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만 버리면 우린 다 부처”
“집착만 버리면 우린 다 부처”
  • 채한기
  • 승인 2004.03.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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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사 태백 선원장 고 우 스님

조계사가 주최한 ‘조계종 선원장 대법회’가 처음 열리는 2월 15일 1,500여명의 사부대중이 조계사 대웅전 앞 마당과 법당에 운집했다. 대법회 법석 첫번째로 오른 각화사 태백선원장 고우 스님〈사진〉은 ‘선의 본질과 의미’주제로 40여년 동안 수행하며 농축해온 선지를 유감없이 내보였다. 1시간 20여분동안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다.

선의 본질을 말로 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선가에는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의 요체인 ‘달’을 여기서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은 어려우니 손가락 입장에서 선의 본질을 객관화시켜 설명하겠습니다. 이 설명으로 선의 본질을 간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선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법문을 듣고 있지 않습니까? 이 자체가 그대로 선입니다. 열반경에서는 ‘유정무정개유불성’이라 했습니다. 원시경전에는 ‘모든 존재는 연기로서 존재한다, 연기를 보면 법을 보고. 법을 보면 여래를 본다’고 했습니다. 존재=연기이며 연기=법이고, 법=여래이니 여래=존재입니다. 쉽게 말해 여러분 자신이 선이며 여러분 자신이 그대로 부처입니다.


“닦는다-증득한다는 군더더기”

흔히 우리는 중생이니까 부처되기 위해 참선한다고 하는데 틀렸습니다. 그렇게 참선하면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이 몸뚱인 부처 아닌 줄 압니다. 부처와 똑같이 하고 있는데 다만 갖고 있는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느냐! 내가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다고 하면 부처와 똑같은 것입니다. 저(조계사 대웅전)분도 부처이고 우리도 부처이고 컵도, 마이크도, 법당도 다 부처입니다.

반야심경에서 오온개공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색은 우리 몸뚱이만이 아니라 형상지어진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몸뚱이를 전제로 하면 몸뚱이나 이 전신은 ‘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 나는 있다고 합니까. 이것은 부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오온이 개공해 나 자신도 공인 줄 알게 하는 것이 참선입니다. 우리는 간화선을 하지요. 간화선은 화두를 갖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화두 드는 것을 놓고 무슨 정신통일을 하기 위해 하는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또 의심하기 위해 화두 드는 줄 아는데 이 또한 틀린 것입니다.

선지식이 화두를 던진 순간 ‘억’하며 깨치라고 주는 것입니다. 순간 주관과 객관이 확 깨치는 것입니다. 아직 못 깨달은 나는 주관과 객관에 사로 잡혀 있는데 마치 초음파 같은 것이 와서 확 깨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대도 모르면 자연스럽게 ‘이게 뭔 소린가’하며 의심하는 것입니다. 한방에 깨지라고 선사들이 일러주는 것입니다. 이게 공부고 선입니다. 의심하라고 화두 일러주는 것 절대 아닙니다.

참선을 하면서 꼭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참선을 통해 무엇을 닦는다 증득한다 깨닫는다 이런 말들은 전부 군더더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무엇인가 얻을게 있다고 생각해 수행할 때는 내 안에 있던 모든 것을 잃고 있었다. 깨치고 보니 하나도 얻을게 없었다. 내 안에 모두 완성돼 있었다”

깨달을 것이 없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견성입니다. 따라서 본래성불임을 알고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시간절약하는 것입니다. 본래성불임을 알고 수행하는 것과 모르고 수행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화두 참구하면서 어떤 장애가 있다고 합시다. 본래성불임을 알고 ‘공’이란 것을 알면 나한테 오는 장애 파장을 완화할 수 있고 그 장애를 치우하는데도 쉽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증득할 게 있다고 생각해 수행하면 그 장애를 통해 전해오는 충격도 엄청나게 크고 그 장애를 치우는대도 상당히 힘듭니다. 서울 오기 전에 대전 갔다 충주 갔다 나중에는 어디로 가는줄도 모르게 됩니다.


‘깨칠게 없다’ 알아야 견성

원래성불임을 이해만 해도 금생에 확철대오는 못한다 하더라도 정사는 구별할 수 있습니다. 팔정도에 나오는 정견을 이해만 해도 우리 사회와 세계는 변합니다. 남북통일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증오와 갈등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수행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여러 있겠지만 달라이라마의 책이 다양하게 출판되고 틱낫한 스님의 한국 방문 등이 이런 풍토 조성에 일조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쪽 불교와 우리 불교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수행이 낮다는 것은 아닙니다. 티베트와 남방불교는 우리의 선불교와 비교해 볼 때 그들의 불교는 ‘손가락 불교’입니다. 우리 선은 ‘달’입니다. 이게 다른 점입니다.


“화내면 창피한 것”

틱낫한 스님의 저서 『화』를 잠깐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화를 삭이는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은 화를 삭이는 게 아니라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일체가 공인 줄 알고 내가 없다고 보면 화낼 일도 없습니다. 생로병사도 즐거울진대 어찌 화를 내겠습니까. 공을 알아서 중도를 이해하면 연민이 생겨납니다. 바로 이 연민으로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부터화를 내면 창피한줄 알아야 합니다.

불교는 ‘희생하는 종교’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히 자기를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연민할 줄 압니다. 연민의 마음이 생겨야 타인을 사랑합니다. 타인을 사랑하면 타인도 자기를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이혼율이 세계 3위라고요? 연민하면 이혼은 없어집니다. 저는 요즘 타인에게 괴롭힘을 주는 사람을 ‘부시맨’(전쟁을 일으킨 미국 부시 대통령을 말함)이라고 합니다. 연민이 생기면 이세상에 부시맨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통일도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깨치고 닦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부처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부처입니다. 여기서 공을 이해하고 집착만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정리=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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