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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웃 위한 기도로 하루를 열기에 날마다 좋은 날입니다

기자명 법보

자비명상 이사장상 - 정효숙

대불련 수련회로 불교와 인연…2011년부터 11년째 새벽기도 
성철 스님 ‘남을 위한 기도’ 가르침 접한 후 신행생활 돌아봐
각원사 경해 스님 인연 ‘회향하는 삶’ 발원…포교사로 봉사도

그림=정은주
그림=정은주

[2016년 1월24일, 눈이 내리는 날]
아침에 아빠랑 동생이랑
도서관 가는 길.
엄마는 매일 새벽기도를 가시는데
눈이 많이 내리면 걱정이 된다.
길이 미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추위 많이 타는 엄마가
새벽마다 기도를 가신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시는 걸까.
알 수는 없지만
나라도 그런 엄마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어드리고 싶다.
엄마의 모든 바람이 다 이뤄지길….

집안 정리를 하다 딸이 쓴 일기를 보았다. ‘새벽기도하러 나서는 엄마가 걱정된다’며 쓴 일기를 읽어보니 불자로 살아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가족의 만류와 걱정을 설득과 달램으로 반복하며 만 11년째 새벽 3시에서 6시까지 절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불교와의 인연은 대학교 3학년 때 자취집에서 같이 살던 언니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쌍계사 수련회를 4박5일 동안 다녀온 것으로 시작됐다. 처음 해본 1080배, ‘반야심경’ 독송, 참선과 발우공양 등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대학 졸업 후 친정어머니를 따라 조그만 사찰에 다녔어도 부처님 가르침을 가까이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업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초하루기도에만 간신히 참석하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늘 부처님 가르침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민 끝에 천안 각원사에서 운영하는 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입학의 인연은 쉽게 맺었지만, 어머니가 입원해 병원생활이 길어지면서 수업 참석이 어려워  결국 졸업장은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잘 되던 사업마저 힘들어졌다. 단기간 많은 일이 겹쳐서일까,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고자 부처님께 매달리는 기도를 하기 위해 사시기도에 참석했다. 매달리는 기도를 한다고 해도 일상생활을 병행하며 매일 사시에 절을 찾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각원사와 다시 인연이 닿아 불교대학에 재입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반들의 “각원사의 새벽이 그렇게 고요하고 장엄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다시 시작한 불교공부와 더불어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빠지지 않기 위해 시작 시간도 새벽 3시로 정했다.

일찍 일어나 차로 15분 거리의 각원사에 도착해 대웅전과 대불전에 들러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겨울 눈이 오면 언덕 아래 차를 두고 법당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천수경’을 시작으로 ‘화엄경 약찬게’ ‘관음정근’ ‘반야심경’까지 독경하면 2시간여의 기도는 마무리됐다. 

기도를 처음 시작할 때는 하던 사업이 기울어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컸다. 절실하고 간절한 시기였기에 매서운 삭풍이 휘감아도 추운 줄 몰랐다. 기도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갑자기 변한 일상에 몸이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기도 중 복통이 찾아와 입원했다. 병상에서 매일 기도하던 대로 새벽마다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독경했다. 

퇴원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각원사에 가고 싶다며 남편을 졸랐다. 나의 건강을 염려하는 남편이 절에 데려다 주었다. 대웅전에서 절을 시작하니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환희심이 생겼다. 금식을 하고 며칠 동안 링거만 맞아 일어서기조차 힘들어하면서도 비틀거리며 기도하는 나의 모습을 남편은 지켜보았다. 건강을 걱정하는 남편도 나의 절실함을 이해하였는지 그날 이후 나의 신행과 기도를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그러던 중 나를 위한 매달리는 기도에서 남을 위한 기도로 변화하며 내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찾아왔다. ‘능엄주 가피’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하남 정심사로 향했다. 그곳 입구에 설치된 플래카드를 보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모르게 남을 도웁시다.’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성철 스님이 대중들에게 항상 강조했던 세 가지 가르침이었다. 스님의 가르침은 나의 신행생활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나를 위한 기도와 더불어 내 주변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재발심을 되새기고 부처님 법을 전하는 삶을 발원하며 포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새벽기도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날 무렵 사찰에서 대웅전을 한 시간 일찍 개방했다. 나와 이웃을 위한 기도까지 하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에 이에 발맞춰 기상 시간을 한 시간 당겼다. 절 수행, ‘금강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능엄신주’ ‘화엄경 약찬게’를 독경한 후 새벽예불에 참석해 칠정례와 중단기도, 하단 법성게를 마친 뒤 대웅전을 나와 대불전으로 향한다. 대불전에 올라 향을 사른 후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라고 기도한다. 캄캄한 새벽이라 등산용 랜턴에 의지해 기도해야 하지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원까지 마친 후에야 집으로 향한다.
나와 이웃을 위한 기도가 습(習)이 될 즈음, 각원사 조실이신 경해법인 스님이 일본에서 영구귀국해 만나 뵙게 됐다. 새벽예불에 동참한 게 인연이 되어 기도회향의 의미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됐고, 실천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내 주변을 돌아보고 봉사를 실천하는 삶’을 나의 기도회향으로 정했다.

매주 목요일 독거어르신을 위한 각원사 도시락배달 급식팀장을 맡아 새벽기도 후 새벽 5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급식실에서 1년간 봉사했다. 2013년 11월1일 새벽기도 1000일 회향을 맞아 그 공덕을 이웃과 나누고자 각원사 봉사 도시락에 담을 빵 200개를 보시했다. 그 후 100일 회향마다 빵을 보시하고 복지관 등에 후원금을 보냈다. 2013년부터 2015년에는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영어회화교실 진행을 보조했다. 목탁을 치면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회원들에게 수업에 관한 안내와 강의실 정리 등을 도왔다. 다른 사람을 돕는 보람된 일었지만 조금 더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2년간 공부에 매진해 전문포교사가 됐다.

전문포교사가 된 후에는 각원사에서 운영하는 아우내은빛복지관 봉사팀장을 맡아 월 2회 주방에서 요리보조를 하며 어르신들의 점심공양 및 프로그램을 도왔다. 각원사 봉사팀의 성실함과 친절함에 불자가 아닌 분들이 불교에 호감을 갖고 관심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도회향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기도와 회향의 삶에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귀가한 어느 날 몸이 너무 춥고 떨려 출근조차 하지 못했다. 다음날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끙끙거리며 각원사로 향했다. 신기한 것은 대웅전에만 들어서면 거짓말처럼 몸에 기운이 돌았다. 절을 하고 독경을 하고 발원까지 마친 뒤 집에 돌아오면 또다시 오한이 찾아왔다. 살면서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극심한 고통이었다. 1주일간 출근을 하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나 새벽기도와 예불만은 빠지지 않았다.

항상 새벽이 기다려지고 새벽 2시 알람이 울리면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이때만큼은 새벽이 두려웠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병원을 찾으니 담석증이라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 당일 새벽 각원사를 찾아 ‘부처님, 병으로 수술을 받게 돼 며칠 못 옵니다. 빨리 나아 속히 절에 올 수 있게 해주세요’하고 기도를 하는 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입원 기간 병실에서 ‘금강경’과 ‘반야심경’만 독송하다 보니 새벽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퇴원 후에는 배에 힘이 없고 걸을 수가 없어 집에서 1주일간 ‘금강경’을 독송했다. 그 와중에도 생각은 오직 절에 가 기도를 하는 것뿐이었다. 몸을 추슬러 새벽기도를 하러 다시 절에 가던 날, 부처님의 인자하고 포근한 눈빛이 환희심과 교차됐다. 다시 찾은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새벽기도는 나를 다잡는 수행의 과정이 됐다. 기도의 힘으로 여는 하루는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하다. 첫 시작은 힘든 일상에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함이었으나 이제는 내 삶의 한 부분이 됐다. 그동안 포교사로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나는 대전충남지역단 부단장과 동부총괄팀장 맡아 활동하고 있다. 큰 소임을 맡게 된 만큼 책임감 또한 무겁게 느낀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해마다 해온 거리등 달기도 올해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꾸준히 정진해 원력과 신심을 갖춘 참된 불제자로 거듭나기를 서원한다.

신행생활을 지지해 준 가족과 스님 그리고 각원사 도반들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오늘도 인연의 밤을 지키는 등불이 되길 발원하며 봄빛 가득한 대불전 앞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를 올린다. 

‘각원사 동산이 불연의 꽃으로 더욱 아름다워지길, 다시 희망이 꽃피는 일상으로 돌아가길….’

[1631호 / 2022년 5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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