Misconduct in Early Buddhist Ethics: A New Approach)”(Journal of Buddhist Ethics, 2019)이란 논문이 그것이다.

‘성적 비행(kāmesu micchāra)’이란 글자 그대로 “애욕(의 추구)에 있어서 잘못된 행동”을 의미한다. 남성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것은 이성적 만남의 대상이 아닌 여성들과 성관계를 갖는 일이다. 가령 부모나 형제자매 또는 친척의 보호를 받는 미혼 여성, 자신들이 따르는 다르마의 보호를 받는 여성, 남편이 있는 여성, 그녀와 성관계를 하면 처벌을 받게 되는 여성,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가 있는 여성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외에도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 딸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 쪽 친인척 여성들과의 성적 접촉도 금기(taboo)였다. 후대의 주석자들은 같은 남성과의 성관계도 성적 비행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 성도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고대 문헌들에 나오는 성적 비행과 관련된 언급들은 여성을 보호자나 남편 등 해당 남성의 ‘소유물(property)’로 봤다는 점에서 오늘날과는 다른 독특한 관점을 발견한다. 쉽게 말해 남편이 있는 여성이 남편 이외의 외간 남성을 만난다면, 이 여성은 부정행위를 통해 남편의 재산을 손괴(損壞)한 죄를 범한 것이다.

기혼여성과 간통을 저지른 남성은 남의 재산을 허락도 없이 훔친 강도나 도둑으로 전락한다. 불륜 자체의 부도덕성을 지적하기에 앞서 주인인 남편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사용한 절취의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겠으나 당시 인도 사회의 전통이자 관습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남편이 있는 여성이 다른 여성과 공유한 레즈비언 섹스는 불사음계를 어긴 것으로 판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레즈비언 섹스가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가 직접적으로 결합하는, 전통적인 섹스의 범주에서 벗어난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짜(real) 섹스가 아니라 기껏해야 단순한 “신체적 친밀감(kāyas aṃsagga)”에 불과했다. 상대적으로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저자인 빤디따 스님은 ‘상윳다니까야’에 나오는 붓다의 말씀을 길게 인용한다. “가장들아, 품위 있는 제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의 아내들과 법에 어긋나는 섹스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즐거운 일이 아니며 동의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 내가 다른 남자의 아내들과 법에 어긋나는 섹스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에게도 즐거운 일이 아니며 동의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나에게 즐겁지 않고 동의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즐겁지 않고 동의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나에게 즐겁지 않고 동의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성찰한 사람은 스스로 성적 비행을 삼가며, 다른 사람에게도 성적 비행을 삼가라고 권유하고, 더 나아가 성적 비행을 삼가는 것을 칭찬한다. 이렇게 해서 그의 신체적 행위는 (身, 口, 意) 세 가지 측면에서 청정해진다.” 이처럼 붓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황금율(the golden rule)을 제시함으로써 성적 비행의 도덕성을 거듭 일깨워준다.

근대 이전의 인도에서는 아내의 성을 “남편에게 속하는 것(sāmikassa santakaṃ)”으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재산권 개념에 바탕을 둔 관습적인 해석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아내가 남편의 재산이라면 성적 비행은 불투도계를 범한 잘못일 텐데, 이는 오계 성립의 배경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부부가 심하게 다투고 난 다음 날 하루 동안 성관계를 유보한 아내는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잔 죄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셋째, 남편의 뜻을 거부하고 그와 이혼하는 것은 불륜보다 더 나쁜 선택이 된다. 왜냐하면 남편은 여전히 불륜을 저지른 아내에게서 ‘재산’을 되찾고 싶어 하지만, 이혼과 함께 그 재산은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붓다는 아내들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타일렀지만, 그는 결코 아내들이 남편에게 섹스를 거부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이혼을 부도덕한 일이라고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중도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현실과 이상 사이를 지혜롭게 조화시키려고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내의 부정행위는 남편의 사회적 평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자기의 소유물을 남에게 도둑맞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붓다는 남편에게 ‘신분상의 이익(a positional good)’을 부여했던 ‘일부다처제’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았다. 붓다의 이런 태도는 오해를 낳을 소지가 없지 않다. 그 외에도 초기 경전의 에피소드를 보면 남성이 자기 아내에게 머물지 않고 성매매 여성을 찾거나 다른 남성의 아내와 간통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불교가 수행자 중심의 ‘절대적 금욕’의 종교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재가자의 ‘상대적 금욕’의 종교여야 한다는, 현실적 요청도 깊이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불교의 성적 관념이 현대사회적 맥락에서도 여전히 유의미할 수 있음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계속 논의하고 있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30호 / 2022년 4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