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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돌아보니 순간마다 부처님 가피 드리우지 않은 곳 없구나

기자명 법보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상 - 박현주

6개월 전 세상 떠난 남편…보시·독송·기도 등 신행생활 함께하던 도반
부처님 가피 입음에 감사하며 매일 기도…암 판정 받아도 두렵지 않아
올 부처님오신날에도 사찰 곳곳 다니며 가피 기원·감사기도 드릴 것

그림=정은주
그림=정은주

말기 암 판정에도 의젓하게 “생사가 여여하니 슬퍼하지 말라”며 내게 “내가 죽으면 울지 말고 노래를 불러 달라”고 말하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말기 암이란 것을 자녀들에도 말하지 않고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1년을 넘게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하던 남편. 수십년을 손잡고 다니던 원각정사 법회가 코로나19로 멈추고 난 뒤 1년 넘게 가지 못했는데 오늘 다시 법회가 진행되어 참석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막내아들이 데려다 주고 끝난 뒤엔 넘어지면 다친다며 항상 손을 잡아주던 남편 없이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다니라고 준 아들의 카드로 버스카드를 충전하려고 했더니 버스카드는 현금만 된다고 한다. 버스카드도 항상 남편이 충전해주었기에 생각도 못했다. 아낀 택시비로 충전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한번 들어온 슈퍼를 그냥 나가기 미안해서 2만원을 충전했다. 이럴 때마다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월주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남편은 지구촌공생회 후원회원이 되었고 아프리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우물을 파주기도 했다. 밥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준다는 것이 얼마 전에 열반에 드신 월주 대종사님의 가르침이다. 조계종 아름다운동행을 비롯해 중앙신도회의 행복바라미, 법보신문 법보시 캠페인, 일일시호일 후원 등도 그러한 일을 하는 곳이기에 나도 동참해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몇십년 우리 부부를 이끌어 주시던 금산사 회주 도영 스님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했다. 매일 아침 예불을 모시고 ‘금강경’을 독송하다가 90세를 일기로 떠난 남편은 암 판정을 받고 도영 스님을 자주 찾아뵈면서 일생을 정리해왔었다. 도영 스님은 암 판정이후 ‘금강경’ 대신에 ‘아미타경’을 모시라고 했고 남편이 임종할 때에도 옆에서 아미타불을 염송했었다. 지금 남편이 떠난 지 6개월이 다 되는데 ‘아미타경’을 읽는 것보다, 남편이 매일 읽던 ‘금강경’을 읽어야 할까 고민이 들어 스님께 상담을 했다. 도영 스님은 명쾌하게 “이미 설봉 거사는 극락세계에 가 있거나 벌써 이 세상에 올 준비를 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좋아하는 ‘금강경’을 독송하라”고 하셨다.

김제 만경 태생인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소달구지에 공양물을 싣고 그 먼 김제 금산사를 종종 찾았다. 큰 절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결혼 후 전주에서 남편과 장사를 할 때도 가족구성원 모두 ‘천수경’ 독송을 들으며 아침공양을 하고, 사업장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독송을 했다. 전주에 와서 절에 나가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제일 좋은 법복을 맞춰 입고 절에서 하는 불사에 빠지지 않고 동참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저 젊은 아낙의 치기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열심히 절에 다녔다.  

그래도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5남매 자식들은 그 힘들다는 대학에 재수 한 번 안하고 합격했다. 아이들에게는 힘들거나 어려울 때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라고 하고 잠자면서도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라고 했다. 금산사에서 설립한 화엄불교대학도 다니고 절에도 다니면서 자식들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결혼도 시켰다. 1995년 막내아들이 취업대신에 어려워진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 등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는 명확한 남편의 신념으로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았고, 사업을 할 때도 수금이 안 돼 돈이 없을지라도 남에게는 은행 돈을 빌려서라도 꼭 송금하면서 신용을 지켰다. 이로 인해 많은 손해를 입었지만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사정을 살폈다. IMF 시절에 큰 손해를 봤지만 다행히 건물 세입자들의 전세금은 건물과 아파트를 팔아 다 돌려주고 은행 빚도 어느 정도 갚아 작아진 대로 사업을 이어갔다. 

2001년부터는 아들과 남편에게 사업을 오롯이 맡기고 집에서 손주들을 돌보며 전북불교대학과 화엄불교대학 특강을 들으러 다니고 법회에 참석해 불교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매일 점심 이후와 저녁 자기 전에 독경을 하고 사경도 하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특히 독경을 할 때면 세수를 하고 죽염으로 입안을 꼭 행구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왔다. 

2004년 부처님오신날을 며칠 앞두고 남편과 함께 부안 월명암을 찾아 참배하고 난 다음날 새벽에 갑자기 아랫배가 찢어질 듯 아팠다. 뜬 눈으로 날을 새면서도 구급차를 부르려는 남편을 말리고 깨끗한 옷을 입고 찾은 대학병원에서 대장암 2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지금도 월명암을 참배하고 난 다음날 그러한 증상이 나타난 것은 모두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수술도 잘되고 재발이나 전이 없이 지금까지 18년을 건강하게 살고 있다. 전북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원법당이 없어서 독송집만 읽었다. 병원에 있다 보니 제일 좋은 법복 맞춰 입고 큰 불사 동참했다고 스님들 앞에 나서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럴수록 더욱 아픈 사람들이 희망을 찾고 부처님 법을 만나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기를 기원했다. 

나와 남편은 부처님의 가피에 매일 감사하며 기도하고 살았다. 아이들이 장성한 뒤에는 기도에 손주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부처님의 가피인 듯 자식들에 이어 손주들도 원하는 학교에 다니고 회사에 취직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며칠 전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먹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금강경’을 독송하던 중 머리 이쪽저쪽이 조금씩 아프고 세수를 하는데 얼굴 한쪽이 남의 살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근처 병원에 아들 몰래 다녀왔다. 병원에서는 큰 이상은 없어 보인다며 혹시 모르니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보라고 권했다. 그래도 두렵지는 않았다. 암 말기에 항암치료를 하지 않은 남편이 임종 때까지 마약성 진통제도 투여하지 않고 고통 없이 가신 것을 보며 부처님의 가피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다만, 치매가 오지 않을까 하여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함께 사는 막내아들과 병원을 찾았다. 큰 병원 의사는 “그 연세에 말씀하시는 것도 정확하고 기억력도 좋으시니 치매나 이런 것을 걱정할 필요 없다”면서도 혹시 모르니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결과가 나오고 의사선생님이 보호자만 들어오라고 했을 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는데, 막내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같이 듣자”면서 나를 진료실로 데려갔다. 아들은 나를 믿고 “함께 상의하자”고 했다. MRI를 보니 뇌혈관 중에 꽈리 모양의 새끼 손톱만한 혈관이 보였다. 뇌동맥류라고 했다. 

의사가 “뇌동맥류는 폭탄과 같은 것이지만 이런 현상이 몇 십 년 된 것일 수도 있고 터지지 않고 평생을 사실 수도 있어서 지금 연세에 수술하라고 권유하기는 힘들지만 어머님의 나이에 비해 혈관도 깨끗하고 튼튼하고 뇌도 치매와는 상관이 없어서 시술로도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저는 시술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뇌동맥류가 터지면 죽는 것보다 불구가 되거나 심하면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기에 치료를 받기로 했다. 

부처님오신날 절에 갈 생각으로 5월8일 이후 수술이나 시술을 결정해서 날짜를 잡는 것으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러나 시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재작년부터 눈이 나빠져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니 백내장이라고 했다. 서울에 가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들었기에 미루고 있었는데, 요즘은 경전을 읽기도 힘들 정도로 눈이 나빠져 힘들어 하고 있자니 막내아들이 서울에 가서라도 수술을 하자고 권했다. 아들이 소수문해 “전북대병원에서도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해 5월2일에 백내장 수술을 하기로 했다. 시술은 그 후로 늦출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시술 날짜를 4월25일로 앞당겼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까 해서 걱정을 하니, 아들은 “어머니 밝은 눈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자”면서 “부처님의 가피로 어머니의 뇌동맥류도 발견됐고 다행히 백내장 수술도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도하고 빨리 나아서 부처님께 기도드리자”고 말했다. 

이번 주 일요일(4월17일)에는 남편이 아픈 중에도 작년 9월에 100만원을 주며 동참한 전북불교회관 영단후불탱화 점안식 및 회향일이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전북불교회관 탱화불사에는 월주 대종사님의 조사단도 함께 모신다고 한다. 이런 것 또한 인연인가 싶다. 월주 대종사와 함께 한 날을 생각하면 정말 대종사와는 인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불사회향으로 남편을 위한 ‘아미타경’ 독송을 대신해, 가족을 위해 ‘금강경’과 다라니를 독송하려고 한다.

오늘도 기도를 마치고 남편이 생각나서 남편의 노래를 불러본다.

“옛날에 이 길을 꽃가마 타고/ 말 탄 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었든 길/ 한세상 다하면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남편이 돌아가기 전에 부르던 걸 찍어 둔 영상을 보면서 당신이 간 뒤에 슬퍼하지 말고 노래 불러 달라는 유언을 이렇게 지키고 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평상시와 같이 5곳 이상의 사찰을 다니며 공양 올릴 생각이다.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로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고, 나의 업장으로 내 가족들이 고통 받지 않기를 오늘도 기원하면서 기도한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1631호 / 2022년 5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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