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 봉사 10년 채연순 씨
“밥순이가 또 1등이구먼, 오늘은 일찍 서두른다고 했는데….”
급식봉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10분이나 남았지만 항상 먼저와 준비하는 채 씨에게 늘 미안한 눈치다. “오늘 운이 좋내요” 서글서글한 채 씨의 입담과 함께 급식봉사의 시작을 알린다.
올해로 자원봉사 10년을 맞이한 채 씨가 ‘나눔’에 눈을 뜬 것은 지난 95년 늦은 가을이다. 가까운 친구의 권유로 지역사회봉사단에 가입한 채 씨는 일주일에 한번 지역을 돌며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것이 ‘10년 나눔’의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봉사인가 싶었어요. 이름만 환경봉사였지만 실제로 하는 일이라고는 동네를 돌며 쓰레기나 줍는 것이 고작이었죠.”
일주일에 한번 쓰레기 줍는 일로 사회봉사의 첫발을 내딛은 채 씨가 본격적인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97년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시설에서 급식봉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봉사에 있어 종교의 구분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적극적인 성격에 힘쓰는 일은 죄다 도맡아 해온 채 씨는 급식에 있어 가장 힘들다는 ‘밥 푸는 아줌마’도 자청했다.
“옛날부터 집안 자체가 장사집안이었어요. 할아버지를 비롯해 아버지까지 동네 씨름판은 죄다 휩쓸고 다녔죠. 장사집안 장녀가 힘쓰는 건 당연한거 아니겠어요.”
급식봉사로 나눔의 ‘맛’을 본 채 씨는 98년 옥수복지관에서도 무료급식봉사에 동참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제일 좋습니다. 하루 한 끼 식사로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더욱더 그리운 김이겠지요.”
늘 따듯한 밥을 전해주기 위해 뜨거운 밥솥을 옮기는 채 씨. 그 덕분에 그의 오른팔에는 뜨거운 밥솥에 덴 상처가 적지 않다.
“진정한 ‘밥순이’가 되려면 이정도 상처는 있어야 채면 좀 세우지 않겠습니까.”
늘 웃음으로 말을 맺는 채 씨. 그런 그에게도 아쉬운 것이 있다고 한다.
“요즘 봉사활동을 나가다 보면 종교에 따라 봉사를 해야 한다는 관습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자신의 믿는 종교에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보람이겠지만 꼭 종교를 구분지어 봉사를 해야 하나 싶어요.”
‘나눔’ 만큼은 종교의 구분을 두지 말아야한다는 채 씨는 현재 교계복지시설 외 적십자봉사단, 지역사회봉사단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상엔 어려운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고 마음을 나눈다면 세상은 좀더 밝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채 씨는 오늘도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복지시설을 찾고 있다.
김형섭 기자 hs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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